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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책이고, 읽은 지 오래된 책인데 최근에 다시 읽고 정리해 보았다. 과연 정의란 무엇일까? 오랜 기간 지속된 화두에 대해 핵심적인 부분을 잘 정리하고, 본인의 생각을 잘 서술한 책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고
- Justice - 
 
(1) 공리주의와 자유 지상주의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란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옳은 행동은 정의이고, 옳지 못한 행동은 정의롭지 못한 행동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정의가 과연 단순히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문제일까? 이 질문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보면, 사실 쉽게 대답할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의를 위해 살아간다. 다만 각자의 정의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서로 갈등이 생기고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여전히 이와 관련된 논쟁이 있다. 마이클 샌델이 쓴 '정의란 무엇인가'도 동일한 고민을 담고 있다. 여러 딜레마와 함께 '공리주의', '자유 지상주의', '공동체주의' 3가지 개념을 비교하며 정의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과연 정의를 찾을 수 있을까? 이 질문이 이 책을 읽으며 계속 생각났다.
 
블로그 글을 적으며, 두 가지 글귀가 떠올랐다. 돈키호테의 명언과 만화 원피스의 돈키호테의 말이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유토피아도, 광기도 아닌 정의일세."
(Cambiar el mundo, no es ni utopía ni locura, es justicia.)
-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중 -

 

"해적이 악, 해군이 정의? 그런 것 따윈 얼마든지 뒤엎어져 왔다.
평화를 모르는 아이들과 전쟁을 모르는 아이들의 가치관은 달라
정점에 서는 자가 선악을 뒤짚는다. 지금 이 장소야 말로 중립이다.
정의는 이긴다고? 그거야 그렇겠지!
승자만이 정의다!"
- 만화 원피스 556화 중(해군과 해적 간 대규모 전투 상황)

 
 
첫 번째 정의 : 공리주의

책에서 말하는 정의의 첫 번째 개념은 바로 '공리주의'이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가장 선하다는 이 개념은 언뜻 가장 합리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가장 많은 사람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이 곧 '정의'라는 것이다.
 
하지만 '테러리스트 고문' 문제를 생각하면 정의롭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면, 테러리스트가 숨겨논 폭탄을 찾기 위해 테러리스트의 딸을 고문해야 한다고 가정해보자. 과연 우리는 다수의 시민의 안전을 위해 아무런 죄가 없는 테러리스트의 딸을 고문하는 것이 정의롭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공리주의 관점에서는 당연한 행동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쉽사리 이르 정의롭다고 말할 수 없다.
 
또한 공리주의에 빠질 경우, 자칫 개인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이면에는 곧 소수의 피해가 있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과연 행복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을까? 공리주의가 '정의'에 가장 적합한 개념일 지라도 이를 어떻게 활용하는지는 다른 문제이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어떻게 측정할 것이며, 그리고 밀의 주장처럼 행복의 질도 구분할 것인지도 고민을 해야 한다.
 
 
두 번째 정의 : 자유 지상주의
 
그 다음은 '자유 지상주의'로 개인의 자유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는 것이다. 즉, 정의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그 안에서 칸트의 정언명령, 존 롤스의 정의론 등 각각의 차이가 있지만 결과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가장 중요시 여긴다는 점에선 동일하다.

 

자유 지상주의는 개인의 자유라는 미명 하에 용인할 수 없는 행위들이 이어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예를 들면, 대리모 계약을 통해 아이를 얻는 행위는 서로 원하는 것이지만 그 행위가 정의롭다고 말하긴 쉽지 않다. 왜냐하면 과연 이것이 진짜 개인의 '자유'에 의한 것인지 의문이 들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리모 계약을 맺는 주체들은 과연 자유에 의해서 그런 판단을 하는 것일까? 부득이한 상황 등에 의해 벌어지는 상황인 만큼 온전히 자유라고 보기 어렵다. 무엇보다 자유라는 미명 하에 벌어지는 수 많은 비도덕적 행위와 불평등은 정의롭게 보이지 않는다.

 

칸트는 이에 '정언명령'이라는 개념을 추가해서 말한다. 정언명령이란 어떠한 목적, 상황, 성향 등에 영향을 받지 않는 명령으로 그 행동 자체로 바람직한 것을 의미한다. 대리모 사례는 돈이라는 요소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정언명령에 부합하다고 보기 어렵다. 그리고 정언명령의 구분법으로 보편적 법칙을 말한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행동을 한다고 가정해보면 정언명령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있는 것이다. 

 

존 롤스는 개인의 침해할 수 없는 권리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무지의 장막' 개념을 통한 가상의 계약으로 정의의 개념을 확장시킨다. 무지의 장막이란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맺어지는 계약이다. 이 상황에서는 자신이 불합리한 상황에 놓일 것을 우려하여 원칙들을 세우고 동의하게 된다. 예를 들면, '인종차별을 해서는 안된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최소한의 복지 시스템이 필요하다' 등의 원칙이 세워지게 된다.

 

 

공리주의와 자유 지상주의 두 가지 개념에 대해 알아봤지만, 정의의 개념으로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한편으론 정의의 개념에 두 가지 개념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그런지 여전히 우리 모두가 생각하는 '정의를 찾을 수 있을까'하는 의문점이 생긴다. 그렇다면 과연 마이클 샌델은 어떤 정의를 말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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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hrdongdong.tistory.com/68

 

[독후감#17] 협력의 진화(1/3) - 새로운 협력의 개념 / 로버트 액설로드 지음

오래 전 읽은 책이지만 이제야 다시금 읽으면서 하나씩 정리를 하고 있다. 그 만큼 명작이고, 새로운 관점을 깨닫게 해준 책이다. 독후감을 크게 ①협력의 개념, ②최고의 협력 형태, ③시사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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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17] 협력의 진화(2/3) - 최고의 협력 형태 / 로버트 액설로드 지음

https://hrdongdong.tistory.com/68 [독후감#17] 협력의 진화(1/3) - 새로운 협력의 개념 / 로버트 액설로드 지음 오래 전 읽은 책이지만 이제야 다시금 읽으면서 하나씩 정리를 하고 있다. 그 만큼 명작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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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의 진화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특히 한 집단을 성공으로 이끌고 싶다면 특히나 더 봐야 하는 책이다.

 


 

'협력의 진화'를 읽고

- 이기적인 개인의 팃포탯 전략 - 

 

(3)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성공의 비결은 '승리'가 아닐 수 있다.

 

  우리 사회는 경쟁 사회에 익숙해져 있다. 예를 들면, 내가 좋아하는 축구 게임처럼 한 쪽이 이기고 한 쪽이 지는 제로섬 게임 방식에 익숙해져 있다. 심지어 실제로 제로섬 게임이 아닐 지라도 우리는 제로섬이라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지는 것을 극도로 기피한다.

 

  팃포탯 전략은 상대보다 잘하지 못함에도 최종적으로 승리를 가져가는데 그 의의가 크다. 좋은 성과를 이루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누르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과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을 찾아 협력하는 것이 더 좋다는 사실이다. 즉, 우리는 경쟁이 아닌 협력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광범위하고 다양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협력의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궁극적인 성공의 지름길이다. 이것은 개인에게도 마찬가지고 특정 집단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설사 주어진 규칙(방식) 자체가 경쟁 방식일 지라도 그 규칙에 매몰되지 않고, 협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팃포탯도 결국 높은 점수가 이기는 경쟁 방식이었지만, 상호협력을 통해 이겨냈다.

 

  나는 종종 웹툰이나 만화를 볼 때, 인상깊은 대사 등을 기억하곤 하는데 문득 '신의 탑' 웹툰 5화의 아래 대사가 생각났다. 이상적인 이야기지만 우리도 한다면 어떨까?

 

"나는 이 시험의 룰을 듣는 순간 이렇게 생각했지. 분명 누군가는 다른 200명을 제거하고 시험을 통과할 것이라고. 그리고 그렇다면 나는 누군가 200명을 죽일 때 남은 200명을 동료로 만들겠다고."
- 네이버 웹툰, '신의 탑' 5화 중(400명 중 200명만 남는 서바이벌 게임 상황) -

 

 

상호협력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하지만 혼자만 팃포탯이라면 결코 살아남을 수가 없다. 상호협력의 공고한 연대를 만들고, 팃포탯이 이익이라는 사실을 널리 알려야만 한다. 환경만 조성되면 자연스럽게 팃포탯은 톱니바퀴처럼 그 효과가 지속되고 점진적으로 강해진다.

 

  그러기 위해서 활용할 수 있는 몇 가지 전략이 있다. 우선 개인 관점으로 보자면 본인부터 팃포탯이라는 점을 명료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즉, 상호협력을 우선적으로 하되 배반에 대해서는 즉각적인 보복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상대방과 주변에 이러한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줄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올디(무조건 배반하는 자)가 아니라면 자연스럽게 상호협력을 하게 될 것이다. 어떤 집단이든 특정인과 문제를 일으키기 보다는 협력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추가로 협력의 진화 책 등을 집단 내 공유한다면 자연스럽게 이러한 사실을 알릴 수 있고, 팃포탯을 활용하는 사람이 더 많아질 수 있다. 자연스럽게 선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또한 지속적인 관계에서 그 효과가 더 극대화되기 때문에 지속적인 관계를 형성하거나 또는 그러한 관계가 있는 집단 내에서만 상호협력 전략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좋다. 정기적인 만남의 자리를 통해 관계를 맺거나 업무 프로세스 상 자주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도록 환경을 구축할 수도 있다. 추가로 조직 내 평판을 중요시 여기는 문화를 만들어 자연스럽게 관계 형성에 신경을 쓰도록 만들 수도 있다. 간접적이지만 평판을 통해 해당 사람의 의견이 계속해서 본인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상호협력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현재보다 미래를 더 가치있게 만들어야 한다. 어느 집단이든 발전을 위해선 성장 또는 성공에 따른 보수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크기는 당장 눈앞에 크게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가 더 크도록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면, 당장의 인센티브보다 승진에 따른 보수 향상이 훨씬 크게 해야 한다. 그래야 장기적인 관계를 더 신경쓰기 때문이다. 

 

 

팃포탯은 카르텔이 아니다.

 

  이 부분은 사실 시사점이자 조언을 하는 부분이다. 팃포탯은 잘못되면 카르텔처럼 이루어질 수 있다. 서로의 이익을 위해 협력하는 것 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팃포탯은 카르텔이 아니다. 팃포탯의 특성을 생각하면 그 차이가 분명하다.

 

  팃포탯은 신사적이며, 다른 집단 또는 개인에게 협력을 불러 일으킨다. 그리고 명료하게 그 특성을 보여주고, 관계 또한 미래지향적이다. 반면 카르텔은 카르텔의 이익을 위해 다른 집단과 개인의 이익을 침범하고, 그 방법 또한 정당하지 않다. 그렇기에 다른 집단과 개인에게 '복종' 또는 '저항' 둘 중에 하나의 선택을 강요한다. 또한 카르텔은 그 확장성 또한 매우 작다. 카르텔이 과해질 경우, 집단 내 이익이 감소하기 때문에 팃포탯과 달리 배타적인 특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다. 은밀하게 형성된 카르텔은 집단 내 이익을 갉아 먹는다.

 

  실생활에서 팃포탯을 하기 위해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카르텔의 모습을 띠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현실에서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다. 구분하는 법은 어쩌면 단순할 수 있다. 과연 협력을 불러 일으키는가 아닌가이다.

 

 

팃포탯의 보며 마지막으로 드는 생각

 

  리처드 도킨스가 쓴 '협력의 진화'를 위한 추천의 글을 보면, 그는 이 책을 만나는 사람마다 추천했다고 한다.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 심지어 세계의 지도자들까지 이 책을 읽으면 보다 세상이 더 좋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 말처럼 이 책은 많은 함의를 담고 있고, 제대로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경쟁 환경을 협력 환경으로 바꿀 수 있다면, 그 효과는 상상 그 이상일 것이다. 누군가는 경쟁이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고 말하지만 팃포탯 또한 그런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누군가와 협력할 수도 없는 상황이고, 도움을 줄 수도 없다면 자연스럽게 팃포탯 환경에서도 도태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본질적으로 팃포탯은 경쟁보다 더 잔인할 수 있다.

 

  책에서는 서로의 보상이 동일한 죄수의 딜레마를 가정했지만, 실제는 다르다. 누군가는 다른 이에게 더 많은 보상을 줄 수 있고, 누군가는 도움을 주더라도 보상을 기대하지 못할 상황일 것이다. 즉, 팃포탯은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항상 하고 있는 것이다.

 

"넌 내가 협력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니"?

 

 

  이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항상 조금씩이라도 발전해야 한다. 그래야 적어도 팃포탯이라는 전략을 사용할 조건은 갖출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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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17] 협력의 진화(1/3) - 새로운 협력의 개념 / 로버트 액설로드 지음

오래 전 읽은 책이지만 이제야 다시금 읽으면서 하나씩 정리를 하고 있다. 그 만큼 명작이고, 새로운 관점을 깨닫게 해준 책이다. 독후감을 크게 ①협력의 개념, ②최고의 협력 형태, ③시사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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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이 이기적인 행동의 결과물이라면, 그럼 어떤 협력의 형태가 가장 효율적일까? 

 



'협력의 진화'를 읽고
- 이기적인 개인의 팃포탯 전략 -

(2) 최고의 협력 형태

 

컴퓨터 프로그램 대회 결과

  반복적인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서 효과적인 선택을 조사하기 위한 컴퓨터 대회가 열렸다. 참여 프로그램은 협력, 비협력을 결정할 수 있으며, 결과에 따라 점수를 얻어가는 방식이었다. 첫 대회에서는 총 14개의 프로그램이 심리학, 경제학, 정치학, 수학, 사회학 분야에서 출품되었다. 그 결과 가장 뛰어난 프로그램은 팃포탯 프로그램으로 판명되었다. 이후에 대회에서도 마찬가지었다.

  대회 결과를 분석한 결과 점수가 높은 프로그램과 아닌 프로그램의 차이는 결코 배신하지 않는 '신사적 특성'이었다. 또한 추가로 특이한 점은 끝까지 복수만 하는 프로그램 보다는 용서를 가진 팃포탯이 더 강력했다는 사실이다.

 


팃포탯의 특성

  결과적으로 가장 단순한 팃포탯이 강력한 프로그램으로 선정되었다. 여러 환경에서 팃포탯의 특성을 분석한 결과 팃포탯이 강력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신사적이기 때문에 쓸데없는 문제에 휘말리지 않는다. 그 다음으로 보복적인 면모도 있기 떄문에 상대의 배반을 억제한다. 관대함도 있기 떄문에 배반한 상대와의 상호협력도 금방 회복된다. 마지막으로 규칙이 명료하여 상대방으로 하여금 장기적인 협력을 이끌어낸다.

  사회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몇 가지 조건만 충족된다면 팃포탯은 실생활에서도 강력한 효과를 보일 수 있다. 우선 팃포탯을 만날 가능성이 커야 한다. 단, 한 번만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진행한다면 배반하는 게임이 많을 것이다. 여러차례 게임을 진행해야 팃포탯의 효과가 발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소통과 관계가 여러차례 이루어지는 집단 내에서 팃포탯은 더욱 강력할 것이다. 그 다음으로 팃포탯을 쉽게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팃포탯의 강점 중 하나는 협력을 하지 않으면 보복 당한다는 사실을 상대 프로그램이 쉽게 인지한다는 점에 있다. 이로 인해 상대는 배반은 결국 본인의 손해라는 것을 깨닫고 협력하게 되는 것이다.

 


여러가지 특이상황에서의 팃포탯

  팃포탯이 가지는 특성에 따라 팃포탯이 취약한 몇 가지 상황도 있다.


  첫 번째, 상대방의 약점이 있어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경우이다. 이 경우 협력을 중단해야 한다. 설사 팃포탯 자신에게 우호적일지라도 먼저 배반을 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장기적 상호작용이 더 이상 이루어질 수 없으므로 팃포탯을 가장 강력하게 지탱해주는 상호협력이 사라지게 된다.

  두 번째, 상대의 배반을 응징할 수 있는 상황이어야 한다. 배반을 즉시하지 않으면, 팃포탯의 명료성이 떨어진다. 그리고 이를 이용하는 새로운 유형의 프로그램도 등장할 것이다. 그러면 팃포탯의 위치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나머지는 다 올디(무조건 배반)인 반면, 혼자만 팃포탯인 상황이면 안된다. 혼자만 팃포탯인 상황이라면, 팃포탯은 살아남을 수 없다. 올디의 최초 배반 이후 계속해서 서로 배반만 하기 때문에 높은 점수를 획득할 수 없다. 근데 올디의 집단에 팃포탯 집단이 침투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팃포탯은 살아남는다. 그리고 결국 올디를 이기게 된다. 즉, 이기적인 문화를 가진 사회도 어느순간 협력의 문화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결과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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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읽은 책이지만 이제야 다시금 읽으면서 하나씩 정리를 하고 있다. 그 만큼 명작이고, 새로운 관점을 깨닫게 해준 책이다.
 
독후감을 크게 ①협력의 개념, ②최고의 협력 형태, ③시사점 3가지 형태로 정리할 예정이다. 다만 글을 읽기 전 아래 게임을 해보기 바란다.
 
https://osori.github.io/trust-ko/

The Evolution of Trust

an interactive guide to the game theory of why & how we trust each other

ncase.me

 
본인이 직접 해본다면 이 책의 내용을 더욱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협력의 진화'를 읽고
- 이기적인 개인의 팃포탯 전략 -
 
(1) 새로운 협력의 개념
 

지극히 이기적인 개인의 선택
 

"어떤 전투 지구에서는 오전 8시에 9시까지 한 시간 동안은 '개인적인 용무'를 보는 시간으로 정했고, 깃발로 표시한 어떤 지역들은 양측 저격수로부터 안전하였다."
- 당시 한 목격자의 증언 -

 
  세계 2차 대전 당시 모종의 협력을 보여주는 한 목격자의 진술이다. 세계 1차대전 당시 여러 전선에 형성된 참호전에서 이러한 광경을 많이 지켜볼 수 있었다. 심지어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 많은 지휘관이 여러 시도를 했지만, 막을 수 없었다. 서로를 죽여야 하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서로 배려하고 지휘관의 지시조차 무시하는 이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들 모두가 평화주의자여서 그랬을까? 아니면 지독한 이타주의자였기 때문일까?

  이는 지극히 이기적인 개인의 선택에 따른 결과로 발생한 일이었다. 책에서는 이 사례에서 나타난 협력의 전략을 '팃포탯 전략'이라고 말한다. 팃포탯 전략이란 우선 상대방에게 협력을 하고 그 이후부터는 상대방이 이전에 행한 전략을 그대로 하는 전략이다. 즉, 우선 협력을 한 뒤, 상대방이 배신을 하면 배신하고, 협력을 하면 계속 협력하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이다.
 
  이 책은 단순한 궁금증에서 시작했다.

 

"다른 사람과 앞으로 계속해서 영향을 주고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과연 언제 그와 협력을 하고, 또 언제 이기적으로 행동해야 할까?"

 

로버트 액설로드의 협력의 진화

  이 책은 많은 학자들과 여러 분야에 새로운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당연히도 협력은 어디에서나 발생하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필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이 더욱 인상 깊은 것은 협력을 새로운 관점으로 이해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협력은 우리에게 각자 자신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돕는 행위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다르게 접근한다. 각자 자신의 이익을 위한 전략으로 바라본다. 흔히 알고 있는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기반으로 과연 협력은 어떤 상황에서 이루어지고, 어떻게 이루어져야만 가장 효율적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 낸다. 그러기 위해 컴퓨터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대회를 실시한다. 죄수의 딜레마를 기본 원리로 하여 과연 어떤 전략을 구사하는 프로그램이 가장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는가이다.
 
  과연 협력은 가장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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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원 제목은 'The Tyranny of Merit: What’s Become of the Common Good?'

'능력주의의 폭정 : 무엇이 공공선인가?'이다. 

 

처음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을 읽었을 때는 많은 생각을 했었다.

그 만큼 화두를 던지는 책이었고, 생각의 틀을 넓히는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책은 사실 아쉽다.

단순히 현대 사회의 능력주의에 지친 사람들을 위로하는 책으로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니면 내가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을 때에 비해 비평적으로 변했는지 모른다.)

