
영화 '배트맨 비긴즈'에서 나온 브루스 웨인(배트맨)과 그의 어릴적 소꼽친구 레이첼의 대화이다. 배트맨 시리즈에서 말하고자 하는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 중 하나이다(물론 레이첼은 이 당시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말한 것이기 때문에 다소 오해가 섞여 있다.).
입시를 경험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경험 중 하나는 바로 서강대학교 철학과 면접이었다. 논술을 통과하고 보는 면접이었기 때문에 벌써부터 합격했다는 큰 자만(?)에 빠져서 면접을 보았다. 그때 내 기억으로 면접 문제를 요약하자면, "동기가 좋은데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와 동기는 불순하지만 결과가 좋은 경우" 두 가지를 비교하는 문제였다. 당시 이러한 주제에 대해 전혀 생각한 적이 없었고, 단지 철학에 대해 막연한 생각만을 가지고 지원했기 때문에 떨어지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 문득문득 드는 생각, 여러 사회 이슈들을 보면서 드는 사색이 이 질문과 어느정도 연관이 되어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물론 동기와 결과에 초점을 맞춘 문제였기 때문에 관점은 다르다. 하지만 "과연 '사람에 대한 정의',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요소는 어떤 요소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즉, 우리는 무엇을 보고 그 사람에 대해 정의를 내려야만 옳은 것일까?
우리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본질, 생각, 그 사람의 신념, 환경 등 여러가지 요소를 놓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행동'이라는 요소가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쉽게 예를 들어 설명하기 위해, 어떤 한 소아성애자 사람을 가정해보자. 그 사람은 아동에 대한 성적 관심은 많지만 그것이 그 사람의 선천적인 본성인지 아니면 환경에 의해 형성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사람이 확실하게 아동에 대해서 성적 흥분감을 느낀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는 많은 교육을 받으며, 그것이 범죄라는 것을 알기에 자신의 성적 취향(?)을 억제하고 제어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그러한 활동을 하며 자신을 향해 웃는 아이, 자신에게 포옹을 해주는 아이, 뽀뽀를 해주는 아이에게 성적 흥분을 느끼며 만족감을 얻어 왔다. 그래서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하며 아동의 복지를 크게 개선시키고 수 많은 아이들이 삶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그래서 그는 성인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그는 죽기 전에 이렇게 고백을 한다. "사실 나는 소아성애자입니다."
이 사람에 대해 우리는 뭐라고 이야기 해야 할까? 파렴치한 소아성애자? 아니면 한 평생 아동을 위해 살아온 성인? 아니면 균형적으로(?) 소아성애자 본능을 억제한 성인?
실제 사례도 아니고, 극단적인 예를 든 내용이지만 쉽사리 답을 내리기 어려운 내용이다. 우리는 이 사람에 대해 어떻게 정의를 내려야 할까?
먼저 이 질문에 내 의견을 말하기 전에 사람과 동물의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 사람과 동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이성적 능력'이다. 사람은 배가 고프다고 무조건 밥을 먹지 않고, 자고 싶다고 무조건 자지 않는다. 이성에 따라 법을 준수하며 자신의 행동을 자발적으로 제약한다. 이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본능을 억제하고,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나는 사람을 평가하거나, 정의를 내릴 때 '행동'을 기준으로 내려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 싶다. 습관 등 여러가지 요소에 의해 흐려질지는 몰라도 우리의 본질은 쉽사리 변할 수 없다. 아니, 어쩌면 절대 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가 본질, 본능 등으로 평가해서는 안되지 않을까? 논리적 비약이지만, 만일 그러한 요소를 중점적으로 평가하면 그 사람은 어차피 어떠한 행동을 하더라도 이미 정의가 내려져 있기 떄문이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본능은 서로 거의 유사하며 사실상 파악하기도 어렵다. 이는 본능이 아닌 신념, 개인 가치 체계 등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본질과는 별개로 '이성'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선택하여 행동한다. 이러한 과정을 자세히 분해해보면, 본질(본능)에 따른 욕구 등이 형성되고 고 이후 이를 '이성'을 통해 판단한다. 그리고 이러한 판단 결과는 생각으로 이어지고, 최종적으로 행동(선택)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
영화 '배트맨 비긴즈'에서 나온 브루스 웨인(배트맨)과 그의 어릴적 소꼽친구 레이첼의 대화이다. 배트맨 시리즈에서 말하고자 하는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 중 하나이다(물론 레이첼은 이 당시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말한 것이기 때문에 다소 오해가 섞여 있다.).
입시를 경험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경험 중 하나는 바로 서강대학교 철학과 면접이었다. 논술을 통과하고 보는 면접이었기 때문에 벌써부터 합격했다는 큰 자만(?)에 빠져서 면접을 보았다. 그때 내 기억으로 면접 문제를 요약하자면, "동기가 좋은데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와 동기는 불순하지만 결과가 좋은 경우" 두 가지를 비교하는 문제였다. 당시 이러한 주제에 대해 전혀 생각한 적이 없었고, 단지 철학에 대해 막연한 생각만을 가지고 지원했기 때문에 떨어지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 문득문득 드는 생각, 여러 사회 이슈들을 보면서 드는 사색이 이 질문과 어느정도 연관이 되어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물론 동기와 결과에 초점을 맞춘 문제였기 때문에 관점은 다르다. 하지만 "과연 '사람에 대한 정의',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요소는 어떤 요소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즉, 우리는 무엇을 보고 그 사람에 대해 정의를 내려야만 옳은 것일까?