 

능력주의의 폐해는 누구나 사실 알고 있다. 다만 대안이 없을 뿐이다.

사실 그 어떤 것에도 문제는 있다. 그걸 어떻게 보완해 나가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공정하다는 착각'을 읽고

부제 :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

 

"공정하다는 착각"은 마이클 샌델이 저술한 책으로, 능력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담고 있으며, 능력주의 아래 굳어진 ‘성공과 실패에 대한 태도’가 현대사회에 커다란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말한다.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능력주의 신화에 대한 깊은 비판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런 신화는 자신의 성공을 오로지 자신의 노력의 댓가로,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노력이 부족했거나 그대로 자신의 자책으로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에 승자들은 능력주의 인식 아래에서 끝없는 경쟁의 압박에 짓눌려 사는 반면, 실패한 사람들은 그들에게 부과되는 가혹한 잣대에 짓눌리게 되는 것이다.

 

즉, 새로운 시각에서 능력주의가 과연 공정하면서도 정의로운가를 질문하며 공공의 선을 다시 고민하게 만드는 책이다.

 

 

공정과 우리사회의 모습

 

'공정'이란 '공평하고 올바름'을 뜻한다. 대부분의 사회는 사회 각 분야에서 이 공정을 지키기 위해 노력을 해왔다. 우리는 누구에게나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고 있으며, 노력한 만큼 그에 따른 결과를 가져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이 믿음의 전제를 깨는 불공정에 대해 가장 분노해 왔다.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움직이는 '능력주의'는 그렇게 발전해왔고, 여전히 다양한 영역에서 '기회는 누구에게나 공정하다'는 명목 아래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불평등하고, 정의롭지 못하다. 능력주의가 평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에게나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고, 노력한 만큼 결과를 가져가는 사회라면 우리는 정의로운 사회가 될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만일 저소득층 대부분이 덜 노력했고, 상류층 대부분이 더 노력해서 나온 결과라면 납득할 수 있다. '세계 불평등 보고서 2022'를 한국 상위 10%의 자산점유율은 58.5%, 하위 50%는 5.6%이다. 과연 한국사회의 상위 10%는 하위 50%보다 그만한 노력을 더 해서 더 많은 자산을 취득한 것일까? 능력주의의 전제 조건인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는 실제로도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통계청에서 발표한 '2021 사회조사'를 보면 계층 이동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11년 32.2%에서 '19년 22.7%까지 줄었고, 올해 조금 상승하여 25.2%를 기록했다. 전반적으로 지난 10년간 계층 이동 가능성은 하향 추세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또한 사회·경제적 지위가 상층일수록 계층 이동가능성이 55.9%로 크다고 보고, 중층은 30.6%, 하층은 14.9%로 능력주의에 대한 믿음은 깨지고 있다. 능력주의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미국조차 OECD 국가 중 높은 사회 불평등을 가진 나라 중 하나이다.

 

그렇다면 능력주의는 잘못된 것인가? 능력주의를 없애면 우리 사회는 조금 더 정의로워지는가? 그렇게 쉽게 단정할 수도 없다.

 

 

능력주의

 

능력주의의 본질은 결국 '경쟁'이다. 기회의 공정이 보장된다면, '능력이 좋은 사람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가는 것이 옳다.'라는 전제가 되어 있지만, 이 전제에는 '타인보다'라는 기본 가정이 포함되어 있다. 언뜻 보면 경쟁심화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식당 줄을 먼저 선 사람이 더 빨리 입장하는 것처럼 매우 당연한 사실이다. 사실 능력주의 자체에는 그렇게 문제가 없다. 노력 이외의 다른 요소(재산, 재능, 우연 등)가 능력주의에 개입하는 것이 문제긴 하지만, 이는 불가항력적인 부분이 많다.

 

그렇다면 무엇이 가장 큰 문제일까?

 

사실 능력주의의 폐해는 '획일화'로부터 시작된다. 각자의 행복과 성공은 그 기준이 다름에도 소득으로 획일화하고, 학창시절 이를 위한 경쟁요소를 대학교 입시로 두면서 학벌주의 등이 생겨났다. 그 결과 자연스레 책에서 표현된 바와 같이 능력주의에서 승리한 자는 '오만함'을 패배한 자는 '패배감'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마이클 샌델은 이 부분을 가장 경계하였다.). 대학교 입시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행복하고 성공할 수 있다.

 

능력은 성공의 유일한 기준이 아니다. 그럼에도 사회는 한 가지로 획일화하려고 한다.

 

 

능력주의의 폐해

 

결국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은 획일화로부터 비롯된다.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에서 벗어나면 곧 그것은 패배를 의미한다. 그래서 여러 부작용이 생긴다. 열등감 유발, 선택권 제한, 불평등, 공정하다는 착각 등이다.

 

1. 소외 계층의 열등감 유발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주류 사회에서 배제된다. 능력주의 사회에서 그것은 당연하며, 그 책임 또한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있다.

 

2. 개인의 선택권 제한

능력주의는 개인의 능력과 재능을 강조하지만, 만일 그것이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이나 재능이 아니거나,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오히려 선택권을 제한한다. 예를 들면,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에게 축구 재능이 부족하니 더 이상 축구를 하지 말고 공부나 하라는 것이 그 예시이다.

 

3. 결과의 불평등

경쟁에서 이긴 사람은 큰 보상을 얻고, 패배한 사람은 아무런 보상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불평등을 낳을 수 밖에 없다.

 

4. 공정성의 착각

능력주의에 기반한 모든 일은 공정하다는 착각을 주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능력에 따라 평가를 받아야 함에도 능력으로 포장된 출신 학교, 가족, 집안 배경 등 능력과는 다른 외적 요소에 의해 왜곡된다.

 

 

능력주의의 대안

 

하지만 문제는 능력주의의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사회를 움직이는 가장 효율적인 가치관 중 능력주의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아직까지 능력주의가 세상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마이클 샌델에 대한 비판도 이 시각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능력주의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알고 있으나, 과연 새로운 대안이 있느냐 하는 점이다.

 

그리고 과연 그가 이야기하는 능력주의에서 벗어나 이루어야 할 공공선은 무엇일까? 자칫하면 결과의 평등으로만 보여질 수 있기에 더더욱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즉, 실체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능력주의의 대안이 실제로 없는 것은 아니다. 개념적으로 다원적 능력주의라는 개념이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가 제시한 이론으로, 개인이 가진 여러 가지 능력 중 특정 능력이 뛰어나다는 개념이다. 가드너는 인간의 두뇌가 8가지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언어, 수리-논리, 시각-공간, 체감-운동, 음악, 대인, 자기 이해, 자연 이해 등이 포함되고, 이 중 하나 이상의 영역에서 탁월한 능력을 찾아 가는 것이다. 하지만 다원적 능력주의 또한 능력주의의 기준이 여러가지로 바뀐 것일 뿐 능력주의와 그 본질은 똑같다.

 

또한 다원적 능력주의는 한 국가 차원에서 본다면 원활히 돌아갈 수 있지만, 실제로 우리들의 삶에 와 닿는 집단 차원에서는 적용이 어렵다. 예를 들면, 우리가 일하고 있는 기업에서 다원적 능력주의가 가능할 것인가? 음악적 재능이 있는 직원도 우대받고, 수학적 재능이 뛰어난 직원도 우대받을 수 있을까? 즉, 국가 차원에서는 다원적 능력주의가 가능할 지는 몰라도 한 기업 내에서 이루어지긴 쉽지 않다. 그리고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결국 각 개인은 능력주의의 부작용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뜻한다.

 

마이클 샌델이 능력주의의 대안으로 결코 다원적 능력주의를 말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국 그의 입장에선 다원적 능력주의도 능력주의이기 때문이다. 나도 이에 동감한다. 다만 다원적 능력주의만한 대안은 현재 없다고 생각한다.

 

 

다원적 능력주의 그 너머

 

다원적 능력주의도 결국 그 본질은 능력주의이고, 부작용 또한 있지만 이만한 대안이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식당 줄을 먼저 선 사람이 더 빨리 입장하는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실이기 때문이다(물론 식당 줄을 설 필요가 없을 정도로 식당이 크다면 모두가 줄을 설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정된 자원에서 그건 이뤄지기 어렵다.). 무엇보다 지금도 능력주의의 폐해를 사후에라도 보완하기 위한 많은 노력들이 있다. 예를 들면, 능력주의에 따른 성과(급여)를 차등하여 세금을 거두고 이를 재분배하여 어느정도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다. 이렇듯 능력주의 자체의 부작용을 없앨 수는 없지만, 어느정도 해소할 수는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다양성'과 '존중'이다. 개인의 자율과 희망에 따라 자유롭게 다양한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하고, 그에 대해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 분야에서의 기회가 아닌 다양한 분야에서 얻을 수 있는 공정한 기회, 그리고 그 기회를 통해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육이 필요하다. 교육에서 이를 얻지 못한다면, 사회에서 다양한 기회를 얻기에는 그 비용이 클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교육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 개인의 능력을 찾는 기회를 얻고 사회에서는각 개인이 찾은 능력을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능력주의의 폐해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다. 물론 설사 이렇게 된다 할 지라도 100%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담보할 수는 없겠지만 문제없는 사회가 어디 있는가, 조금씩 조금씩 문제를 찾아 개선해 나가면 사회는 좋은 방향으로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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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화려한 문장도 없고, 생각지도 못한 스토리도 아니다.

그저 담담한 문장으로 노인이 물고기를 잡는 단순한 스토리를 그려냄에도 우리에게 강렬한 인상을 준다.

 

치열한 노인의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다시금 치열한 삶을 동경하게 만든다.

어쩌면 그 어떤 동기부여 책보다 최고의 동기부여 책일 수 있다.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우리의 삶은 치열해야 한다. 

단순한 낚시꾼의 이야기를 넘어선 삶과 그 본질에 대한 성찰이 돋보이는 책이다.

 


'노인과 바다'를 읽고

 


헤밍웨이의 대표작, 노인과 바다

 

헤밍웨이는 1899년 미국 시카고 근교에서 태어나 의사의 아들로 자랐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풋볼 선수로 활약하다가 졸업 후 기자 생활을 하였고,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앰뷸런스 운전병으로 참전하고 훈장을 받았으며, 1936년 스페인 내전에도 참전했다. 작가로서 헤밍웨이는 초기에 무명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점차 명성이 커졌고 1954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노인과 바다'는 헤밍웨이의 대표작 중 하나로 그의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다. 실제로 그는 낚시를 좋아했는데 청새치 낚시를 하며 이 작품을 구성했다고 한다. 이 작품을 통해 헤밍웨이는 1953년 퓰리처 상을 수상하고, 이후 노벨 문학상까지 수상했다. 비록 짧고 매우 단순한 줄거리지만, 헤밍웨이가 심혈을 기울인 만큼 작품에서 던지는 메시지는 매우 강렬한 이미지를 준다.

 

 

바다에서 펼쳐지는 노인의 투쟁

 

우선 소설에서는 어부인 산티아고와 그를 존경하는 소년 마놀린이 등장한다. 주요 인물은 단 2명이고, 매우 단순한 구조이지만 인물들의 심리 변화와 사색, 대화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작품에서 산티아고는 낚시 베테랑임에도 불구하고, 고기를 잡지 못한 지 84일이 지났음에도 의지를 잃지 않고, 매일 낚시를 하러 나간다. 그런 산티아고를 마놀린은 40일 동안 함께 하지만 이후 부모님이 산티아고 배에 타는 것을 금지시켜 함께 하지 못하게 된다. 배에는 함께 타지 못했지만, 마놀린은 아침에 산티아고를 찾아가고 출항을 도와준다.

 

바다 위에서 노인은 새들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내고, 물고기가 미끼를 물기를 기다린다. 그러던 중 매우 큰 물고기가 미끼를 물었고, 그는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적절히 낚싯줄을 쥐고 풀며 물고기를 유도한다. 하지만 노인의 배가 끌려 다닐 정도로 물고기의 힘이 매우 강했고, 쉽사리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노인은 물고기의 힘이 빠질 때까지 기다리기로 결심하고, 손이 쥐가 날 정도로 오랜 시간 낚시줄을 붙잡고 있다. 결국 오랜 장기전 끝에 물고기가 몸을 드러내는데 노인이 탄 배보다 클 정도로 매우 큰 물고기였고, 대단한 물고기라고 감탄을 하며 형제애를 느끼지만 마지막엔 죽여야 한다는 결의를 다진다. 세 번째 아침 날이 되어서야 노인은 작살로 물고기의 숨통을 끊고, 배로 물고기를 끌어 항구까지 이동하려고 한다.

 

그러나 물고기의 피냄새를 맡은 상어들이 공격을 해오기 시작했고, 노인은 격렬히 저항을 하지만 점차 물고기는 상해가기 시작한다. 한밤 중에 항구에 도착하자 지친 노인은 자신에 집에 들어가 잠들고, 마놀린은 그의 상처 난 손을 보며 마음을 아파한다. 사람들은 노인의 배에 묶여 있는 물고기의 뼈를 보고 놀란다. 노인이 깨어난 후, 마놀린은 다시 노인에게 낚시를 가르쳐 달라 말하고 노인은 낮잠을 자며 사자 꿈을 꾸며 소설은 마무리가 된다.

 

 

존경해야 할 산티아고의 삶, 투쟁의 삶

 

해밍웨이는 작품 '노인과 바다'를 “평생 바쳐 쓴 글이자 내가 가진 능력으로 쓸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고 평했다. 실제로 그는 이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200회의 탈고를 했다고 한다. 마치 노인과 같이 쓴 작품이 세계의 명작 '노인과 바다'를 완성시킨 것이다.

 

먼 바다에서 펼쳐지는 노인의 사투를 그린 이 책은 매우 단순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한 노인의 투쟁과 의지를 매우 절제된 문장으로 강렬하게 표현했다. 문학적으로 절제된 표현도 좋지만 나는 이 작품이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까닭은 바로 '투쟁'에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 모두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동질감을 느끼는 것이다.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기에 우리는 항상 삶의 성공을 확인하려 한다. 그리고 바보 같이도 그 성공을 남과의 비교를 통해 확인한다.

 

산티아고(노인)는 84일 동안 물고기를 잡지 못하지만, 매일 매일을 투쟁적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샀다. 물고기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노인을 비웃는 그 사람들이 현재 우리의 모습일 지 모른다. 삶은 치열한 투쟁의 연속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항상 그 결과를 확인하려고 한다. 우리의 삶은 노인의 삶처럼 얼마나 투쟁하고, 치열했느냐로 판단해야 한다. 어쩌면 그것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어린아이일지도 모른다. 극 중에서 가장 순수한 아이인 마놀린은 노인의 삶을 존경한 유일한 인물이었다. 우리가 보기엔 가장 치열하지 않은 삶을 살아온 아이가 노인의 삶을 이해한다는 것은 작가가 우리에게 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치열한 삶을 살수록 동시에 그 삶을 포기하고 노인을 비웃던 주변 사람들처럼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모두 어린시절 일어서기 위해 몇 번이나 시도했는지를 깨닫는다면 그 모습을 다시 찾을 수 있다.

 

 

사자의 의미

 

또한 산티아고는 항구에서 출발하기 전, 그리고 돌아왔을 때 사자 꿈을 꾸는데 이는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끝까지 이겨내는 용기를 상징한다. 추가로 산티아고가 대어를 낚는 복선이라 해석하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 상어에게 모두 빼앗겨 뼈만 남은 것을 볼 때 그 어떤 역경에도 용기를 잃지 않는 것을 상징한다고 느껴진다. 대어를 낚든 그 어떤 물고기를 낚든 항상 치열하게 맞서는 것이다.

 

책에서 비유로 활용된 사자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영토 분쟁, 새끼 사자 보호, 사냥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한다. 쉼 없이 달리는 사자의 삶은 투쟁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산티아고의 말

 

작가의 생각은 산티아고의 말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옳지 않은 일일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나는 이놈에게 사람이 어떤 일을 할 수 있으며 얼마나 견딜 수 있는가를 보여주겠어." 지금까지 그는 그 증명을 수천 번이나 해왔지만, 결국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노인은 이제 또 다시 자기 말을 증명하려고 하는 것이다. '몇 번이라도 상관없다. 기회란 그것을 잡는 자에게 항상 새로운 것이니까'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희망을 버린다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어"

 

"물고기야." 노인은 말했다. "난 널 사랑하고 또 무척 존경한단다. 하지만 오늘이 지나기 전에 널 죽이고 말겠다."

 

노인과 바다에선 바다라는 거대한 삶에서 노인이 역경을 의미하는 물고기를 대하는 자세를 통해 삶에서 가져야 할 태도를 보여준다. 역경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저 의지를 가지고 치열하게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볼 뿐이다.

 

 

우리가 배워야 할 점

 

어느 순간 많은 사람들이 "적당히", "적당히"라고 이야기하며, 치열한 삶을 더 이상 동경하지 않게 되었다. 삶에 찾아오는 역경을 환경 탓으로 돌리며 회피하는 경우도 많았다. 적당히 살아가는 삶이 나쁜 건 아니다.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살아가는 것일 뿐 그 누가 더 옳고 그르다 할 수 없다.

 

그저 만일 노인의 삶에서 묘한 동경심이 느껴졌다면 한번쯤 그렇게 살아갈 필요가 있다. 치열한 삶을 살수록 우리 삶은 더욱 생기가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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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0분 MBA는 경영에 대한 100가지 기본을 정리한 책으로, 총 11개의 Chapter로 구성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다. 기본 원리는 누구나 항상 기억해야 하는 원리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책 자체가 워낙 부담이 없다. 쉽게 쓰여졌고, 원리 별로 다양한 사례도 있다.
 
책상에 항상 두면 좋을 책이다.
 
[책의 목차]
들어가며
Chapter 1 논리적 사고
Chapter 2 문제 해결
Chapter 3 경영 전략
Chapter 4 마케팅
Chapter 5 리더십
Chapter 6 조직
Chapter 7 정량 분석
Chapter 8 회계
Chapter 9 재무
Chapter 10 신사업 개발
Chapter 11 소통
 


하루 10분 MBA
부제 : 매일매일 실천하는 비즈니스의 100가지 기본

 

하루 10분 MBA는 경영에 대한 100가지 기본을 정리한 책이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결국 경영의 모든 해답은 '기본'에 있다라는 사실이다. 비즈니스를 처음 접하는 초보자부터 실무 경험이 있는 사람들까지 모두에게 유익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총 11개의 Chapter로 논리적 사고, 문제 해결,경영전략, 마케팅, 리더십, 조직, 정량 분석, 회계, 재무, 신사업 개발, 소통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이 좋은 점은 각 비즈니스의 기본적인 사항을 사례와 함께 읽기 쉽게 작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책 제목처럼 말 그대로 하루 10분만 투자한다면 비즈니스의 기본 하나씩은 배워갈 수 있다. 무엇보다 실제 기업에서 발생한 문제를 예시로 들어 기본 원리를 설명해주고 있어, 이론과 실무를 함께 학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고 보면 이 책은 그 어떤 책 만큼 기본에 충실한 책인 것 같다. 책 제목을 내용이 충실히 설명하고,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끔 되어 있다.)

인사팀에서 일하고 있는 나에겐 개인적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끔 만드는 책이었다.
여러가지 기본사항을 보면서 생각나는 사례들이 있었고, 때로는 이런 기본을 지키지 못한 경우도 생각났다.

책의 원리 중 '내용과 인격을 구분하라'라는 내용이 있다. 의사결정을 할 때 사람의 됨됨이에 휘둘리는 것을 경계하라는 의미이다.

배치, 평가, 승진, 보상 등을 할 때 HR부서는 때로는 성과가 아닌 인격에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조직 내 정치적인 논리가 많이 작동하는 경우 특히나 그렇다. HR부서와 친한 직책자의 조직 또는 직원 등이 우대를 받는 것이다. 이 경우 HR부서의 신뢰도는 떨어지고 그 안에 있는 HR 실무자들의 상태 또한 의사결정의 비합리성으로 동기부여 감소 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결국 HR부서는 조직 내 정치의 중심이 되고, 그에 휘둘리는 조직으로 전락한다. 이러한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성과와 인격을 구분하여 공정한 의사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물론 사람의 됨됨이, 인격 등이 HR 의사 결정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경우도 있다. 신임 직책자 선정, 중요 프로젝트 팀원 선정 등이 그 예이다.)
 
이 책은 내용도 좋지만, 읽기 쉽게 구성되어 있어서 한 번에 많은 양을 학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매일 10분씩 투자하기만 해도 비즈니스의 기본을 하나씩 배울 수 있다는 컨셉이 독특하면서도 바쁜(?) 현대인들에게 매우 매력적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일하고 있는 분야에서 어떤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기본적인 지식이 필요한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사실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다. 그리고 단지 1번 읽고 멈추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현업에서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해당 이슈가 어떤 기본원리에 해당하는지 정리하면 더 좋을 듯 하다.
 
총평하자면, 이 책은 비즈니스를 전공하지 않은 분들에게도 추천할 만한 책이다. 경영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분들도 이 책을 통해 기본 개념을 쉽게 이해하고, 실무에서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실무에서 일을 하고 있는 분들에게도 비즈니스 기본 원리를 다시 되돌아 보고, 본인의 경영 역량을 향상시키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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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무엇이든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예를 들면, 대학교 신입생이나 사회초년생, 정년퇴직자 등이 해당될 것 같다.

 

"좋은 이론은 변덕을 부리지 않는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경영학 이론을 토대로 인생을 어떻게 경영해야 할 지 알려준다.

좋은 경영학 이론은 인생 경영에서도 당연히 적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래 각 이론은 책에서 언급한 주요 경영학 이론이다. 

대리인 이론, 2요인 이론(동기 이론), 의도적 전략, 창발적 전략, 발견지향기획, 만연된 역설, 좋은 돈과 나쁜 돈, 해야 할 일 이론, 능력 이론, 맥콜의 경험의 학교, 조직문화, 총체적 사고와 한계적 사고 등이다.

 

이 책은 꼭 추천하고 싶다. 후회하지 않을 책이다.

 


하버드 인생학 특강

부제: How Will You Measure Your Life?

 

  클레이튼 크리스톈슨 교수의 '하버드 인생학 특강'은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종강일마다 수업한 행복한 삶을 위한 인생학 특강 내용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우리의 삶을 우리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과연 얼마나 명료하고 좋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을 위해 크리스톈슨 교수는 경영학 이론을 활용한다. 이 책이 다른 자기계발서와는 다르게 더욱 의미 있는 이유는 경영학 이론을 통해 매우 설득력 있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경영학 이론이 사람의 삶과 도대체 어떤 연관이 있기에 우리에게 설득력 있게 느껴질까? 바로 사람의 특성으로부터 조직의 특성을 이끌어낼 수 있듯이, 조직의 특성으로부터 사람의 특성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스펜서는 유기체 진화론으로 사회 진화론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냈고, 이후 이 개념은 조직의 특성과 유기체의 특성이 유사하다라는 이론으로 발전되었다. 그렇다면 이 이론에 기반해 생각해보면 가장 이상적인 기업은 어떤 기업일까? 바로 '사람'과 같은 기업이다. 사람만큼 빠르게 발전하고, 뛰어난 유기체는 없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뛰어난 경영학 이론을 사람의 삶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크리스톈슨 교수가 이 생각을 가지고 특강을 한 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책은 경영학의 이론, 사례 등을 사람들의 삶에 적용하여 설명한다.

  

 

  1부. 사회생활 속에서 행복 찾기

  

  무엇이 우리는 춤추게 하는가

  사회생활은 우리의 인생의 큰 비중을 차지할 수 밖에 없다. 누구나 성년이 되면 일을 하고, 자연스럽게 사회 속에서 자신의 삶을 경영한다. 우리는 사회생활 중에 어떤 것에 가장 기뻐할까? 모두 대답은 다를 테지만, 대부분 '돈'을 말하곤 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돈은 우리에게 위안감을 주기는 하나, 만족감을 주는 경우는 많지 않다. 실제로 인센티브를 통해 근로자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와 관련된 대표적 경영학 이론이 바로 '대리인 이론'이다. 대리인 이론은 경영진과 주주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론으로 주가가 오를 수록 경영진이 더 높은 보상을 받으면, 경영진과 주주 모두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이론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대리인 이론이 옳다면 비영리 단체의 경영진이나 직원들은 무얼 위해 그렇게 노력하는 걸까? 또한 군인은 어떠한가? 우린 돈만 많이 주면 행복감을 느끼며 항상 열심히 하는가? 답은 아니다. 돈은 우리에게 항상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린 사회 생활 속에서 어떤 것을 가장 중시해야 할까? 대리인 이론과 반대되는 허즈버그의 '2요인 이론(동기 이론)'이 있다. 이 이론의 핵심은 만족과 불만은 독립된 기준이라는 점이다. 우린 어떤 것에 대해 만족하면서 동시에 불만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만족과 불만에 각각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동기부여 요인, 위생 요인이라 하는데 동기부여 요인은 도전적인 일, 인정, 책임, 개인적 성장 등이 해당하고 위생요인은 지위, 보상, 고용 안정, 직무 조건, 회사 정책, 감독 관행 등이 해당한다.

 

  눈 여겨 봐야 할 점은 보상이 위생 요인이라는 점이다. 즉, 돈은 우리에게 만족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 불만족을 감소시켜 줄 뿐이다. 회사는 임금 체계에 직원들이 불만이 가지지 않도록 만들 뿐 동기부여 요인을 통해 근로자들을 격려해야 한다. 우리 각자에게 시사하는 바는 뭘까? 앞으로 우린 사회 생활 속에서 돈을 찾는 것이 아니라 '과연 나에게 도전적인 일인가?', '인정받는 일인가?', '개인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일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2요인 이론을 알고 이를 실천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의도적 전략과 우연한 기회를 잘 활용하는가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우리가 사회 생활 속에서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고 해서 탄탄대로 모든게 흘러가지 않는다. 만족감을 주는 일을 찾으러 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으며,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의도적 전략과 우연한 기회(창발적 전략)을 적절히 잘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다시 경영학으로 돌아가 보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회사는 전략을 수립한다. 이를 의도적 전략이라 한다. 혼다의 사례를 보면 이해가 더 쉽다. 혼다는 미국 시장에서 오토바이를 판매하기 위해, 저렴한 오토바이를 출시하고 판매했다. 그러나 매우 저조한 판매 실적으로 혼다 미국 사업부는 사실상 철수 위기에 놓여져 있었다. 즉, '의도적 전략'이 실패한 것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한 직원이 사용하는 소형 오토바이를 본 미국 소비자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혼다는 미국인들이 주로 대형 오토바이를 탔기 때문에, 소형 오토바이는 미국인들이 관심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에 소형 오토바이 판매라는 '창발적 전략'이 생겨났다. 곧 창발전 전략이 새로운 의도적 전략으로 변하며, 혼다는 미국에서 성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창발적 전략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의도적 전략, 창발적 전략 그 둘 중 뭐가 더 적절한 지 우리는 상황에 따라 선택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원을 생각하기에 앞서 전략이 유효한 지 아닌 지 판단하기 위해 우리는 이안 맥밀런과 리타 맥그래스가 명명한 '발견지향기획'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전략이 효과를 보게 만들려면 무엇이 사실로 판명되어야 하는가'를 찾는 것이다. 가정을 검증하는 것이다. 이 전략이 효과를 보기 위해 필요한 가정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가정은 과연 맞는가?를 찾아보면 전략의 유효성을 쉽게 판단할 수 있다. 사례를 보면 디즈니랜드는 파리 테마파크를 개장하면서, 그 규모가 다른 테마파크와 모두 똑같다고 가정을 하고 매년 3,300만명이 방문한다는 계산 하에 호텔과 인프라 등을 건설했다. 그러나 실제는 1,100만명 수준이었다. 왜일까? 파리 테마파크는 다른 테마파크 기구의 1/3 수준이었다. 하루면 모두 탈 수 있는 규모였다. 디즈니랜드의 전략이 맞기 위한 기본적인 가정이 틀린 것이다. 

 

  이제 유효한 전략을 찾았다면, 자원을 어떻게 활용할 지가 중요하다.

 

  나의 자원을 어디에 집중할 것인가

  흔히 CEO의 경영철학이 회사 곳곳에 퍼지지 않는 현상을 볼 수 있다. CEO 입장에서 보면 답답할 노릇이다. 하지만 그 원인의 대부분은 자원 할당 문제에 있다. 이는 크리스톈 교수가 '혁신기업의 딜레마'에서 말한 '만연된 역설' 문제이다. 새로운 비전, 변화 등을 제시할 때 가장 큰 실수는 기존의 자원 할당을 그대로 두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전략에 대한 불확실, 관성대로 움직이려는 저항 등으로 자원 할당을 바꾸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면, 새로운 CEO가 경쟁보다는 서로 협업을 통해 조직을 이끌겠다고 공표했다고 생각해 보자.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발표하더라도 대부분 기존 경쟁을 위한 평가체제(상대평가)는 유지한다. 이런 회사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우리도 흔히 삶에서 똑같은 실수를 한다. 목표를 가지고, 어떻게 살겠다는 계획은 세우나, 그에 맞는 자원을 할당하지는 않는다. 가족을 위하고 싶다면 가족을 위한 자원을 할당해야 한다. 그리고 자원 할당은 목표가 변하지 않는 한 지속성을 가져야 한다. 단 한 순간만 가족을 위해 시간을 할애한다고 해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 실행하고 싶은 전략이 있다면, 우리의 자원 흐름을 보면 된다. 그러면 과연 전략 실행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있다.

 

 

  2부. 관계 속에서 행복 찾기

 

  문제가 생기기 전에 관계에 투자하는가

  전략과 우선순위는 사회생활, 본인의 커리어에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인생의 전략과 우선순위는 사회생활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도 당연히 포함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관계에 대해서 투자를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관계에 문제가 생기는 순간은 다시 되돌리기엔 너무 늦은 상황이다. 

 

  관계란 결국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되고 쌓이는 것이기 때문에 한 순간의 투자로 나아지지 않는다. '좋은 돈과 나쁜 돈' 이론을 보며 우린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좋은 돈은 최소한의 돈으로 성공 전략을 찾아낼 것을 주문하는 돈이다. 성장보다 이익을 중시하는 돈이기 때문이다. 반면 나쁜 돈은 빠르게 성장하길 요구하는 자본이다. 

  언뜻 보면 좋은 돈과 나쁜 돈의 개념이 바뀐 것으로 보이지만, 초기 전략은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전략으로 수정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좋은 돈'을 통해 전략을 수정하며 성공 전략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반면 '나쁜 돈'인 경우에는 지속적으로 성장을 요구하기에 하나의 전략으로 자본이 소진될 때까지 계속해서 투자한다. 그러다가 결국 자본이 소진되고, 더 이상 새로운 사업을 추진할 자본도 시간도 없게 된다.

 

  우리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나쁜 돈의 유혹에 빠져 종종 우리는 회사에서의 성공, 성취에만 끊임없이 투자한다. 그리고는 합리화를 한다. 훗날 회사에서의 성공이 본인들의 가족, 친구 관계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 결과 우리에게 남는 것은 얆은 관계일 뿐, 두터운 관계는 하나도 갖지 못한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깨달은 순간은 이미 늦는다. 기존 사업이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할 때, 신사업을 투자하는 것이 이미 늦었듯이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문제가 생긴 순간 투자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제 인생의 우선순위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가장 큰 행복 중 하나는 가족들과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나온다. 그렇기에 인생의 어느 부분보다도 우리가 투자해야 할 부분임은 분명하다. 

 

  상대를 이해하고 헌신하는가

  기업이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뭘까? 고객이 정말로 원하는 것보다 고객에게 팔고 싶은 것만 과도하게 집중하기 때문이다. 한창 기업에서는 고객 페르소나가 유행한 적이 있다. 고객의 가면을 쓰고,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기업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기업은 도태된다.

 

  우리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헌신해야 우리의 관계도 계속해서 발전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상대방을 이해하고 헌신해야 할까? 그 답은 바로 '해야 할 일 이론'에 있다. 이는 고객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이유는 바로 일을 하기 위함이다. 즉 일종의 '고용'인 것이다. 이 관점에서 관계를 보면, 우리는 어떤 식으로 헌신하고 배려를 해야 할 지 꺠닫게 된다.   

 

  아이가 도전을 겪을 때 함께하는가

  딩크족, 비혼주의자 등 갈수록 아이를 가지지 않는 가정이 많아지긴 하나 아이를 키우는 것이 그 어떤 관계가 주는 행복보다도 특별하다는 사실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자녀가 있는 사람이라면, 아이와의 관계가 행복의 중요한 요소일 수 밖에 없다.

 

  경영학에서 흔히 아웃소싱 비율이 높을수록 기업은 자본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아웃소싱의 비극을 우리는 종종 볼 수 있다. 본인의 경쟁력을 하나씩 아웃소싱하다가 결국 껍데기만 남게 되는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선 '능력 이론'을 알 필요가 있다. 미래에 성공하고 지속적으로 필요한 능력을 생각하면 아웃소싱 할 영역과 아닌 영역을 구분할 수 있다.

 

  아이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아이의 능력은 자원, 프로세스, 우선순위로 구분할 수 있다. 아이가 가진 물질적, 경제적 자원 그리고 자원을 가지고 성취하기 위해 하는 일련의 과정이 프로세스이다. 마지막으로 아이가 삶에서 정해놓은 우선순위이다. 이 3가지를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아이의 능력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종종 우리는 실수를 한다. 무분별한 자원을 제공하거나, 프로세스 과정을 직접 수행하도록 하지 않고 대신 해주거나, 부모가 원하는 우선순위를 강요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실수를 아이의 능력이 발전되어지는 과정, 도전하는 과정을 다른 사람에게 아웃소싱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아이와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아웃소싱하는 것과 같다. 그 결과는 당연히 껍데기만 남은 관계일 뿐이다.

  

 

  경험의 학교에 입학시켰는가

  CEO 또는 직원들을 새로이 채용할 때, 많은 기업들은 대상의 경험을 보기 보다는 현재의 위치 등 이력서의 내용만을 보고 성공 여부를 평가한다. 그러나 경험 관점으로 바라봐야만, 제대로 된 평가를 할 수 있다. 맥콜의 '경험의 학교' 모델 이론에 따르면 경험의 학교에서 적절한 과정을 밟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건 성공한 확률이 올라간다. 경험을 통해 성장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만일 신생기업 CEO를 찾고 있다면, 자본이 없는 기업을 경영한 경험이 있는 CEO를 찾아야 한다(그러나 대부분은 대기업 등 유명한 회사를 경영한 CEO를 찾는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경험의 학교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줘야 한다. 그러나 오히려 종종 아이들의 경험을 뺏는 경우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개학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이의 방학 숙제를 부모가 대신 해주는 것이다. 아이의 학업 평가는 좋아질 지 모른다. 그러나 아이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경험을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스스로 배우도록 경험의 학교를 제공해주어야 한다. 그 기회를 뺏거나 스스로 배우기 전에 가르쳐서는 안된다. 

 

 

  보이지 않는 문화를 만드는가
  
조직문화는 가장 강력한 회사의 특수적 무기 중 하나이다. CEO와 경영진이 조직문화를 새로이 변화시키고자 하지만 대부분 실패한다. 문화란 '공통적인 목표를 향해 함께 노력해가는 방식'이다. 그리고 문화는 자주 이루어지고, 성공적인 결과와 피드백을 가져와야만 형성될 수 있다. 단 1번에 그치거나,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하면 문화는 쉽게 잘못된다.

 

  독특한 문화를 가진 기업 중 픽사가 있다. 픽사는 좋은 아이디어를 감독이 영화로 만드는 것이 아닌 감독이 스스로 아이디어를 찾고 이를 영화로 만들도록 지원한다. 그리고 제작 중인 영화를 직원들에게 피드백 받는다. 픽사의 피드백 문화는 매우 '정직'하다. 잔인하기도 하지만 모두가 완성도 높고 독창적인 영화를 만들자는 목표를 공유하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감독이 직접 아이디어를 찾고, 영화를 만드는 독창적인 프로세스와 모두가 공감하는 최우선 목표가 결합하여 픽사만의 문화를 만들어낸다. 즉, 문화는 프로세스와 우선순위 간의 조합이다.

 

  성공적인 가정을 위해선 가족문화 또한 필수적이다. 문화를 통해 아이들은 배우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많은 가정이 가족문화 형성에 실패하는 이유는 바로 '일관성'이 부족해서이다. 근본적으로 항상 일관성을 가져야만 가족문화는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3부. 좋은 삶을 위한 중간평가

   

  '이번 한번만'이라는 유혹을 이겨내는가

  앞에서 경영학 이론을 통해 어떻게 삶을 살아가야 할 지 배웠다면, 마지막은 '우리가 성실한 삶을 산다는 걸 어떻게 확실할 수 있을까'란 질문에 대답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이 대답에 사용되는 이론이 바로 '총체적 사고와 한계적 사고'이다. 기업의 실사례로 보면 블록버스터와 넷플릭스가 가장 적합하다.

 

  넷플릭스가 두각을 보이던 2002년도에 블록버스터는 거대한 자본을 가지고 넷플릭스 시장에 뛰어들어 넷플릭스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었다. 블록버스터는 이를 위해 금융과 경제학의 기본 원칙을 따랐다. 매몰과 고정비용을 무시하고, 한계비용과 한계수익만을 고려하여 투자 결정을 내렸다. 이는 경제학의 가장 기초적인 원칙 중 하나로, 한계비용과 한계수익이 같아지는 지점까지 기업은 생산을 한다.

 

  블록버스터 입장에서는 이익 마진이 36%인 넷플릭스의 사업은 블록버스터 사업 마진 66%에 비해 너무나도 작게 보였다. 즉, 한계비용은 낮고, 한계수익은 높게 분석이 되었다. 더군다나 넷플릭스를 시장에서 이긴다고 할 지라도, 블록버스터 기존 사업이 잠식될 위험성이 너무 컸다. 그래서 블록버스터 경영진은 넷플릭스가 가진 사업의 잠재력을 보지 못했다. 기존사업에 얽매인 한계적 사고에 갇힌 것이다. 2010년 블록버스터는 결국 파산했다(블록버스터의 선택이 옳기 위해서는 미래가 항상 현재와 동일하다는 가정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삶에서 한계비용의 의미는 바로 '이번 한 번만'이다. 한계비용은 항상 낮게 느껴진다. '이번 한 번만 하지 뭐'라는 생각은 선택의 순간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유혹이다. 사소해보이지만 이 선택은 우리의 삶을 바꾼다. 왜냐하면 항상 100퍼센트를 지키기보다는 98퍼센트를 지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번 한 번만'은 절대로 한 번에서 끝나지 않는다. 한계적 사고의 가장 큰 문제는 선택했을 때 비용은 쉽사리 보여주지만, 선택을 하지 않았을 때 생기는 비용은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결국 느껴지는 손해, 비용 앞에서 잘못된 선택을 한다. 본인의 생각하는 가치관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결국 가치관에서 어긋나는 선택에 절대 양보하지 않는 것이다.

 

 

  경영학 이론과 기업의 사례에서 올바른 삶의 모습을 찾는 방식은 매우 흥미롭다. 경제학, 경영학 이론을 공부하면서 매우 흥미로운 개념들을 많이 봐왔고,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조언을 주는 경우도 많았다. 예를 들면 '통계적 차별'이란 개념도 매우 나에겐 유용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각자의 삶도 이 경영학, 경제학 이론을 통해 분석해봤으면 좋겠다. '과연 내 삶은 좋은 삶인가?'에 대한 답은 오직 본인만이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된 이론들은 책 내용을 떠나서 모두 Insight를 주는 이론이다. 자세히 읽고 꼭 숙지하면 좋다. 특히 나는 한계적 사고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다. 모두들 목표로 하는 대기업에서 범하기 쉬운 오류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국내 대기업 중 하나였지만, 이전에는 별볼일 없는 사업 모델이라고 무시당한 기업이 바로 '카카오'이다. 당시 카카오톡은 별다른 수익 구조가 존재하지 않았다. 국내 통신사들 모두 아마 카카오 톡의 사업 모델 적용을 검토해봤을 것이다. 그러나 카카오톡은 사용자가 늘수록 적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구조였으며, 문자 메시지, 전화 등 통신료가 감소하기 때문에 쉽사리 시작할 수 없었다. 블록버스터와 동일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 그 결과 통신사들은 현재 덤파이프(Dum Pipe) 역할만 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한계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항상 상황만을 모면하는 삶을 살아갈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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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경영 방법론 책이다.