우리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본질, 생각, 그 사람의 신념, 환경 등 여러가지 요소를 놓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행동'이라는 요소가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쉽게 예를 들어 설명하기 위해, 어떤 한 소아성애자 사람을 가정해보자. 그 사람은 아동에 대한 성적 관심은 많지만 그것이 그 사람의 선천적인 본성인지 아니면 환경에 의해 형성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사람이 확실하게 아동에 대해서 성적 흥분감을 느낀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는 많은 교육을 받으며, 그것이 범죄라는 것을 알기에 자신의 성적 취향(?)을 억제하고 제어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그러한 활동을 하며 자신을 향해 웃는 아이, 자신에게 포옹을 해주는 아이, 뽀뽀를 해주는 아이에게 성적 흥분을 느끼며 만족감을 얻어 왔다. 그래서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하며 아동의 복지를 크게 개선시키고 수 많은 아이들이 삶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그래서 그는 성인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그는 죽기 전에 이렇게 고백을 한다. "사실 나는 소아성애자입니다."
이 사람에 대해 우리는 뭐라고 이야기 해야 할까? 파렴치한 소아성애자? 아니면 한 평생 아동을 위해 살아온 성인? 아니면 균형적으로(?) 소아성애자 본능을 억제한 성인?
실제 사례도 아니고, 극단적인 예를 든 내용이지만 쉽사리 답을 내리기 어려운 내용이다. 우리는 이 사람에 대해 어떻게 정의를 내려야 할까?
먼저 이 질문에 내 의견을 말하기 전에 사람과 동물의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 사람과 동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이성적 능력'이다. 사람은 배가 고프다고 무조건 밥을 먹지 않고, 자고 싶다고 무조건 자지 않는다. 이성에 따라 법을 준수하며 자신의 행동을 자발적으로 제약한다. 이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본능을 억제하고,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나는 사람을 평가하거나, 정의를 내릴 때 '행동'을 기준으로 내려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 싶다. 습관 등 여러가지 요소에 의해 흐려질지는 몰라도 우리의 본질은 쉽사리 변할 수 없다. 아니, 어쩌면 절대 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가 본질, 본능 등으로 평가해서는 안되지 않을까? 논리적 비약이지만, 만일 그러한 요소를 중점적으로 평가하면 그 사람은 어차피 어떠한 행동을 하더라도 이미 정의가 내려져 있기 떄문이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본능은 서로 거의 유사하며 사실상 파악하기도 어렵다. 이는 본능이 아닌 신념, 개인 가치 체계 등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본질과는 별개로 '이성'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선택하여 행동한다. 이러한 과정을 자세히 분해해보면, 본질(본능)에 따른 욕구 등이 형성되고 고 이후 이를 '이성'을 통해 판단한다. 그리고 이러한 판단 결과는 생각으로 이어지고, 최종적으로 행동(선택)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중요하게 보아야 할 것은, 본질에 따른 욕구와의 충돌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지는 곳은 행동으로 나타나는 최종 단계 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세히 이야기 하자면 행동 이전 단계인 생각까지는 사실상 본질에 따른 욕구와 평행한 2개의 레일로 진행된다. 그리고 결국 행동(선택)이라는 하나의 레일로 합쳐질 때, 충돌하게 된다.
단순히 본질, 욕구, 판단 등을 보면 어떤 행동을 내릴 지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다. 우리가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다. 행동(선택)이라는 레일이 계속 이어져 도달하는 곳이 바로 그 사람의 삶이고 인생을 나타내는 종착역이라는 점이다.
종종 우리의 주변에는 단순히 그 사람의 말로만 그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고 정의를 내리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과연 그게 정확하다고 할 수 있을까? 평소에 이야기 하는 것과 정반대로 행동하는 사람은 너무나도 많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거짓말을 하거나, 자신을 속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사람의 생각은 정말 자신이 원하는 바를 표현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본심의 '유약함'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본심은 너무나도 쉽게 무너진다. 여러 환경적인 요소에 무너지고, 심지어 더 나아가 본심이 처음에 안 그랬다는 듯이 왜곡을 하기도 한다. 나약한 우리의 본심은 쉽사리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고, 그저 안개처럼 사라지게 된다. 누구나가 무단횡단을 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고, 쓰레기를 버리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래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이외에도 여러가지가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지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진심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 다만 그것이 행동으로 이어지기가 너무 어려울 뿐이다.
주제가 다른 곳으로 샌 것 같지만, 분명하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행동'의 중요성이다. 본인의 생각, 본능 등은 중요하지 않다. 본인이 어떤 존재인지, 어떤 사람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행동'이다. 생각은 천지차이일지라도 같은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이고, 생각은 동일할지라도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이 바로 사람이다.¹
변하고 싶으면 행동을 바꾸면 된다. 단지 생각에만 머문다면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¹ 그러나 '말', '언행' 또한 행동의 일환으로 보는 경우도 많다. 다만, 위에 본문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으나, 이 경우 세밀한 구분이 필요하다. 즉 직접적 행위, 간접적 행위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말'만 하는 것이 때로는 직접적인 행동인 경우가 있다. 그 말 자체가 직접적인 행위인 경우를 예를 들면, 학급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친구를 위해 반 선생님 또는 또래 친구들에게 말하여 도움을 구하는 것을 들 수 있다. 반대로 단지 친구들에게 "따돌림 당하는 친구를 위해 도와주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간접적인 행위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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