혁신이라고 하기에는 뭐 하고, 다만 '시장 검증' 방법론이라고 하는 것이 직관적일 것 같다.

무엇보다 이것이 의미 있는 이유는 적은 비용으로도 고객들의 행동을 알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아래에서는 적극적 투자 지표라 표현됨)

 

설문조사 등은 고객들의 생각을 알아보는 것인데 생각과 실제 행동이 동일한 지가 않기 때문에,

이 방법론은 상당히 유용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VOCA 시대에 맞게 빠르게 적용이 가능하다.

 

방법론은 많이 알 수록 좋다. 각각의 방법론을 세분화(모듈화)하여 운영할 수 있다면,

기업 혁신에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새로운 방법론을 공부하고, 정리할 것이다.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을 읽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수 많은 성공 스토리를 우리는 알고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보통 그 이야기를 듣고, 자신도 똑같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많은 스타트업이 실패를 했고, 또 지금도 하고 있다. 그리고 굴지의 대기업들이 내놓는 새로운 사업도 어김없이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왜일까? 수 많은 성공 스토리를 알고 있는데도 왜 실패를 할까?

심지어 대기업에서는 수 많은 시장 조사와 준비를 거치고도 실패한다.

 

책에서 저자[각주:1]는 그 이유를 애초에 '안될 놈'이어서 였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안될 놈'을 구분할 수 있을까?

 

'시장 실패의 법칙', 대부분 신제품은 시장에서 실패한다. 유능하게 실행해도 마찬가지이다. 실행력(마케팅, 세일즈 등)이 잘 되더라도 실패를 많이 한다. 또한 결국 실행력이 문제라고 말하는 기업들에서 담당자들 대부분은 정말 유능한 사람들이었다. 마케팅의 유능한 사람들, 세일즈가 유능한 사람들이 모였는데 정말 실행력이 문제였을까? 결국엔 '될 놈'이 아니었던 것이다(물론 '될 놈'이더라도 실행력이 없으면 실패한다.).

 

우리는 '안될 놈'을 피하고 '될 놈'을 찾아야 한다.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저자는 그 답을 데이터에서 찾고 있다. 다만 그냥 데이터가 아니다. 흔히 기업에서는 신상품을 출시하기 전 시장 조사를 한다. 하지만 그것은 진짜 데이터가 아니다. 즉, 고객의 생각을 조사하는 것은 좋은 데이터가 아니다. 고객의 생각이 아닌 행동에서 데이터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보통 고객들의 의견 등을 데이터라고 말하지만 이는 유효한 데이터가 아닌 것이다. 책에서는 이러한 오류를 생각랜드라고 말한다. 자신만의 생각랜드에 빠져서 "시장에서 이런게 있으면 좋겠다던데, 상품으로 팔면 대박날거야!"라는 오류를 범한다.

 

또 한 가지 다른 곳에서 나온 데이터를 무조건적으로 신뢰해서는 안된다. 다른 시기, 다른 장소, 다른 사람에게서 나온 데이터가 우리가 만들 상품에도 적용이 된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생각랜드에 오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나만의 데이터'를 직접 수집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데이터를 수집할 때 사용하는 도구가 바로 '사고 도구'이다. 확증편향을 방지하고, 고객들의 적극적인 투자 지표를 알기 위한 방법이다. 우선 아래 3가지 도구를 사용하여 본격적인 데이터 수집 전 가설을 세워야 한다. 이 가설은 아이디어가 시장에서 어느정도 호응을 받을 지를 객관적으로 데이터화 한 것이다. 즉, 이 가설이 옳다면 아이디어는 '될 놈'인 것이고, 틀리다면 '될 놈'이 아닌 것이다. 시장 성공 조건의 최소한을 가설로 세운다 생각하면 된다.

 

1. 시장호응가설: 시장이 우리 제품에 어떻게 호응할 거라고 우리가 가정하는지를 고차원적으로 설명한 가설

 - 예) "초밥을 충분히 저렴하게 만든다면 많은 사람이 덜 신선한 초밥을 구매할 것이다."

 

그러나 이 가설은 너무 막연하기 때문에 숫자로 변환할 필요가 있다.

 

2. XYZ 가설: 시장호응가설을 데이터로 바꾼 형태로, '적어도 X퍼센트의 Y는 Z할 것이다.'라는 형식으로 바꾼 것

 - 예) "적어도 20퍼센트의 포장 초밥 구매자는 가격이 절반일 경우 '하루 지난 초밥'을 시도해볼 것이다."

이 가설을 통해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너무나도 표본이 크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들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값싸게 테스트가 가능하도록 XYZ 가설을 더 작은 여러개의 가설로 나눌 필요가 있다. 이 때 데이터를 수집할 환경, 그리고 조사 대상 그룹이 얼마나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지, 테스트 비용 등을 고려하여 적절한 가설을 만들어야 한다. 

 

3. xyz 가설: XYZ 가설을 더 작게 만든 가설.

 - 예) "적어도 20퍼센트의, 오늘 점심으로 학교 카페테리아 포장 초밥을 구매한 학생은 가격이 절반일 경우 '하루 지난 초밥'을 선택할 것이다."

 

xyz 가설이 완성되면 적은 비용으로도 이 가설이 입증 가능한 지 아닌 지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제품도 없이 어떻게 테스트를 할 수 있을까? 바로 '프리토타이핑 도구'를 활용하면 된다. 이 도구가 이 책의 핵심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4. 프리토타이핑 도구: '프리토 타입'보다도 더 먼저 검증할 수 있도록 설계가 가능한 가상의 제품(서비스) 

 - 종류: 미캐니컬 터크, 피노키오, 가짜 문, 외관, 유튜브, 하룻밤, 잠입자, 상표 바꾸기 등

 

프리토타이핑 도구의 종류는 크게 의미가 없다.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프리토타이핑의 시작은 바로 IBM의 접근법에서 기인했다.

 

IBM은 당시 음성인식으로 타이핑을 해주는 서비스를 개발하고자 했다. 그리고 실제 타이피스트를 제외한 대부분이 이 아이디어를 반겼다. 대대적인 R&D 투자에 들어가기 전 IBM은 이 생각들이 과연 사실일 지 검증하고자 헀다. 다만, 시제품이 없었고, 만들 기술력 조차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IBM은 가상으로 제품을 만들었다(실제론 사람이 듣고 치는 방식). 그리고 이를 잠재 고객들에게 테스트하도록 하였다. 처음에는 다들 깊은 인상을 받았지만, 사용할 수록 문제점이 드러났다. 그들은 이 아이디어는 실패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만약 IBM이 프리토타입을 만들어 테스트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모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방식은 매우 간단했다. 그리고 실제 제품과 동일한 수준의 테스트까지 가능했다. 이것이 바로 프리토타이핑 도구이다.

 

프리토타이핑 종류내용
미캐니컬 터크- 값비싸고 복잡한 기술이나 아직 개발되지 않은 기술에 대해 구현할 때 용이한 방법
- 예) IBM의 음성인식 실험
피노키오- 마치 작동되는 장치인 척하며, 사용 방식과 실제 가치가 있는 지 통찰을 얻는 방법
  (구현 가능한 기술과 제품에 대해 검증이 필요할 때 사용)
- 예) 스마트 스피커(실제 구현되는 것처럼 상상하며 테스트)
가짜 문-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가 있는 것처럼 '현관문'을 설치해 시장 관심도를 파악하는 방법
- 예) 가짜 광고를 만들어 실제 구매자들이 연락하는 빈도를 측정
외관- '가짜 문'과 유사하나 더 많은 투자를 통해 실제 고객의 구매 행동 등 적극적 행동을 보는 것
- '가짜 문' 방법보다 더 적극적인 지표를 알고 싶거나, 윤리적인 방법이 걱정될 때 사용
- 예) 자동차 온라인 판매 서비스를 시행하기 전 사이트를 구축하여 테스트(실제 구매도 가능)
유튜브- 영상을 통해 아이디어를 구현한 뒤, 이 아이디어에 대한 관심도를 측정하는 방법
- 예) 구글 글래스(실제 영상을 통해 탐험단 모집 후 테스트) 
하룻밤- 상대적으로 단기간에 진행하는 테스트 방식으로 특정 장소에서 딱 한번만 하는 방식
- 예) 에어비앤비
잠입자- 대량 생산에 앞서 테스트하고자 하는 제품을 기존 판매 채널에 몰래 끼워넣는 방식
- 예) 윌 허브(이케아에 몰래 제품을 전시하고, 실제 고객들의 구매 행동을 조사)
  ※ 실제 동영상: www.youtube.com/watch?v=XVnqSIVG6WE 
상표 바꾸기- 상표를 바꿔 다른 제품인 척 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보는 방법
- 예) 초밥 중 일부를 '하루 지난 초밥'으로 바꿔 판매량을 측정

[프로토타이핑 종류와 그 개념]

 

이외에도 여러가지 프리토타이핑이 가능할 것이다. 아니면 각 종류를 조합하여 새로운 방법을 만들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우선 이를 통해 '적극적 투자'를 측정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빠르고 저렴해야 한다. 적극적 투자를 측정하는 이유는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할 때 행동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대학교 시절 행동경제학 실험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한 동물을 위한 기부금에 대해 조사를 한 뒤, 바로 실제 기부 여부를 묻는 실험이었다(이 두 번째 답만큼 차감되어 실험 참가료를 받아갔다.).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은 크게 달랐다. 예를 들면 앞서 "기부금을 2만원 기부하겠다." 답한 사람 중 실제로 기부를 한 사람은 매우 적었다. 

 

그렇다면 꼭 '돈'만이 적극적 투자 지표일까? 여러가지 종류가 있을 수 있다.

 

5. 적극적 투자 지표: 시장의 반응에 대해 적극적 투자 점수를 할당하는 방식

유형투자 점수
의견0점
격려/비난0점
가짜 이메일 주소, 전화번호0점
SNS '좋아요' 0점
설문조사0점
실제 이메일 주소1점
실제 핸드폰 번호10점
시간 투자분당 1점
현금 보증금달러당 1점
주문달러당 1점

[적극적 투자 지표 예시]

 

위와 같은 형태의 적극적 투자 지표가 있을 수 있다. 물론 이 외에도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한 지표를 사전에 설정하고, 이를 프리토타이핑 도구를 통해 측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제는 데이터 결과에 따라 시장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척도가 필요하다.

 

6. 될 놈 척도: 시장에서 성공할 지 안 할지를 데이터에 따라 구분한 척도

 - 데이터가 가설을 크게 상회하면, 화살표는 '매우 높음'을 가리킨다.

 - 데이터가 가설을 살짝 상회하거나 비슷하면, 화살표는 '높음'을 가리킨다.

 - 데이터가 가설의 예측을 살짝 못 미친다면, 화살표는 '낮음'을 가리킨다.

 - 데이터가 가설의 예측을 크게 못 미친다면, 화살표는 '매우 낮음'을 가리킨다.

 - 어떠 이유에 따라 데이터가 애매하거나, 손상된 경우 폐기하거나, 중간을 가리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될 놈 척도의 결과에 따라 이 아이디어를 추진할 지, 폐기할 지, 그리고 수정해서 진행할 지를 결정하면 된다. 크게 이 책의 프로세스는 크게 4가지 구간으로 나눌 수 있다.

 

- 데이터 수집 전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시장호응가설, XYZ 가설, xyz 가설 등을 수립하는 단계

- 프리토타이핑을 통해 '나만의 데이터'를 수집하는 단계

- 될 놈 척도와 적극적 투자 지표를 통해 분석하는 단계

- 마지막으로 아이디어의 추진/폐기/수정 여부를 결정하는 단계

 

이 4가지 흐름은 빠르게 진행이 되어야 의미가 있다. 이 방법론이 무엇보다 좋은 이유는 우선 대규모 실패의 가능성을 극적으로 낮출 수 있다. 또한 아이디어를 실행해서 실패하더라도, 얻어가는 시사점 등이 상당하다. 안 될놈 가지고 아둥바둥하다가 실패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이 방법론의 효과성을 떠나서 아이디어 자체가 세상에 가치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목표와 연관되어 있고, 올바른 아이디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방법론 결과가 좋더라도, 그 아이디어가 나쁜 아이디어이거나 자신의 목표와 연관이 없으면 안된다.

 

이 책이 비즈니스에 주는 시사점은 굉장히 많다. 특히 대기업 등에 주는 시사점이 많을 것이다.

 

우선, 데이터로 움직이지 않고 추측, 의견 등 보고서 형태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대기업 조직문화 개선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최근 많이 사라지고 있지만, 대기업은 특유의 보고서 문화가 있고, 이를 기반으로 많은 의사결정을 내린다. 아쉬운 것은 이 보고서의 작성 근거가 '나만의 데이터'가 아닐 뿐더러 의견, 추측 등 생각랜드에 따른 논리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이 데이터 기반의 방법론은 대기업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무엇보다도 흔히 이야기하는 '광 팔기' 등 조직 정치에 따른 부작용들이 사라질 수 있다. 결국 데이터만이 곧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앞으로 발생할 기술들을 아이디어가 선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 본래 일반적으로 기술이 생기고 나서 상품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구체적인 아이디어 이후 R&D가 시작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왜냐하면 기술이 있어야만 아이디어를 구체화할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IBM의 음성인식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먼저 나오고 기술 개발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이것이 좋은 시사점이 될 수 있는 이유는 기술과 적용 간의 괴리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 개발은 항상 이러한 질문을 받아 왔다. "그래서 어디에 쓸건데?"라는 점이다. 기술 개발과 적용 사이의 거리를 최소화해야만 기술은 그 의미가 퇴색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실제 비즈니스에서는 이 방법론을 어떤 식으로 활용해야 할까?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각 부서에서 방법론을 숙지하고 알아서 활용하는 방식으로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우선 1차적으로 전문성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프리토타이핑 도구는 여러번 숙지할 수록 익숙해져 그 효과가 더욱 분명해 질 것이다. 그렇기에 전문적으로 하는 부서 등이 있으면 좋다. 그 다음으로 주관하는 부서 내에서 진행하는 경우 부서 이기주의 등의 부작용이 우려된다. 아이디어를 낸 부서 또는 담당자가 자의적으로 테스트 환경을 조작하는 등의 행위를 통해 데이터 결과값을 좋게 나오도록 유도할 수 있다. 즉, 자신의 아이디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임의적으로 조작하는 것이다. 기업 내에서 실제로 네트워크를 동원하여 투표를 해달라고 권고하거나 등 편법을 통해 데이터를 조작하는 경우가 많다. 프리토타이핑 도구도 마찬가지이다. 충분히 조작될 수 있다.

 

따라서 전담 부서가 필요하다. 전담 부서에서 각 신사업(서비스) 부서에서 아이디어 검증을 신청하면 이를 전문적으로 테스트하는 것이다. 새로운 사업이나 서비스에 들어가는 비용을 고려한다면, 이 테스트는 필수적으로 하도록 제도화하는 것이 좋을 수 있다. 다만 이러한 방식은 조직 규모가 큰 기업에서 적합할 수도 있다. 인력 형태나 조직문화에 따라 적용 방법은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시장 환경은 갈수록 데이터만이 모든 것을 입증하는 구조로 변할 것이고, 실제로 지금도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국내 마이데이터 사업도 그 변화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전에 기업의 행태는 대부분 데이터가 아닌 담론에 의존해서 변해 왔다고 생각한다. CEO는 거대한 담론을 이야기하고, 각 조직은 그에 맞춰 변화를 꾸려왔다. 그러나 나는 이제 거대한 담론이 크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비즈니스에서 수 많은 경계들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담론을 말해봤자 제대로 이해도 불가능하고, 한 방향으로 조직이 움직이는 것도 불가능하다. 예를 들면 같은 이야기를 들어도 서로 다르게 이해하고 다르게 행동한다. 왜일까? 너무나도 많은 변수들이 놓여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현재 필요한 것은 이 책에 나온 방법론과 같은 것들이다. 객관성을 통해 서로 간의 이해를 돕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 데이터가 좋은 점은 바로 '이해'에 있다. 모두가 동일하게 현상을 바라볼 수 있다. 즉, 프리토타이핑 도구는 아이디어를 데이터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이다.

 

 

 

  1. 알베르토 사보이아, 실리콘밸리에서 30년 넘게 기술 및 공학에 바쳐온 경험과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반영된 책이다. 구글 신화의 선봉에 있었던 엔지니어링 디렉터인 그 조차도 사업에 실패한 경험이 있었고, 그는 그 이유를 찾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이 책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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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방송에서도 소개된 책으로 유대인 학살의 주요 인물 중 한명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을 보고 쓰여진 책이다.

 

한나 아렌트의 책 중 가장 대중적인 책으로

다소 읽기에는 지루하고 또는 어려울 수 있지만 매우 흥미로운 책이다.

 

'악의 평범성'. 책에서 단 한번 나오는 이 단어는 아주 흥미로운 단어이자 새로운 개념이다.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읽으면서 알 수 없는 답답함을 느낄 것이다.

 

비즈니스에도 던져주는 의미가 깊다.

시키는 대로 하는 문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문화. 질문과 의견을 용납하지 않는 문화.

이 모든 것들이 어쩌면 악의 평범성에서 비롯된 단면일지도 모른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고

-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 -

 

1961년 미국의 예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은 간단한 실험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권위에 대해 복종하게 되는가'를 보여주었다. 교사 역할을 가진 피험자가 학생이 문제를 틀릴 때마다 15볼트씩 점차 높이며 450볼트까지 전기 충격을 주는 실험이다. 그리고 학생 역할을 맡은 연기자는 전기 충격을 받는 것처럼 연기를 한다. 밀그램은 시험 전에 단 0.1%만이 450볼트까지 전압을 올릴 것이라 예측했지만, 65%의 참가자들이 450볼트까지 올렸다. 실제로 이들 모두가 상대가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권위에 의해 굴복하여 그렇게 행동한 것이다. 이 실험은 사회적으로 매우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지지하는 실험 중 하나로 꼽힌다. 악의 평범성이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란 책에서 나온 새로운 개념으로 나치에 의해 유대인 학살이 일어난 당시, 광신도나 반사회적 성격장애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상부의 명령에 따라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유대인 학살에 참여하게 된 사실에서 나오게 되었다. 실제로 전쟁 중 잔혹한 고문을 하는 사람이 고문 도중 동료와 함께 딸 아이의 생일 선물을 고민하는 등 악한 행동이 너무나도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부제가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이기는 하지만 책에서는 마지막에 단 한번 나온다.

 

"이는 마치 이 마지막 순간에 그가 인간의 연약함 속에서 이루어진

이 오랜 과정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교훈을 요약하고 있는 듯 했다.

두려운 교훈, 즉 말과 사고를 허용하지 않은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p349 -

 

이 책은 예루살렘에서 열린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보며 한나 아렌트가 이에 대한 보고서와 견해를 쓴 책이다. 한나 아렌트의 저서 중 가장 대중적인 저서로 알려져 있다. 아이히만이 체포될 당시 그가 포악하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악인일 것이라고 모두가 예상했지만, 그 반대로 그는 지극히 평범하고 가정적인 사람이었다. 심지어 정신과 의사들 역시 그를 매우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이야기 하며 놀라워할 정도였다. 한나 아렌트 또한 같은 감정을 느꼈다. 재판 과정을 다 지켜보고 나서 '악의 평범성'에 대해 말하게 된 것이다.

 

세계를 경악하게 만든 사건을 일으킨 주범 중 하나이지만, 정작 그를 본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라고 이야기 하는 아돌프 아이히만, 그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아돌프 아이히만(Otto Adolf Eichmann)', 독일의 나치 친위대 장교로 2차 세계대전 중 독일 및 독일 점령 하의 유럽 지역 각지에 있는 유대인의 체포, 강제 이주를 계획·지휘한 장본인이다.¹ 독일의 항복 이후 가족과 함께 아르헨티나로 도망치고 리카르도 클레멘트라는 가짜 이름으로 부에노스 아이레스 근교에 숨어 있다가 결국 1960년 5월 체포되었다. 1961년 12월 예루살렘의 법정에서 독일 나치가 저지른 유대인 600만명 학살의 죄를 물었고, 그 결과 사형 판결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1962년 6월 1일 교수형에 처해지게 된다. 

 

아이히만은 도대체 왜 그러한 참혹한 비극을 저지른 것일까? 한나 아렌트는 그 원인을 아이히만이 가지고 있던 세 가지 무능성에서 찾는다. 말하기의 무능성, 생각의 무능성, 판단의 무능성이다.

 

특히 한나 아렌트는 말 자체가 행위라고 말하는데('인간의 조건'이라는 책에서 언급한 내용), 말하기의 무능성이 발생한 주요 원인은 나치가 사용한 '언어 규칙'에 있다고 이야기 한다. 유대인 학살 계획을 추진하면서도 학살 또는 유대인 이송 등 적나라한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았다. 학살은 최종 해결책, 완전 소개, 특별 취급 등으로 표현하였고 유대인의 이송은 재정착, 동부지역 노동 등으로 바꾸어 이야기한 것이다. 이러한 언어 규칙은 언뜻 보면 이 사실을 모르는 다른 사람들에게 숨기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이상하고도 매우 특이한 점을 볼 수 있다. 당시 이러한 언어규칙을 사용해야만 하는 자('비밀을 가진 자'라고 불렸던 자들로 히틀러로부터 직접 유대인 학살에 대한 명령을 들었던 사람들을 의미)가 있었고, 아닌 사람이 있었는데 후자 또한 언어 규칙을 계속 사용하였다. 이들은 이렇게 언어규칙을 사용함으로써 실제로 일어나는 일과는 다르게 그들이 평소에 가지고 있는 정상적인 사고 방식과의 위화감 등 충돌을 막을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무자비한 학살 계획 속에서도 이들은 제정신을 유지하며, 이 계획의 체계성과 질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실제로 아이히만은 유대인 학살을 주도적으로 추진한 사람 중 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유대인 가스 학살에 대해 글로보크니크²에게 설명을 듣자 상당한 거부 반응을 보였다. 또한 이러한 무능성은 예루살렘에서 열린 재판에서도 나타나는데 아이히만의 진술에 대해 판사들은 공허함이 느껴지는 진술이라며 전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말하였다.

 

이렇듯 나치가 사용한 언어규칙은 아이히만을 현실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무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럽게 생각의 무능성, 판단의 무능성으로 이어졌다. 유대인 학살 계획의 주요 인물이면서도 동시에 이러한 현실을 인지하지 못하였고, 자신이 얼마나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는 곧 판단력의 상실을 가져왔고 학살을 무자비하게 이루어졌다.

 

이 책은 한나 아렌트가 쓴 책 중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쓰여진 책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학술계에서 가장 논란이 된 책 중 하나이다. 그리고 동시에 많은 유태인과 이스라엘에서 엄청난 비난을 사기도 하였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의 내용은 아이히만을 옹호하는 듯이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책 발간 이후 한나 아렌트는 공개적으로 사과를 하며, 그러한 의도는 없었다고 이야기 하기까지 한다.

 

 

 

 

사실 이 책에서 우리가 봐야할 것은 아이히만은 어떤 사람이었고, 한나 아렌트가 옹호했고, 아니고가 아니다. 우리는 아이히만 사건 이후 얼마나 많은 악의 평범성에 대한 사례를 볼 수 있었던가.

 

수 많은 악행과 비극에는 많은 사람들이 무사유 속에서 저지르는 행동에 그 원인이 있다. 정치적인 비리 사건, 인재에 의한 사고 등 우리가 뉴스를 보며 비난하고 헐뜯는 행동들은 개인의 행동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많고도 사소한 악의 평범성이 쌓이고 쌓여 되돌아 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 단지 "어제도 똑같이 했으니까", "누가 시켰으니까", "사소한 거니까", "별일 있겠어?"라고 이야기하며 생각하지 않고 넘어가는 작은 행동들이 언제든 크게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 한국 사회는 더더욱 이러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어린 시절부터 질문을 하지 않는 문화, 이해를 못하더라도 무조건적으로 암기하는 교육 방식 등으로 인해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시키는 대로, 하라는 대로 행동하는 방식이 몸에 배이게 되었다. 심지어 질문,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마치 반대 의사라고 생각되어지는 문화가 있기도 하다. 교육이라는 명목 하에 형성된 이 폐해는 우리 사회에 넓게 퍼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폐해는 군대 생활에도 이어진다. 본래 군대에서의 계급은 각 계급의 해당하는 권한과 책임을 의미했지만, 변질되어 높은 계급이 곧 절대적이라는 잘못된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각 계급에게 주어진 권한과 책임은 망각한 채, 그저 높은 계급이 되면 정당하다는 생각을 하고, 처음 본인이 느꼈던 수 많은 부조리와 불만은 망각한 채 당연시하며 그러한 악습 위에서 생활을 한다. 그리고는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옳고 맞다는 생각을 한다. 결국 이 폐해는 '윤일병 사건' 등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로 나타나기도 한다.

 

사회 속에서도 작은 먼지와 같이 나타나기도 한다. 회사에서 생기는 불합리한 일들, 불법적인 일들에 대해 우리는 눈을 감곤 한다. 때로는 그러한 지시에 따르고, 단지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이라며 잘못을 회피하곤 한다. 아돌프 아이히만도 그렇게 이야기 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물론 대부분 이러한 것들에 대해 우리는 처벌받지 않을 것이다. 너무나도 사소한 문제들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크게 신경쓰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사소한 문제 때문에 굳이 트러블을 만들기 보다는 넘어가는 것이 좋다고 말이다. 실제로 때로는 불합리해 보이는 것도, 불법적인 것들도 좋은 결과를 빠르게 가져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생각해야 한다. 사소하지만 작은 이러한 문제들이 모여 결국엔 큰 문제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마치 연쇄 작용과 같이 작은 문제들이 이어져 큰 문제를 초래한다. 우리나라를 큰 충격에 빠지게 만든 '세월호 사건'도 바로 그러한 에라고 할 수 있다. 적재량을 초과하여 운행해온 세월호, 선박 불법 개조, 조타 실수, 기자들의 무분별한 기사, 공공안전 기관의 회피성 업무 태도 등 이 수 많은 문제는 우리 사회 모두가 사소하다며 외면해 온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The Sum of All Bad", 단지 이것은 얻기 위해 버려진 것들의 총합이다.

- 네이버 웹툰, '나이트런' Another ep.58' Another ep.58화 중 -

 

항상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 우리의 행동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그리고 과연 우리가 옳은 행동을 하고 있는지 사고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이미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사례를 통해 알고 있다. 지극히 평범하고도 가정적인 가장인 아돌프 아이히만, 그리고 그 외의 평범한 많은 나치  사람들이 저지른 결과는 참혹하였다.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을 통해 우리에게 경고를 하고 있는 듯 하다.

 

언제라도 우리 또한 '하나의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¹ 2차 세계대전 중 독일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은 홀로코스트라 불린다. 히틀러가 유독 유대인을 타겟으로 하여 학살한 데는 이유가 있다. 바로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서였다. 국가 부흥을 위한 전쟁이라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이루어진 최악의 범죄였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암울한 상황이 지속되었는데, 이 상황에서 히틀러는 선동을 하기 시작한다. 독일 게르만 민족이라는 우수한 민족이 사명을 다하지 않아 암울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으며 그 사명 중 하나가 바로 유대인이라는 사탄을 몰아내는 것이라고 한다. 그 결과 국민들은 유대인을 몰아내야만 국가가 부흥할 수 있다고 믿게 된다. 그리고 이후 유대인 학살이 아무런 죄책감 없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 처럼 히틀러는 유대인을 학살을 통해 유대인의 재산을 얻고자 하였다. 당시 상류층이었던 유대인의 재산을 몰수하여 전쟁을 일으키고자 정당한 방법으로 몰수할 수 없었던 히틀러는 유대인을 사탄이라 선동하며, 학살을 일으킨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선동이 이렇게 쉽게 된 이유는 실제로 유대인 혐오가 만연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만을 오직 유일신만으로 인정하며 예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아 당시 유럽 전연에 알려져 있던 개신교의 반감을 사고 있었다. 또한 유대교의 특징 상 율법주의, 유대인 선민사상 등 민족주의 성향이 강해 더욱 반감이 있었는데, 심지어 독일에서는 유대인은 고리사채업으로 부를 축적한 상류층으로 살고 있어 더욱 혐오의 대상이 된 것이다.

 

² 라인하르트 작전을 펼쳐 유대인과 집시 200만명을 학살하였다. 라인하르트 작전은 1942년 봄부터 1943년 가을까지 총독부령에서 시행된 독일의 유태인 초토화 작전으로 국가보안성 장관인 하인드리히 라인하르트의 이름으로 불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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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위대한 승츠비. 승리의 삶이 위대한 개츠비와 유사하다고 하여 붙여진 별명이다.

 

물론 영화 내용은 어떤지 모르곘지만, 실제 소설 속 개츠비와 승리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에게는 개츠비에게 있던 순수한 사랑(데이지)이 없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의 개츠비는 우리에게 안타까운 감정을 준다.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고 화려한 삶을 살았지만, 그가 가진 자신만의 순수한 욕망은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개츠비는 과연 위대한가 위대하지 않은가.

책을 읽어보면 자신만의 답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그렇게 우리는 조류를 거슬러 가는 배처럼 계속 앞으로 노를 저어가는 것이다.

끊임없이 과거 속으로 끌려갈지라도."

- '위대한 개츠비' 마지막 구절 -

 

위대한 개츠비 소설의 배경은 1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국을 배경으로 한다. 작품 내용은 어쩌면 흔한 주제일 수도 있는 '개츠비'라는 남자의 순수하고 무모한 사랑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작가는 '닉 캐러웨이'라는 작중 인물을 통해 관찰자의 시각에서 1인칭 시점으로 보여준다.

 

낭만적 사랑을 추구해온 개츠비는 불법적인 일을 하며 물질적 성공을 거둔 뒤, 5년 전 헤어져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된 '데이지'를 다시금 되찾고자 한다. 모든 것을 바쳐 사랑했지만 결국에는 데이지에게 배신을 당하고, 심지어 데이지와 연관된 일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죽임을 당하게 된다. 하지만 동시에 주목할 점은 결국 개츠비를 파멸에 이르게 한 것은 데이지나 그의 남편 톰이 아니라 그들이 속한 시대상에 있다는 점이다. 

 

작가의 메시지는 이에 있다. 작품을 통해 당시 미국에 만연한 물질주의와 향락주의를 비판하고자 한 것이다.¹ 그래서 미국인들이 추구하는 '아메리칸 드림'(작 중 개츠비의 삶)이 얼마나 허황된 것이고, 변질된 것인지 보여준다. 개츠비, 톰, 데이지 그들의 삼각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배신과 질투, 기혼 남녀의 부정행위, 살인과 복수 등 작가가 준비한 여러 사건을 통해 독자들은 이야기 속에 몰입하게 된다. 그리고 이야기에서 주는 다양한 함의와 복잡성은 우리에게 큰 여운을 준다.

 

단순한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인상적인 이유는 뭘까?

 

우선 주인공 개츠비에게서 느껴지는 양면적인 모습에 있다. 불법적인 일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개츠비는 우리에게 순수하지 못한 인상을 준다. 이런 그가 평범한 우리가 보기에도 낭만적이고 헌신적인 즉, 매우 순수한 사랑을 추구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이러한 느낌은 우리로 하여금 개츠비와 동일시하게 되고, 동시에 그와 같은 삶 그리고 사랑을 꿈꾸게 하는 것이다(실제로 책을 읽으며 개츠비를 응원하게 된다.). 실제로 작가의 인생사를 보면, 작가도 개츠비의 삶을 동경함과 동시에 증오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사랑에 실패하고, 성공했다는 이유로 사랑에 성공한 작가는 '물질'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는 동시에 그것을 추구하는 양면적인 감정을 보여준다. 이 매우 인간적인 감정은 소설에도 반영되었으며, 이는 우리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킨 것이다.

 

그 다음으로 닉 캐러웨이를 통해 이야기를 보여주어, 모든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개츠비의 이야기를 닉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제한된 정보를 보여주고,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상상하게끔 만든다. 이야기를 보며 느끼는 독자의 감정에 작가가 전혀 개입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닉이 보지 못한 일에 대해서는 다른 인물의 진술을 통해 일부만 보여주어 더욱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 설정은 개츠비에 대해 독자가 잘 알지 못하게 함과 동시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든다. 실제로도 개츠비가 불법적인 일을 한다는 사실은 이야기 후반부에 가서야 드러난다.

 

마지막으로 여러 상징적 요소와 개츠비의 죽음으로 끝나는 결말 부분을 이야기할 수 있다. 특히 소설 전반에 걸쳐 나오는 색깔은 많은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초록색(희망), 회색(절망), 흰색(가식적인 순수), 빨강(죽음), 노랑(부정부패), 황금(물질주의) 등이다. 이는 우리에게 아름다운 색감과 더불어 미묘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또한 개츠비의  장례식장에 아무도 오지 않고, '올빼미 눈을 가진 남자''만이 찾아왔다는 사실은 다시금 우리가 개츠비라는 인물을 다시 생각하게끔 만든다. "불쌍한 자식"이라는 남자의 말에 과연 그의 삶은 어떠했는지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불법적인 일로 부를 축적하여 파티를 열고 방탕한 삶을 살던 개츠비, 하지만 그와 동시에 너무나도 순수하고 헌신적인 사랑을 하던 개츠비. 그의 삶에 대해 생각하면 어느 누구 하나를 탓하기  어려운 감정이 든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는 개츠비의 죽음이 단지 어느 한 개인의 잘못, 일탈에 의한 것이 아닌  사회로부터 비롯된다는 점 때문이다. 이는 우리에게 큰 화두를 던지고 있다.

 

 

 

 

바로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점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개츠비의 삶을 통해 우리가 느껴야 할 점은 거짓된 욕망, 행복 등에 대한 경계이다. 개츠비가 열었던 파티들은 모두 거짓된 욕망이 일시적으로 충족되는 하룻밤일 뿐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 누구도 그 기억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으며, 형식적인 감사 또한 없었다. 개츠비가 그토록 데이지에게 집착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 이유가 그가 살아온 삶에서는 전혀 충족되지 못한 순수한 욕망이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불법적인 일을 하며 돈을 벌고, 그저 돈을 흥청망청 쓰는 파티를 여는 그에게는 데이지는 정말 빛과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그의 사랑이 불륜이었다는 점이 그를 더욱 괴롭게 함과 동시에 집착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개츠비의 삶은 우리에게 거짓된 삶의 위험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백만장자가 되어 파티를 여는 것, 남들 앞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 등 흔히 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상상을 하며 일시적인 욕망을 가지고는 한다. 설사 일시적으로 그러한 것이 성취된다 한들 우리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지 그 과거에 붙잡혀 계속해서 일시적으로 욕망을 충족하며 살아갈 뿐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순수한 욕망이 무엇인지 바라 보아야 한다. 욕망이라는 단어가 부정적으로 들리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이는 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다만 정말 원하는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우리를 잘못된 길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다.

 

책의 제목처럼 개츠비는 위대한가? 난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위대하다고 제목을 붙였지만, 이 책을 읽는 모든 이들은 공통적으로 "개츠비는 위대한가?"라고 한번쯤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것이 작가가 만든 의도적 장치이다. 개츠비와 비교하며 우리의 삶을 고민하게 만듬과 동시에 개츠비와 같은 삶은 위대하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당시 사회의 상황, 트렌드 등에 희생된 개츠비지만 나는 이 사회, 트렌드 등을 '타인'이라고 바꾸고 싶다. 정작 자신이 원하는 것은 보지 못하고 타인이 원하는 것에 휘둘리는 거짓되고 위대한 삶. 그러한 삶을 우리는 항상 경계해야 한다.

 


¹ 세계 1차대전 막바지에 참전한 미국은 오랜 전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했던 유럽 국가들과는 다르게 급격한 산업 발달과 주가 급등으로 전례없는 경제호황을 이루게 되면서, 전통적인 가치관과 도덕적 기준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금주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박자, 밀주업자들이 엄청난 부를 축적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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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헤르만 헤세의 작품은 이 책 말고 데미안도 읽었는데, 항상 울림을 주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리고 항상 반성을 하게 된다.

"나는 혹시 날 위해 살아가고 있나?"라고 돌아보곤 한다.

청소년들에게 꼭 추천을 하고 싶고, 대학생들에게도 꼭 추천하고 싶다.
비즈니스 책들도 좋지만 이렇게 소설을 읽으면서 얻는 교훈도 많다.

이 책을 읽으면 조금 더 다른 사람의 시선, 비교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고

남부 독일 슈바르츠발트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한스 기벤라트'는 매우 총명한 아이로 마을에 모든 기대를 한 몸에 받아왔다. 낚시를 좋아하는 아이였지만, 신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공부에 매진하였고 그 결과 우수한 성적으로 유명 명문 신학교인 마울브론 신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입학하게 될 무렵부터 한스는 두통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우울증 비슷한 증상도 보인다. 억압적이고 엄격한 분위기 속에서 기숙 생활을 하며, 한스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우수한 아이가 되기 위하여 노력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신과 정반대로 자유분방한 하일러와 단짝 친구가 된다. 친하게 지내기는 하지만, 신학교 생활과 규칙에 정면으로 저항하는 하일러와는 달리 한스는 단지 뒤에서 바라보기만 한다. 결국 하일러는 신학교를 탈출하고, 한스는 더더욱 고립되며 점차 성적도 떨어지고 우울증도 심해지게 된다. 어쩔 수 없이 신학교를 자퇴하고 다시 마을로 돌아가게 된 한스는 에마라는 여성과 사랑에 빠지기도 하지만, 에마가 갑작스럽게 떠나자 절망에 빠지고 다시 두통을 느낀다. 두통에 계속 시달리며, 아버지의 권유대로 공장에 취직하였고 공장에 다니는 동창생의 축하파티에서 술에 취해 강물에 빠져 죽는다. 그 죽음에 마을 사람들은 안타까워 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7.2~1962.8.9)' 독일의 소설가이자 시인으로 독일 뷔르템베르크의 칼프에서 태어났다. 유서 있는 신학자 가문에서 자라나 1890년 라틴어 학교에 입학하고, 1891년 어렵기로 유명한 주 시험을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하며 마울브론의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신학교에 입학한 이후 미래의 시인을 꿈꾸기 시작하면서 신학교의 속박된 기숙 생활에 괴로워하였고, 결국 자살까지 시도하였다. 그리고 정신요양원에 입원되었다. 정신요양원에서 나오고 나서는 고향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작가의 꿈을 걷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수레바퀴 밑에서(1906)', '데미안(1919)', '싯다르타(1922)' 등이 있다.

수레바퀴 아래서는 헤세의 초기 작품인 동시에 가장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로 헤세의 삶을 가장 잘 드러낸 자서전 형태의 소설로 평가된다. 헤세는 이 작품을 통해서 독일의 교육 현실을 노골적으로 비판하였다.

사실 헤세의 삶과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독일의 교육시스템의 발전 흐름을 봐야 한다.¹ 헤세가 비판한 교육제도를 거쳐 여러 역사적 사건을 통해 지금의 독일 교육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²

작품의 배경은 독일의 황제 빌헬름 2세 시대로 1890년부터 1918년까지이다. 당시 독일의 기술, 경제, 학문 등이 급격하게 발전하는 시기로 '영광스러운 빌헬름 제국 시대'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빌헬름 2세 시대 이전부터 독일의 교육은 선구적인 제도로 평가받았지만, 이 시기 실상은 지배계급의 요구를 반영한 신민 교육적 특성이 강했다. 당시 자녀는 부모의 명예 충족 대상으로 여겨졌고, 좋은 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로 삼아지는 사회 분위기 또한 한 몫을 하며 반교육적이고 억압적인 교육이 자행되었다. 실제로 학생들의 자살률이 가장 높던 시기이다.

당시의 교육 시대상은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에서도 노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고 단지 당시 교육의 실상을 잘 보여준다고 해서 지금까지도 읽어야 할 도서로 꼽힌 것이 아니다. 1906년에 쓰여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여러가지를 뽑을 수 있겠지만 크게 3가지가 있다.

첫째, 소설이기는 하지만 작가의 자서전 성격도 가지는 특징을 보여주는 인물 간 대조적 모습이 독자들로 하여금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작가는 한스와 하일러의 대조적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를 드러내는데, 공부라는 수레바퀴 속에서 살아온 한스와 그러한 현실에 정면으로 저항하는 하일러의 모습은 매우 대조적이면서 동시에 둘도 없는 친구라는 설정으로 이를 더욱 효과적으로 표현하였다. 심지어 서로에게 에로적인 애정의 모습도 보여주면서 이 두 인물의 각별한 사이를 더욱 부각시켰다. 헤세는 이 두 인물로 교육 현실을 비판함과 동시에 자신이 걸어온 삶을 보여주고자 했다. 공부의 굴레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결국에는 공장에 취직하고, 목숨을 잃게 되는 한스의 삶은 작가가 되기 전까지 자살까지 시도하는 헤세의 절망적인 모습을 나타낸다. 반면 신학교에서 탈출하여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하일러의 모습은 헤세가 신학교에서 자살 시도까지 하고, 탈출하여 마지막에는 작가가 된 삶을 나타낸다. 이 두 인물의 다른 결말을 통해 자신의 삶을 보여주면서 작가의 생각을 더욱 생동감 있게 전달한 것이다.

그 다음으로, 사춘기에 겪을 수 있는 청소년의 감정을 매우 현실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헤세는 한스의 삶을 통해서 교육 제도를 비판함과 동시에 그 교육제도가 주는 달콤한 측면 또한 보여준다. 한스는 자신이 원했던 삶과는 다른 삶을 추구하지만 학문의 성취가 주는 남들보다 앞서 간다는 그 기분에서 쾌감을 느끼곤 했다. 어떻게 보면 일종의 '마약'과 같은 효과를 보인 것이다. 남들보다 앞서 간다는 그 기분은 당사자에게 쾌감을 주었고, 그와 동시에 남들보다 뒤쳐지면 안된다는 불안감을 주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한스는 그 달콤함에 몰입했다. 만일 헤세가 단지 교육 제도 아래에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일반적인 소설과 다름없는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즉, 헤세는 한스가 괴로워하면서도 동시에 빠져나오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사춘기 학생들의 감정을 굉장히 사실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가 단지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여전히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읽는 이들로 하여금 옛날 이야기가 아닌 현재의 일을 보고 있는 생동감을 준다. 헤세의 작품을 보면 우리나라 교육 현실의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주입식 교육, 높은 청소년 자살률, 과도한 입시 열풍, 자녀의 입시 성공에 대한 부모님의 열망 등 대한민국의 교육 상황과 작 중 한스의 상황은 매우 유사하다. 작품 속 청소년들의 고민과 현재 청소년들의 고민이 유사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이야기에 공감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가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으며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책은 단지 "주입식 교육은 나쁘다"라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일까? 물론 그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헤세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입식 교육, 경쟁적인 교육 방식 등 일차원적인 문제가 아닌, 왜 한스가 불행해질 수 밖에 없었는지 그 본질적인 이유를 봐야 한다. 한스는 단지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는 점차 한스의 삶을 옥죄어 갔을 뿐이었다. 즉, 중요한 것은 주변의 시선과 기대, 권유가 아닌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것을 알고 그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는 이에 대해 많은 반론들이 있다. 예를 들면, "원하는 것을 아직 잘 모르는 청소년은 공부라도 열심히 해야 한다." 또는 "좋은 대학교 가서 원하는 것을 찾아도 늦지 않다." 등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청소년의 시기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욕심을 투영한 결과라 생각한다. 청소년의 시기는 무작정 달려야 하는 시기가 아니다. 쉼이 필요한 시기이며, 달리기 위한 준비의 시간이다. 다양한 경험이 필요한 시간인 것이다. 이러한 시기에 방향을 정하지 못했다고 해서 우선 부모가 정해준 방향으로 달리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부모의 역할은 자녀가 어디로 나아갈 지 둘러보게끔 지지해주는 것이다. 그 결과가 본래 부모가 이야기하던 방향으로 달리는 것일지라도 그 차이는 크다. 자녀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경험에는 시기가 있다. 해당 시기에만 느낄 수 있는 감정과 경험이 있는 것이다. 본인이 원하지도 않는 또는 잘 알지도 못하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해서는 안된다(물론 당연히 꿈꾸는 미래를 위해 포기해야 할 현재는 있다.).

이 실상의 본질적인 문제는 결국 '비교'에 있다. 타인과 비교를 하며 자신의 방향이 잘못되었는지 보고, 자신이 느린 건 아닌지 불안해 한다. 부모들의 열성적인 교육열의 원인은 여기에 있다. 자녀를 자신을 나타내는 하나의 수단으로 본다. 그렇기 때문에 남과 비교하면서 자녀가 뒤쳐지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동일시하며 자신이 뒤쳐지는 것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자라난 자녀는 또 다시 비교의 굴레 속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끝없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 책의 제목 그대로이다. 수레바퀴 아래서 우리의 삶은 불행할 수 밖에 없다.

[참고자료]
1. '유럽의 교육제도: 영국, 프랑스, 독일의 교육제도를 중심으로', 김윤삼(2008)


¹ 현재 대한민국에서 교육 문제 등으로 가장 비교하는 나라 중 하나가 바로 독일이다. 독일 교육 제도는 철저한 공교육 제도로 연방과 주가 협력하여 모든 국민이 능력과 적성에 따라 교육받는 것을 추구한다. 우리나라의 학력 위주 교육과는 달리 능력과 자격 위주의 교육체제로 국민들은 언제나 자신의 의지와 사회적 수요에 맞게 다양한 연계 교육을 받을 수 있다. 또한 기저에 깔려 있는 독일의 교육 철학 또한 경쟁 중심적이 아닌, 협동 중심으로 다 같이 함께하는 깊이 있는 사고를 추구한다. 이러한 교육 시스템으로 현재 독일은 대표적인 교육 선진국으로 뽑히며, 많은 국가들이 독일의 교육 모델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² 교육 시스템에 큰 변화를 준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이다. '아돌프 히틀러'는 1889년에 태어나 헤세와 비슷한 교육 환경에서 자랐다(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전쟁을 지지한 대다수의 지식인들과는 달리, 헤세는 맹렬히 비판하였고, 결국 헤세의 책 발간, 판매 등이 금지되기도 했다.). 히틀러는 제국의 수상이 된 후, 전체주의 관점에 입각한 교육을 실시하였고, 편협한 애국심과 민족의식 함양을 목적으로 주입식 교육을 실시하였다. 전쟁에서 독일이 패망하고, 히틀러의 악행이 드러나면서, 국민들은 '유대인 학살 국가', '세계 전범' 등 역사적으로 씻을 수 없는 책임을 지게 되었다. 이에 대한 큰 충격은 독일 전 국민의 반성적 고찰을 일으켰고, 이전과는 다른 교육 철학을 세우는 계기가 되었다. 그 결과 지금의 독일 교육 제도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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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이 책은 솔직히 말하자면 다소 어려웠다. 2번을 읽고 나서야 정리할 수 있었다.

 

비즈니스 분야에 대한 사례도 많았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예술가, 수학자, 과학자 등에 대한 사례가 많다 보니 이해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주는 메시지에는 적극 동의한다.

언급된 생각도구를 활용하는 등 노력한다면, 창의적인 사람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독후감 전문]

 

"생각의 탄생"을 읽고

-창조적 사고를 위한 생각도구-

 

'생각'이란 넓은 의미로 의식활동과 그 내용 모두를 지칭하는 단어이다. 흔히 우리가 주변에서 들을 수 있었던 '창의성', '혁신' 등이 바로 생각의 결과물 중 하나이다. 그리고 이 결과물은 항상 우리 사회에 발전을 가져왔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창의성과 혁신이 어떻게 나오는지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기존에 창조적 사고는 단지 일부 개인에게만 속한 능력으로 단순히 재능으로만 취급되어져 왔다. 그래서 그 원리에 대해서 많은 연구가 진행되지 못했다. 모두들 궁금증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동시에 불가침의 영역으로 여겨져 온 것이다.

 

이 현상은 어쩌면 교육의 불평등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른다. 이전에 교육은 일부만 받을 수 있었고, 우리에게 잘 알려진 창조적 사고의 결과물도 교육을 받은 사람 중에서도 일부 사람들의 성취였다. 그래서 대다수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였고,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시기의 대상으로 단지 '재능'의 결과물로 치부되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이들이 의지만 있다면 같은 교육을 받을 수 있고, 그 어떠한 정보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그리고 이는 다시금 창조적 사고에 대한 궁금증을 수면 위로 올렸다.

 

"창조적 사고의 원리는 무엇인가?", "누구는 창조적 사고를 하고, 다른 누군가는 하지 못하는가?"

 

그리고 학문의 영역 간 진보가 균등해지면서 자연스럽게 각 영역의 창조적 사고 결과물의 공통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나온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저자는 먼저 '생각'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기를 권한다. 분리되어 있는 각 영역에서 창조적 사고의 공통점이 있다면, 이는 결국 "'무엇'을 생각하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중요해진다. 그래서 과학, 예술, 수학 등 여러 분야들을 분리해서 교육하지 말고, 통합하여 교육을 하자고 주장한다.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결국 모든 학문의 공통사항이기 때문이다. 즉, 통합적 사고의 중요성이 이 책에서의 주요 요지이다.

 

현재 통합적 사고를 저해하는 분리적 교육만이 이루어 지고 있기 때문에, 참된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상상력을 학습하는 13가지 생각도구'를 습득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 교육은 '환상'과 '실재'가 단절된 상황으로 습득한 학문을 현실에서 전혀 활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는 "대학에서 배운 내용은 어차피 회사 가면 다 쓸모 없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렇다면 사회에서는 왜 비싼 비용을 들여가면서 교육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왜 많은 비용을 지불하면서 배우고 있을까? 책에서는 이 문제점을 지적하며 13가지 도구를 말하는 것이다.

 

1. 관찰: "관찰은 보이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다."

 

단지 보이는 것이 관찰이 아니다. 어떤 현상과 자극, 상황 등을 능동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바로 관찰이다. 자신만의 방법을 활용하여 깊은 관찰을 통해 보는 것의 정확한 원리에 대해 파악하는 것이다. 이는 시각적인 정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내면화된 정보는 창조적 사고의 원천이 된다.

 

생각과 관찰은 필연적으로 연관이 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책에서 인상깊은 구절이 나온다. 소설가 존 스타인벡과 생물학자 에드워드 리켓이 바다생활에 대해 쓴 책 중에서 이러한 구절이 있다. "우리가 보고, 기록하고, 구축한 모든 것들은 모든 지식의 틀이 뒤틀리는 것처럼 왜곡되곤 한다." 우리가 관찰하는 행위는 가지고 있는 편견과 경험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즉, 우리 모두에겐 객관적인 관찰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관찰하는 것은 가지고 있던 생각에 영향받게 되어 있다. 그리고 생각은 관찰에 영향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관찰하는 법을 바꿔본다면 어떻게 될까?

창의적인 사람들이 관찰하는 법을 배워서 해본다면 바뀔 수 있지 않을까?

 

2. 형상화: "우리는 관찰할 수 있어야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상상을 통해 형상화가 이루어 진다."

 

형상화는 관찰을 통해 형성된 정보를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시각, 청각 등으로 형상화된 정보는 효과적으로 재해석이 가능하며 동시에 다른 이들에게 전달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재해석은 또 하나의 새로운 정보가 될 수 있다. 형상화를 하며 정보의 체계화가 이루어지고, 정보 간 연결고리가 보인다. 그리고 이 속에서 누락된 정보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누락된 정보도 채워지며 관찰된 것 이상으로 재창조가 된다.

 

관찰한 내용은 상상을 통해 형상화가 이루어진다. 어떻게 보면 관찰된 추상적인 무언가를 형상화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형상화의 가장 큰 기능은 바로 맥락(세계)이 형성된다는 점이다. 단편적인 정보들이 형상화 과정을 거치면서 하나의 세계를 만든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더욱 더 새로운 것들이 탄생하는 것이다.

 

우리가 모두 아는 '뉴턴의 사과' 일화를 생각해보자. 모두가 사과가 떨어지는 걸 봤었지만, 뉴턴처럼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관찰한 내용으로 형상화할 줄 알았다. 그리고 그는 형상화를 통해 사과가 떨어지게 된 원인(누락된 정보)을 찾게 된 것이다.

 

관찰한 것을 자유롭게 상상하자. 그리고 형상화하면 무언가 보일 것이다.

 

3. 추상화: "···현실의 불필요한 부분을 도려내면서 중대하고 놀라운 본질을 드러나게 하는 과정이다."

 

추상화는 대상의 중요한 특징을 잡아내어, 단순화하는 것이다. 과학자, 화가, 시인들은 핵심적인 한 가지를 제외하고 모든 것을 제거하며, 새로운 발견을 하고자 하였다. 추상화는 이에 아주 유용한 도구이다. 추상화하며 사물의 본질을 드러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소통하며 쓰는 단어들을 생각해 보자. 추상적인 단어를 사용하며 우리는 핵심적인 의미를 더 드러나게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랑, 의무, 명예, 진실 등의 단어는 적절히 사용하면 매우 효과적이다. 다만 추상화의 본질을 명심해야 한다. 추상화는 단순화를 통해 표현 또는 알고 싶은 본질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이를 오히려 메세지의 혼란을 주기 위해 잘못 사용할 수도 있다(일반적으로 기업에서는 보고서에서 이런 식으로 오용하는 경우가 많다.).

 

추상화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다면, 사물의 본질 그리고 주고자 하는 메세지를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다.

 

4. 패턴인식: "패턴을 알아낸다는 것은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미리 아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패턴은 규칙성을 띤다. 그러므로 패턴을 인식하는 것은 곧 예측을 의미한다. 어떻게 보면 패턴은 규칙적이기 때문에 창의적인 사고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질 수 있다. 패턴인식에서 창의적인 사고가 발생하는 경로는 패턴에 새로운 정보가 투입되고, 기존 패턴의 틀이 흔들릴 때 시작된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패턴이 나오면서 새로운 발견이 나오는 것이다.

 

비즈니스에서도 이는 상당히 유용하다. 어쩌면 경영학 이론이 시장의 패턴을 인식하면서 생겨난 결과물일 수 있다. 예를 들면, 새로운 상품을 출시한다고 생각해 보자. 소비자들의 행동 패턴을 이해하고, 새로운 상품이 투입될 경우 생겨날 새로운 패턴 또는 상황을 예측하는 것이다. 실제로 디커플링 책에서 나오는 사례는 패턴의 파괴라 할 수 있다. 배달의 민족으로 예를 들자면, 음식을 먹거나 배달을 시킬 때 고객의 패턴을 분석하여 이를 파괴하고,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낸 것이다.

 

패턴을 인식하는 건 미지의 영역을 탐구하는 데 중요한 도구가 된다.

누군가의 패턴 또는 사물의 패턴을 이해하는 것은 곧 새로운 패턴을 만드는 창의적 사고의 시발점이 된다.

 

5. 패턴형성: "패턴형성은 모든 분야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다."

 

앞선 패턴인식과 연결되는 도구로 패턴을 새롭게 분리/조합면서, 새로운 패턴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새로운 혁신, 지식을 습득할 수 있게 된다. 새로운 패턴을 형성한다는 것은 곧 패턴을 이루는 요소들에 대한 깊은 이해를 전제로 한다. 이러한 패턴은 복잡하게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패턴을 형성하면서 이루어지는 결합방식이 교묘하면서도 의외성을 띠는 것이다.

 

패턴이 유용한 것은 모든 분야를 막론하고 적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음악 분야에서 생겨난 패턴은 운동에서도 적용이 가능하고, 그림에서도 적용이 가능하다. 또한 과학에서도 이는 유용하며, 비즈니스 전략에서도 유용하게 쓰인다. 생태계 패턴을 파악하여 비즈니스에 적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창의적인 사고, 혁신은 새로운 무언가를 만든다. 이것은 복잡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패턴이 형성되는 의외성의 순간인 것이다.

 

 

 

 

6. 유추: "시인은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 사이의 유사성을 찾으려 한다."

 

둘 혹은 그 이상의 현상 등에서 유사성, 관련성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는 분야 간 연결에서 가장 큰 도움이 되는데, 대칭과는 다른 개념으로 대칭은 일반적으로 정확함을 기준으로 삼지만, 유추는 불완전하고 부정확하다. 하지만 그렇기에 유용하다. 

 

위에서 언급한 뉴턴의 사과도 유추의 원리라고도 볼 수 있다. 사과가 떨어지는 현상에서 유추를 해서 새로운 과학의 원리를 찾아낸 것이다. TRIZ라는 창의적 문제 해결방법론도 이와 같은 원리이다. 각 모든 분야에서 문제를 해결한 사례들의 원리들을 종합하여 공통적인 원리를 찾아낸 것이다. 유추적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혁신은 그 원리가 비슷한 것을 찾아낼 수 있다. 예를 들면, 자동차 생산성을 증대시킨 포드의 컨베이어 벨트는 도축장 시스템에서 유추하여 찾아낸 것이다. 

 

7. 몸으로 생각하기: "나는 듣고 잊는다. 나는 보고 기억한다. 나는 행하고 이행한다."

 

몸의 기억을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생각이 꼭 머리에서 시작해야 할까? 그럴 필요가 없다. 몸은 머리에서 인지하지 못하는 경험도 기억한다. 근육의 감각, 몸의 느김, 촉감 등을 새로운 생각의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는 몸의 움직임을 떠올리면서 몸의 상상력이 작용하는 원리이다.

 

비즈니스에서는 예를 찾기 어려울 수 있지만, 실제 상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할 때 고객 경험 시뮬레이션을 실제로 해보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실제 고객의 행동을 따라하면서, 시사점을 찾아내는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매출 하락의 원인을 몸에서 찾을 수도 있다. 제과업계의 매출하락의 원인이 스마트폰일 수 있다. 스마트폰을 항상 이용하는 세대가 생겨나면서, 손에 무언가 묻는 군것질이나, 손을 많이 사용해야 하는 과자의 매출이 감소하는 것이다. 이렇듯 비즈니스에서도 몸을 통해 새로운 시사점을 도출해낼 수 있다.

 

http://www.newspim.com/news/view/20181004000148

'손에 묻는 과자'는 스마트폰 시대에 NO?…日제과업계 변화의 바람

'손에 묻는 과자'는 스마트폰 시대에 NO?…日제과업계 변화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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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감정이입: "'앎'은 느낌을 통해서 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몸과 마음을 통해 세계를 자각하면서, 새롭게 이해하는 방법이다. 즉, 단순히 문제를 외부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문제 속으로 들어가 이해를 하는 방법이다. 단순한 원리이다. 이해를 하고 싶다면, '이해를 하고 싶은 것' 자체가 되야만 한다.

 

예술에서 이는 매우 많이 활용된다. 명배우들은 대본대로 연기하지 않는다. 감정이입을 하며 그 캐릭터 자체가 되어 연기를 한다. 그 결과 단순히 감독의 요구사항대로 연기하는 것 그 이상의 연기가 된다. 비즈니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고객 지향적인 기업은 직원들이 일하면서 고객에게 감정이입 할 수 있도록 많은 자원을 투입한다. Design Thinking 등의 방법론도 그 도구 중 하나이다. 이외에도 고객에게 직접 물어 상품을 개발하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

 

완벽한 이해는 결국 그 자체가 되는 것에 있다.

 

9. 차원적 사고: "2차원적 정신으로 3차원적 물체를 생각해낼 수 있을까?"

 

시간, 공간 등을 차원적으로 확장하는 사고 방법이다. 차원적 상상력을 통해 현실에서 표현할 수는 없을 지라도 그 특성을 설명할 수 있다. 이 확장은 끊임없이 이루어지면서 문제에 대한 깊은 이해와 새로운 관점을 가질 수 있게 된다. 

 

3차원을 2차원 형태로 표현할 수도 있고, 2차원을 3차원의 형태로 표현해 볼 수도 있다. 대표적으로 지도는 3차원을 2차원 형태로 표현한 것이다. 원근법도 마찬가지이다. 최초의 사진, 그리고 여기서 더 발전한 최초의 영상 촬영 등 차원을 달리하며 발생한 발명이다. 최근 사례에서는 3D 프린터기를 예로 들 수 있다. 2차원 인쇄에서 3차원 인쇄로 발전한 것이다.

 

책에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차원은 여러가지 의미로 활용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시각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던 것을 청각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게 하는 북 라디오 서비스, 현실에 있는 것을 가상화하여 네트워크 차원으로 만들어내는 등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10. 모형 만들기: "모형의 용도는 직접 경험하기 어려운 것에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있다."

 

모형은 사람들이 즉각적으로 인지 가능한 수준으로 실제를 축약하고, 차원 또한 달리 표현하는 방법을 의미한다. 모형을 만드는 과정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지식이 축적된다. 구체적으로 물리적, 기능적, 이론적 특성들이 반영되고 관찰, 추상화, 유추, 차원적 사고 등이 함께 이루어질 수 있다. 그리고 모형화된 것을 보며 새로운 생각이 나온다.

 

모형을 통해 실제적인 경험을 얻을 수 있다. 사극 드라마나, 군대에서 이루어지는 전쟁 전략 회의에서는 모형이 항상 사용된다. 이를 통해 전장 상황을 파악하여 창의적인 전략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과정에서 상황을 분명히 파악할 수 있다(지식 습득 효과). 비즈니스에서는 '모형 만들기'는 프로토타입으로 표현이 된다. 프로토타입(시제품) 등을 만들면서 단순히 기획서로만 표현되었던 상품이 모두가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 진다.

 

11. 놀이: "놀이는 분야 간의 경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놀이는 분명한 목적, 동기 등이 없다. 책임도 없고, 의무도 없다. 그렇기에 본능에 더욱 충실하게 되고, 이는 창조적인 통찰로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놀이의 가장 큰 장점은 이는 단지 경험의 수단으로 분야의 한계가 없다는 점에 있다. 생각의 제한이 없어 더욱 큰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자유로운 지식의 변형과 새로운 이해 방식이 생겨난다.

 

닐스 보어의 사례를 아는가? 덴마크의 한 대학의 물리학 시험에서 닐스 보어는 "기압계로 고층 건물의 높이를 재는 방법" 문제에 6가지 답을 제시하였다. 닐스 보어에게는 하나의 놀이였다. 그는 높은 점수를 받겠다는 목적이 없었다. 그에게는 경계가 없었다. 물리학 문제였지만, 그는 문제를 물리학으로 보지 않았다. 그렇기에 창의적인 정답 등을 제시할 수 있었다. 1922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그는 이 문제에 대한 정답 중 가장 만족스러운 정답을 "기압계를 건물 관리인에게 선물로 주고, 설계도를 얻는다."라고 말했다.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지만 비즈니스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다. 구글의 20% 타임제가 대표적 사례이다. 아무런 목적도 책임도 없는 자율성을 보장하는 20%의 시간을 주니 직원들은 혁신을 만들어 냈다. 역설적이게도 창의적인 목표, 목적이 없을 때 창의적인 결과물이 나온 것이다.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5/28/2015052802108.html 

[르포] 일과 놀이 경계를 허물다…'세계 최고 직장' 구글 美 본사 가보니

5월 27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남쪽으로 1시간여를 달려 마운틴 뷰의 찰스턴 로드로 들어섰다. 일정한 간격으로 심어진 나무 길을 지나고 전면이..

biz.chosun.com

 

12. 변형: "한 가지 생각이나 자료를 다르게 변형시킴으로써 다른 특성과 용도를 얻게 된다."

 

창조적 작업을 하기 위해서 문제를 규정, 조사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해답을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표현하는 것도 필요하므로 변형이 수반되어야 한다. 여러 생각도구를 연속 또는 동시에 사용하여 생각도구 간 영향을 주고 받게 하는 것이 바로 변형으로 창조적 상상이 개입한다. 즉, 변형적 사고는 상이한 분야를 연결해주는 새로운 도구이다(메타패턴).

 

예를 들면 생활 속의 문제를 수학 문제로 바꾸는 것이다. 또한 우리 민족 최대의 창조물인 한글의 발명 원리도 혀와 입술, 목구멍 등 발성기관의 모양을 변형해서 만든 것이다. 변형은 상당히 유용하다. 

 

13. 통합: "···항상 여러가지 방식을 동원해서 동시적으로 감각과 인식을 결합한다."  

 

생각은 공감각적 활동이기 때문에 종합적인 사고의 모습은 바로 궁극적인 이해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다양한 방식의 지식과 느낌을 높은 수준에서 통합해야만 가능하다. 많은 분야의 지식들이 통합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정보일 뿐 아무런 의미가 없다. 통합은 창조적 사고의 필수적 요소이다. 

 

이는 정신적인 능력 뿐만 아니라 감각적인 능력도 모두 통합되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이해는 통합적으로 이루어져야만 의미가 있다. 비즈니스에서도 점차 이런 사고의 중요성이 생겨나고 있다. 예를 들면 더 이상 기업은 제품의 기능만을 중요시 하지 않는다. "과연 이 기능을 통해 고객에게 어떤 경험을 줄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경험이라는 감각적인 부분까지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외에도 모든 문제는 한 분야에만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이제 비즈니스에서 통합적 사고는 필수적이다. 

 

우리 사회는 한 분야의 전문가 양성을 가장 주 목적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융복합적 사고를 요구하기도 한다. 책에서는 교육이 사실상 전문가 교육이 아닌 통합적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일명 '전인'을 길러내야 하는 것이다. 주로 위인들만 책에서 언급이 되긴 했지만, 사실 창조적 사고의 목적은 위인이 되는데 있지 않다. 창조적 사고의 필요성은 무엇보다도 '이해'에 있다.

 

문제는 대부분 이해의 부재에서 온다. 이는 곧 우리에게 공포와 불안을 조성하여, 발전을 막는다. 책에서 언급한 13가지의 도구는 이해의 강력한 도움을 주는 도구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창조적 사고를 가능하게끔 한다. 이전에는 창의성은 유전적인 결과, 즉 재능의 산물로 여겨지곤 했다. 그러나 창의성, 창조적 사고는 기를 수 있다.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이러한 도구들 또는 혁신의 원리 등을 기록하고, 문제를 만날 때마다 꺼내보며 여러 방향으로 사고할 수 있다. 아니면 혁신적인 상품과 그 탄생 이력을 보거나, 모든 분야의 시장에서 나오는 새로운 상품을 보며 발상의 전환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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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소크라테스가 어떤 사람인지 분명히 알 수 있는 책이다.

비록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이 썼기 때문에 미화된 부분이 있을 수 모르나, 그가 추구하던 인생의 철학을 그대로 재현한 책이라 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의 전성기를 가져온 인물로 그의 영향력은 지금도 여전히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한 번쯤은 꼭 읽으라고 추천을 하고 싶다.

소크라테스의 모습에서 가장 존경스러운 점은 죽음 앞에서도 그는 철학자로서의 신념을 저버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항상 자기반성을 통해 더욱 발전할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죽음보다 불의를 피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하는 소크라테스.

그는 참된 철학자라면 죽음을 항상 연습하므로 죽음을 가장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죽음은 다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면서 그의 철학의 화룡정점으로 꼽힌다. 실제로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대한 일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그의 철학에 대해 더욱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평소 자신의 철학을 전파하여 세상을 행복하게 하겠다는 그의 목표는 죽음으로 말미암아 완성된 것이다.

나는 철학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겠지만, 한 사람으로서 그가 신념을 지키는 모습은 존경스럽다 못해 경이롭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고
- 크리톤·파이돈·향연 -

기원전 5세기경에 활동한 고대 그리스의 대표 철학자 중 한 명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의 전성기를 가져온 인물 중 하나로 고대 그리스의 철학을 소크라테스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을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매우 컸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가 직접 남긴 저작이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의 고유한 철학과 사상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이 남긴 기록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알아갈 뿐이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플라톤이 저술한 책으로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의 하나이다. ¹ 소크라테스가 법정에서 변론하는 모습을 재현한 내용으로 최초의 변론, 유죄 선고 후의 변론, 사형 선고 후의 변론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이 대화가 가장 높게 평가받는 것 중 하나는 플라톤이 창작한 부분이 다른 작품에 비해 가장 최소화되었다는 점이다. 소크라테스의 대화편은 각각 짧게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크리톤, 파이돈, 향연 등과 묶어서 한 번에 책이 나온다.

책의 배경은 BC 399년 소크라테스는 국가의 신들을 믿지 않고, 청년들에게 악영향을 끼쳤다는 이유로 '멜레토스'에 의해 고발을 당하고, 이에 대해 당당하게 변론을 펼치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변명'에서는 고발자 멜레토스의 주장에 대해 하나하나 반론을 말한다. 우선 두 부류의 고발자를 나누고, 이들에 주장에 대해 각각 반론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게 된 델포이의 신탁 사건을 말하며, 자신의 소신인 '무지의 자각'에 대해 이야기한다. 반론을 하는 상황에서도 질문을 던지는 대화법을 통해 상대의 논리의 허점을 지적하고, 상대가 스스로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자 하였다.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소신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은 그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적인 문제로 고발당한 상황이기 때문에 만일 소크라테스가 법정에서 목숨을 구걸했다면, 그는 분명 살아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목숨을 구걸하지도, 무죄를 판결해달라고 간청하지 않는다.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항상 그 행동이 옳은가, 옳지 않은가를 고민하여 행동했다.

"나의 친구여, 죽음의 회피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불의를 피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부정은 죽음보다도 빨리 달리기 때문입니다."
p50, 2차 투표 이후 사형 선고가 결정된 상황


'크리톤'은 재판이 이루어지고 한 달 뒤 감옥에서 소크라테스와 그의 절친한 친구 크리톤이 나누는 대화 내용이다. 이 부분에서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에게 여러 가지 이유를 들며, 탈옥을 권한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질문을 던지며, 크리톤이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고, 탈옥을 거절한다. 이 부분에서는 소크라테스가 얼마나 삶의 태도와 철학적 정신이 일치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는 단지 사는 것이 아니라 잘 사는 것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여러 철학적 의의도 엿볼 수 있는데, 우선 책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소크라테스의 이성적인 분별법이다. 소크라테스는 크리톤의 탈옥 권유를 단번에 거절하지 않는다. 다만, 대화를 통해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고 그 결과대로 행하자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크리톤과 대화를 나누며, 논리적으로 무엇이 가장 옳은지 판단을 내린다. 이는 쉽사리 본인의 삶의 방향과 생각을 쉽사리 바꾸는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말 그대로 소크라테스는 그의 철학인 '무지의 자각'을 몸소 실천하고 있었다. 알지 못하는 것을 인정하고 질문을 던지며 항상 이성적 자기 검열을 행한다.

그다음으로 '다수의 판단이 옳은가?', '전문가의 판단이 옳은가?'에 대한 논쟁도 볼 수 있다(이 부분은 내가 임의로 명명한 내용으로, 어긋난 내용일 수 있다.). 크리톤은 다수의 평판과 생각에 대해 말하며, 소크라테스의 탈옥을 주장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이에 대해 모든 판단을 존중해야 하는 것이 아닌 분별 있는 자들이 내리는 좋은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사실 단지 전문가의 의견이 무조건 옳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그는 무지의 자각을 상당히 중요시한다.). 많은 사람이 지지하든 그렇지 않든 오직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검열을 통해 나온 결정만이 옳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소크라테스의 국가주의관도 볼 수 있다. 아마 이 부분 때문에 실제로 그가 이야기하지 않은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이 변질되어 나온 것으로 생각된다. 당시 시대상과는 다르게 소크라테스는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계약 관계로 보았다. 다른 국가로 떠나지 않고 머물기로 결정했다면, 이는 개인의 자발적인 행동이며 계약이므로 국가의 법과 관습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특히나 많은 논란이 된 부분으로 국가에 대한 무조건 적인 충성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 부분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소크라테스의 본질은 '악행'에 대한 방관자적 행태 또한 옳지 못한 행동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직접적인 피해가 없을 때는 국가에 대한 어떤 반대나, 변화의 시도조차 없다가 이후 직접적으로 본인에 대한 피해가 왔을 때 부당하다고 느끼고 따르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 것이다.

즉, 소크라테스는 옳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바로 행동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² 그러므로 그는 사형 선고가 내려졌더라도 이를 부정하고 도망치는 것은 옳지 못한 것으로 보았다. ³

"그러니 우리는 내가 자네가 말하는 대로 할지 하지 않을지 수고해봐야 하네. 왜냐하면 나는 반성을 통해서 내게 가장 좋은 것으로 믿어지는 이유가 있을 때만
그 이유에 따라서 행동하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이고, 과거에도 항상 그렇게 해왔네. 그리고 지금 내게 이러한 기회가 닥쳤다고 해서 내 말을 번복할 수는 없네."
p64, 소크라테스와 크라톤의 논쟁이 시작되기 직전


'파이돈'은 소크라테스가 간접적으로 나오는 대화편이다. 파이돈과 에케크라테스가 이야기를 나누며,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임종에 대해 파이돈이 이야기해주는 대화이다. 이 대화는 '영혼에 대하여'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 만큼 영혼에 대한 증명, 죽음의 의미에 대해 말하고, 마지막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부분이다(단, 이 부분에 나온 대로 실제로 소크라테스가 그렇게 행동한지는 알 수 없다. 소크라테스 사후 14~15년 이후에 쓰여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절대 두려워 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육체는 영혼의 진리에 도달하는데 방해가 되는 요소로 보기 때문이다. 죽음은 단지 영혼이 순수한 본질의 세계로 돌아가는 절차라고 보고 있다(이 부분은 플라톤의 이데아적 사상과 유사하다). 어쩌면 자살 등을 옹호하는 부분으로 볼 수 있으나, 소크라테스는 이를 신과 인간의 관계를 주인과 노예 관계에 비유하며 해악으로 규정한다.

"그러니 심미아스, 참된 철학자들은 항상 죽음을 연습하고 있으며, 따라서 죽음을 가장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야."
p101, 소크라테스가 죽음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 대화 부분에 가장 큰 의의는 소크라테스의 임종 순간에 대해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죽음에 초연한 소크라테스 답게 평소와 똑같은 모습을 보이는 소크라테스에게 친구들은 모두 놀랜다. 자신이 죽은 이후 자신의 몸을 닦을 여인들을 걱정하며 독약을 먹기 직전에 목욕을 하러 가기도 한다. 그리고 목욕 이후 그는 독약을 마신다. 독약을 마시는 것을 보고 그의 친구들은 울음을 터뜨리는데, 그는 이에 대해 질책하고 간수가 이야기한대로 이리저리 걸어 다니다가 힘이 없어지는 것을 느끼고는 자리에 눕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크리톤, 나는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네. 기억해두었다가 빚을 갚아주겠나?"
p193,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말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말에 대해서는 3가지 추측이 있다.

1.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헌납하라는 것.
2. 실제로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빚을 졌다는 것
3. 단지 농담

이렇게 3가지 추측이 있지만, 어느 것이든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마지막 말이었다.

이후의 '향연'은 사랑에 대한 다양한 사상과 찬사가 드러나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전에 언급한 작품들과는 내용이 조금 별개라고 생각하면 된다.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의문이지만, 집에서 있었던 향연에서 각자 돌아가며 에로스에 대해 말하는 것을 정리한 내용이다. 그리고 이러한 각자의 연설은 소크라테스에 의해 부분적으로 교정되고 바뀐다. 마지막에는 '알키비아데스'(아테네 명문 출신, 소크라테스의 제자였으나 탈락되었음)가 소크라테스를 찬양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 대화편에 가장 큰 의의는 소크라테스의 인간적인 면모를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동성애적 부분의 내용도 언급이 되지만(당시 시대에서는 허용이 되었고, 실제 그러한 문화가 있었다.), 대부분이 인간적인 사랑의 관념보다는 이데아적 관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이렇게 끝이 난다.

이 책을 통해 나타난 소크라테스의 삶에서 가장 눈 여겨 보아야 할 부분은 다른 무엇도 아닌 바로 '행동'이다. 그의 삶은 지행일치의 삶, 그 자체였다. 그는 선이 무엇인지 알고자 노력하였고, 이를 알게 된 후에는 몸에 익혀 실천하고자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죽음은 그의 철학의 완성을 볼 수 있는 화룡정점이다. 이 점에서 어쩌면 그가 마신 독배는 정말로 축배인지 모르겠다. 이 죽음의 일화로 그의 철학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그와 같이 살고자 하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평소 이러한 철학을 전파하여 세상을 조금 더 행복하게 하고자 했던 그의 목표가 그의 죽음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삶이 오늘날 더욱 우리에게 와 닿는 이유는 사상은 단지 사상일 뿐이이지만 소크라테스는 이를 행동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행동으로 항상 보여주는 삶의 자세만큼은 우리는 꼭 배워야 한다. 무엇이 옳은 지 탐구하는 자세 그리고 옳다고 판단을 내리면 행동하는 용기와 의지, 항상 자신을 되돌아보고 매사에 질문을 던지는 자세 등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자세이다.

그 다음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부분은 바로 그의 신앙적인 모습이다. 그의 신앙은 우리가 생각하는 신앙과는 조금 다르다. 그는 단순히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신을 믿었다고 하기 보다는 일종의 철학적인 신앙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가 믿는 신은 그가 살고자 했던, 그리고 생각해 왔던 이상적인 사상이다. 실제로 소크라테스는 델포이의 신탁이 그가 살고자 하는 '무지의 자각'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그가 신의 존재를 정말 믿음과 동시에 그의 철학과 동일시했다고 생각한다. 그의 행동과 의지 등은 그러한 부분으로 밖에 설명될 수 없으며, 실제로 그러한 말을 종종 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단순히 그의 생각이 아니라 말 그대로 '신'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것을 꼭 지키려고 노력을 했다.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각기 자기의 길을 갑시다. 나는 죽기 위해서, 여러분은 살기 위해서. 어느 쪽이 더 좋은지는 오직 신만이 알 뿐입니다."
p56, 법정에서의 마지막 소크라테스 말


그러므로 나는 법정에서 그의 마지막 말은 끝까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지키는 소크라테스의 신앙이자 철학이라 생각한다.


¹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대표 제자 중 한 명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플라톤이 남긴 저작 대부분은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플라톤의 대화편'이라고 잘 알려져 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총 30여 편으로 이루어진 대화편의 초기작이다.

²예로 들자면 국가가 만든 악법에 대해 무조건 따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악법이 만들어졌다면, 시민들은 이에 대해 국가에 따지고 행동해야 할 권리와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악법이 만들어진 이후에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채 방관하다가 본인에게 피해가 왔을 때 따르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³ 이 부분에서 소크라테스의 개인 사상이(행동의 결과가 아닌 행동 자체의 옳고 그름을 보는) 이러한 국가관에까지 연결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재판 방식 등 프로세스적 측면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러한 재판 방식이나 프로세스가 가져올 결과는 또 다른 문제이다. 즉, 어떻게 보면 소크라테스에게 선고된 재판 결과는 옳지 못하다. 그러나 그 재판 방식은 옳지 않은 것이 아니므로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과를 보고 옳지 않기 때문에 따르지 않는다는 사고는 상당히 자기중심적이며 편향적인 사고이다. 대체 옳다는 것은 누가 결정하는가? 자칫 무정부주의 사고를 가져올 수 있는 문제이다. 프로세스, 제도 등이 옳다면 따라야 한다. 설사 그 결과가 최악일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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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보았을 때 느낌과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영회를 보고 나서 느낀 감정이 묘하게 비슷했다.

 

공통적으로 일종의 '정신적인 역함(?)'을 느꼈다. 재미 없다거나, 작품성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영화 기생충은 정말로 재밌었고, 인간 실격 또한 정말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다만 던지는 메세지가 나에게는 큰 압박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 메세지 또한 우리에기는 두려운 메세지였다. 두 작품 모두 던지는 메세지를 은연 중에 드러내고 있었지만, 이 속에서 내가 믿고 싶은 메세지만 따로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믿고자 하는 메세지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이 더 큰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인간 실격'의 저자 다자이 오사무는 결국 자살을 했다.

그 점이 이 작품이 던지고 있는 메세지가 너무 무서운 메세지라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인간 실격'을 읽고

 

"저는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인간을 도저히 단념할 수 없었나 봅니다."
'인간 실격' 중 오바 요조의 생각

 

'인간 실격'은 작가의 정신적 자전 소설로 작가의 삶과 놀랄 정도로 비슷한 부분이 있으며, 인간에 대한 작가의 시각을 여실히 보여주는 책이다. 지독한 자기 혐오와 비관적 인식을 문학적으로 승화한 작품이라는 평을 받는다.

 

주인공은 '오바 요조'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타인 앞에서 익살스러운 모습, 즉 광대와 같은 삶을 살아간다. 요조는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며, 동시에 혐오하였다. 그리고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을 도저히 단념할 수 없었던 그는 익살꾼을 자처하며 사람들과 함께했다.

 

첫 번째 수기에서는 요조라는 인간 자체에 대해 보여준다.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자라 왔고, 왜 익살꾼이 되었는지를 이야기한다. 이를 통해 요조의 인간 혐오에 대해 알게 된다.

 

두 번째 수기는 교도소 가기 전까지의 학창 시절을 보여주며  인관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그 속에서의 요소의 생각을 여실히 보여준다. 광대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던 요조는 그 사실을 눈치 챈 '다케이치'라는 동급생에게 두려움을 느끼면서 가까워지려 한다. 친구처럼(?) 지내던 와중 '귀신' 그림을 보고 화가를 꿈꾸게 되지만 원하는 미술학교에 가지 못하고, 아버지의 뜻에 의해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오랜 기간 함께하게 되는 또 다른 친구(?) '호리키'를 만나게 된다. 그와의 만남을 통해 요조는 '술', '여자', '여러 불법' 등을 경험한다. 특히 여러 여자와 만남을 가지게 되는데 그 중 '쓰네코'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녀와 함께 자살을 한다. 하지만 그녀만 죽고, 요조는 살아남게 된다. 이로 인해 재판을 받고, 기소유예를 받는다.

 

세 번째 수기는 재판이 끝난 이후로 요조는 호리키를 찾아가 우연히 만난 '시즈코'라는 여자 집에서 살면서 만화를 그려 돈을 받는다. 시즈코의 딸인 '시게코'에게 "아빠"라는 소리를 들으며, 조금이나마 구원을 받는 느낌을 받지만 진짜 아빠를 가지고 싶다는 시즈코의 말에 그는 두려움을 느낀다. 이후 그는 '세간(세상)이란 개인이다.'라는 깨달음을 가지고 그녀를 떠난다. 이 깨달음은 그로 하여금 조금은 해방감을 주지만, 여전히 인간을 두려워하며 살아가게 된다. 순수한 여자 '요시코'를 만나 결혼을 하지만 호리키와 술을 마시며 옥상에서 반의어 게임을 할 때, 요시코가 동네 키 작은 장사치에게 강간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충격을 받는다. 결국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완전히 인간으로부터 벗어난다. 즉, 인간 실격이 된다.

 

서문부터 이 책은 소름끼치는 느낌을 주었다. 살아있지만, 살아있지 않은 얼굴을 가진 남자. 심지어 '죽은 사람의 얼굴'이라도 이보다 더 살아 있는 느낌을 줄 것이라는 표현은 여러모로 읽는 이로 하여금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이러한 불편한 감정은 작가가 의도한 것이다.).

 

그는 요조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걸까?

 

우선 우리 모두 요조의 모습을 조금씩은 가지고 있다.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각자의 가면을 쓰고 행동하는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다만 요조라는 인물은 그것이 너무 극단적일 뿐이다. 이러한 요조의 모습은 우리에게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과연 '인간'이란 무엇이고, 요조에게 행복한 삶이란 존재하는가?"이다. 결국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다. 다만 이에 대해 명확한 답을 주고 있지 않다. 하지만 이 점이 이 작품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단지 질문만으로도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신을 닮은 선한 애였어"
'인간 실격' 중 마지막 마담의 말

 

작가의 생각을 알기 위해선 위 구절을 볼 필요가 있다. 마지막 부분에서 나오는 '마담'의 말로 작가의 종교관을 반영하고 있다. 요조라는 캐릭터를 신과 동일시하고 있으며, 동시에 세상을 악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는 작품 속에서도 계속해서 드러난다. 계속해서 세상을 두려워하는 모습은 악을 두려워 하는 것이고, 많은 여성들이 요조를 탐한 것은 어쩌면 그의 모습에서 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인지 모른다. 즉, 두려움을 느끼던 요조의 숨겨진 모습에 그들의 가면을 벗고자 하는 욕망이 변질되어 나타난 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다시금 책을 보면 책 제목인 '인간 실격', 그리고 책 속에서 나오는 '인간'이라는 단어의 함의는 '세상'이라고 볼 수 있다. 책에서 요조가 사랑한 여자는 바로 쓰네코와 요시코 단 두명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둘의 공통점은 바로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거나 배신당했다는 것이다. 먼저 쓰네코에 대해 요조가 사랑의 감정을 처음 느끼게 된 것은 호리키가 그녀를 추하다며 거부했을 때이다. 그 때 비로소 요조는 사랑의 감정을 느끼며 쓰네코와 함께 세상(악)을 떠나고자 한다. 다만 쓰네코는 그 결과 구원을 받았지만, 요조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 이후에 만난 요시코도 쓰네코와는 마찬가지로 정반대의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쓰네코와 마찬가지로 세상으로부터 버림받는다.

 

쓰네코, 요시코, 요조의 가장 근본적인 공통점은 세상에 대한 무저항이다. 쓰네코는 호리키에게 강제적으로 키스를 당했지만, 추하다며 거부당한다. 그녀는 세상에 대해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지만 당했고, 버려졌다. 요시코는 순수한 신뢰를 했다. 신뢰를 했기에 그녀는 저항없이 세상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녀의 신뢰는 철저히 배신을 당했다. 요조도 마찬가지로 진정한 자기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가면을 쓴 익살꾼으로 살아갈 뿐이다.

 

요시코의 강간 사건 이후 요조가 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구절이 계속해서 나온다. "신에게 묻는다. 신뢰는 죄인가?", "과연 때 묻지 않은 신뢰는 죄의 원천인가?", "신에게 묻는다. 무저항은 죄인가?", 그리고 이후 "인간 ,실격, 이제, 저는, 완전히, 인간이 아닙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 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과정은 결국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과연 세상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가면을 쓰고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는 결국 간접적으로 답을 보여준다. 가면을 쓰고 살아가야만 하는 세상을 악으로 규정한다. 인간 실격. 세상으로부터 떠난다는 다짐을 한다. 그리고 그는 정말 세상과 점차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변한다. 신을 닮을 인간이었던 그는 세상을 떠나고, 인간 실격이 된다.

 

방식은 다르지만, 이 책이 던져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 가면을 쓰지 않고 자신의 진정한 모습으로 살아갈 것인가? 다만, 한가지 찝찝한 사실이 있다면, 작가가 자살을 시도하였다가 실패를 하였고(요조와 동일), 결국 자살을 했다는 사실이다. 생각하기는 싫지만 작가는 우리에게 절망적인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는지 모른다.

 

"세상 속에서 우리의 진정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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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입사했을 때 선물을 받아 읽게 된 책이다.

 

사실 나는 자기 계발 책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이 책에는 그래도 좋은 평가를 내리고 싶다. 왜냐하면 상당히 오랜 연구와 근거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보통 다른 자기 계발서는 본인의 경험적인 이야기만을 하거나, 다른 위인들이 한 이야기를 인용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책은 통계적인 근거를 가지고 논리를 전개하고 있으며, 한계점 또한 분명히 말한다. 무엇보다도 여러 분야에서 사례를 연구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성공의 기준을 단순히 돈과 명예 만을 기준으로 말하는 것이 아쉽다. 물론 동일한 기준을 가져야만 분석이 용이하기 때문에 그랬을 수 있다.

 

그래도 우리는 성공이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과연 돈과 명예가 성공인가?

 

이 책을 읽기 전에 자신의 성공이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보길 권하고 싶다. 그 이후에 성공의 가장 큰 요인인 'GRIT'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을 꼭 읽기를 바란다.

 

 

 

 


'GRIT(그릿)'을 읽고

 

'GRIT(그릿)'이란 원래 있는 단어가 아니라 'Growth(성장)', 'Restilience(회복)', 'Intrinsic Motivation(내재적 동기)', 'Tenacity(끈기)'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새로운 단어이다. 이 책의 저자인 미국의 심리학자 앤절라 더크워스가 처음으로 개념화한 용어로, 성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투지를 의미한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에 대해 가장 중요하게 손꼽는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재능'이다. 의미는 일반적으로 어떠한 것에 대해 타고난 자질을 뜻한다. 재능은 어떻게 보면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외부 요인이다. 그렇기에 경솔하게도 타인의 성공을 재능이라고 단지 치부해버리곤 한다. 성공이 흔히 우리가 이야기하는 재능에 기인한다면, 실패, 열등감 또는 패배감 등은 자신의 부족함에서 비롯된 게 아니게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합리화를 위해 재능이라고 자주 치부해버리곤 한다. 그리고는 안도감을 가진다. 그런데 과연 이 생각은 맞는 것일까?

 

"우리의 허영심과 자기애가 천재 숭배를 조장한다.···왜냐하면 천재를 마법적인 존재로 생각한다면 우리 자신과 비교하고 우리의 부족함을 느끼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니체

책의 저자 또한 재능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인정은 하고 있다. 다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바로 '노력'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재능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능력이고, 노력 없이는 드러나지 않는 잠재력일 뿐이기 때문이다. 즉, 재능이 성공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노력이 필요하다. 기량은 노력이 없이는 늘어나지 않으며,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서만 발전할 수 있다. 재능은 단지 기량이 늘어나는 속도에 영향을 줄 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노력인 것이다. 저자는 이를 아래 공식으로 표현하였다.

 

 - 재능*노력=기량¹

 - 기량*노력=성취

 - 재능*노력*노력=성취

 

그렇다면 그릿은 어떤 것일까? 선천적일까? 아니면 지금 당장이라도 기를 수 있는 것일까? 당연히 저자는 그릿을 기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릿의 구성요소는 크게 열정과 끈기 두 가지이다. 열정을 얼마나 지속하느냐, 그것이 바로 그릿의 크기가 된다. 열정은 단지 얼마나 관심이 있느냐의 의미가 아니다. 본인 인생에 있어 최상위 목표에 얼마나 변함없이 관심을 보이느냐이다. 최상위 목표와 연관된 하위 목표여야만 끈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우선 최상위 목표를 제대로 설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다만 무조건적으로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는 것이 항상 옳은 일은 아니다. 때로는 경로 변경이 필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상위 목표일수록 끝까지 끈기를 가지고 성취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본인의 최상위 목표를 이루는 지름길이다.

 

다음은 연구 결과인 위인과 일반인을 가르는 4가지 지표이다.

 

 - (하루하루 겨우 살아가는 삶과 대조되는) 멀리 목표를 두고 일하고, 이후의 삶을 적극적으로 준비하며 확고한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정도

 - 단순한 변덕으로 과제를 포기하지 않음. 새로움 때문에 다른 일을 시작하지 않으며 변화를 모색하지 않는 성향

 - 의지력과 인내심의 정도. 한번 결정한 사항을 조용히 밀고 나가는 결단력

 - 장애물 앞에서 과업을 포기하지 않는 성향, 끈기, 집요함, 완강함

 

그릿에는 어느 정도에 유전적인 요인이 있을 뿐, 충분히 후천적으로 기를 수 있는 요소라고 말한다. 그릿을 기르기 위한 4가지 방법은 우선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일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 10여 년 간 관심에 대한 연구 결과 개인적인 관심과 일이 일치할 때에 만족감이 높았다. 그리고 일이 흥미로운 경우 높은 성과를 올렸다. 많은 이들이 착각하는 것처럼 갑작스럽게 관심과 열정이 있는 일이 생기지 않는다. 의외로 관심 가는 일은 운명적으로 나타나지 않으며, 내면의 성찰이 아닌 외부의 활동 속에서 생겨난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야 유지될 수 있다. 노력 없이는 관심은 유지될 수 없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관심을 보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 질적으로 다른 연습을 해야 한다. 그릿은 양뿐만 아니라 질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에릭슨의 한 연구에서 밝혀진 사실은 보통 최고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10년 간 약 1만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수치는 평균일 뿐 가장 중요한 것은 '의식적인 연습'이다. 자신이 부족한 점을 찾고 그것을 개선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연습해야 한다. 아무런 생각 없이 연습을 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의식적인 연습을 위해서는 첫째, 과학적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 명료하게 진술된 도전적 목표, 완벽한 집중과 노력, 즉각적이고 유용한 피드백, 반성과 개선을 동반한 연습을 반복해야 한다. 이를 습관화하면, 비로소 같은 시간과 장소에서 의식적인 연습을 바로 할 수 있게 된다.

 

세 번째로 그릿의 성장을 위해서는 더 높은 목적의식을 가지려고 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서 더 높은 목적 의식이란 바로 타인에게 기여하겠다는 의식이다. 심리학자 벤저민 블룸에 따르면, 자기 분야에서 정상의 자리에 오른 사람은 모두 3단계를 거치며 발전했다. 처음에는 자기 중심적인 관점에서 시작하고, 이후 이를 연습하며 발전시키는 법을 배웠고, 마지막에는 타인 중심의 목적으로 통합되었다. 그리고 그릿이 높을수록 타인 중심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단, 타인 중심적인 삶을 추구할 수록 그릿이 높은 것인지, 그 인과 관계는 불분명하다.).

그리고 데이비드 예거에 따르면, 목적의식을 키우기 위해서는 하는 일이 사회에 어떤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는 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 다음으로는 에이미 브제스니예프스키에 의하면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주어 자신의 핵심 가치와 연관성을 증대시킬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빌데이먼은 목적이 확실한 롤 모델을 찾아야 목적 의식을 키울 수 있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그릿을 위해서 희망을 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단 이 희망의 의미는 단순히 내일이 좋을 것이다라는 느낌이 아니라, 노력을 하면 미래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다. 이 사고방식을 키우기 위해서는 '성장형 사고방식'을 가져야 한다. 이는 본인이 성장, 즉 변화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스티브 마이어의 실험에 따르면 죽지 않을 만큼의 시련을 스스로의 노력으로 통제할 수 있을 때에 더 강한 성장형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으로 거듭난다고 한다. 그리고 낙관적인 자기 대화를 해야 한다. 인지행동치료의 한 방법으로 낙관적인 사고를 증진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주변의 도움을 구하는 방법도 있다.

"죽을 만큼의 시련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니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그릿이 강한 아이를 어떻게 양육할 수 있는지 이야기하며 끝이 난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그릿만이 성공의 요인이 아님을 말하며, 어느 정도 한계점을 인정한다. 이 책은 일반적인 자기계발서 책과는 다르게, 상당히 오랜 연구 결과와 근거를 가지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다른 자기계발서에 비해 상당히 신뢰가 가고, 실제로 도움이 되는 내용이 많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성공의 중요한 요인을 이야기 하기에 앞서 먼저 성공의 정의에 대해 내리는 것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대게는 성공을 남들보다 좀 더 높은 위치, 돈, 명예 등으로 해석하고 말한다. 그리고 이외에도 많은 성공의 정의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이 타인과의 비교를 담고 있다. 타인의 성공을 판단할 때도 그렇다. 그러나 한 가지 에를 들자면, 진짜 성공이 무엇인지 우리는 체감할 수 있다. 

돈을 성공의 기준이라고 가정해보자. 두 사람이 있다. A와 B. A는 가난하게 시작했지만, 어느 정도 사회에 높은 위치에 올라 돈을 축적할 수 있었다. 반면 B는 재벌 집안으로 처음부터 많은 돈을 보유하였다. 그리고 현재에도 처음보다는 아니지만, 많은 돈을 가지고 있고, A보다 돈이 많다. 과연 누가 더 성공했는가? 내 생각에는 A이다. A는 돈을 더 벌었기 때문이다. 

 

즉, 성공은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나와 비교해서 '내가 얼마나 더 목표에 가까워 졌는가'이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성공 레일을 가지고 있다. 이 레일은 서로 교차하지도 않고, 시작도 다르며 끝도 다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각자의 레일에서 본인이 얼마나 전진했는가이다. 다른 사람의 레일에 신경쓰고, 자신의 레일을 잊어버린다면 결국 진짜 성공에 멀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레일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지 말고 자신의 레일 위에서 성공을 거두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저자의 말에 굉장히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 조금이지만 꾸준히 의식적인 연습을 통해 계속 발전해 나가는 것이 성공의 가장 큰 요인이라는 부분이다.

 

그릿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이다. 단순히 "끈기가 최고다"라는 의미만을 담은 것이 아니라 어떻게 성공을 할 수 있는지를 깊게 고찰하게 해준다. 그리고 나아가 과연 성공은 무엇인가도 고민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너무 늦었고, 시간이 없다고 말하지만 사실 시간은 상당히 많다. 어제의 나보다 조금씩 발전하면 성공한 자신을 볼 수 있다. 시간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단지 방향을 잘못 잡았거나, 노력을 안하고 있을 뿐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에 대한 명언이 있다. 모두가 성공한 삶을 살기를 바라며 명언으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자승자강,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진정으로 강한 사람"
노자 '도덕경' 중
"나 너희들에게 위버멘쉬²를 가르치노라. 사람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너희들은 너희 자신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

¹책에서는 '기술'이라 표현되어 있으나, '기량'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한 것 같아 '기량'으로 표기하였음

 

²위버멘쉬는 일종의 초인과 같은 개념으로 항상 자기 자신을 극복하는 존재이며, 인간 자신과 세계를 긍정할 수 있는 존재이자, 지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를 완성시키는 주인의 역할을 하는 존재이다,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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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매우 무서울 책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 책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아들러의 '개인심리학' 철학에 기반에 둔 책이다. 이 철학은 프로이드의 원인론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철학으로, 무의식을 강조한 프로이드와 달리 아들러는 의식의 힘과 자유의지를 상당히 중히 여겼다. 이 책이 무서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프로이드는 과거 트라우마 등에 의해 형성된 무의식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사실상 현재의 나의 책임으로 취급되지 않는다. 개인의 책임이라기보다는 과거의 트라우마에 책임이 넘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아들러의 철학에서는 그러한 요소가 전혀 없다. 오직 현재 개인의 책임이다.

'미움받을 용기'라는 제목을 지은 이유는 단순하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타자와 자신을 분리) 살아가는 용기에는 분명 미움받을 수 있는 상황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타인의 인정에서 벗어나 자신을 위해 사는 길은 분명 어렵지만, 책에서는 용기를 내라고 말한다.

단지 호기심에 읽는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형식 등은 매우 재밌고 흥미롭다. 다만 그저 읽고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아무런 의미없는 책이 될 수 있다. 적어도 이 책을 통해 타인의 인정 욕구에서 벗어나지는 못할 지라도 타인의 삶을 존중하는 사람으로 변해야 한다. 이 책을 읽고 그 정도의 용기는 발휘하길 바란다.

 

 



'미움받을 용기'를 읽고
- 알프레드 아들러의 '개인심리학'-


지그문트 프로이드(Sigmund Freud, 1856~1939, 오스트리아), 심리학과 정신의학뿐만 아니라 사회학, 교육학, 범죄학, 문예비평에 이르기까지 20세기 전 분야에 걸쳐 큰 영향을 끼친 정신 분석의 창시자 중 한 명이다. 프로이드 학파는 원인론을 주된 이론 중 하나로 삼고 있는데, 이는 모든 신체 현상이 인과 법칙에 의해 일어나듯이 정신적인 현상도 과거에 있었던 일을 원인으로 결과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무의식이 거대한 역할을 한다고 보고 있다.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빙산의 일각처럼 물 밑에 잠겨 있는 거대한 무의식이 사실상 사람의 행동을 좌지우지한다는 주장이다.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처음 제시하였다.

 

프로이드의 이론은 입증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과학적 방법론을 중시하는 학자들에 의해 많은 비판을 받았다. 또한 과거에 있었던 일을 원인으로 삼기 때문에 사실상 인간을 수동적인 존재로 보고 있다는 측면에서 부정적인 반향을 일으켰다(이외에도 여러 의견이 있다.). 즉, 프로이드 입장에서는 사람은 쉽게 변할 수 없으며, 사실상 과거 환경적인 요소에 의해 사람의 인생은 이미 결정된 것이다.

프로이드의 원인론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내용인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의 '개인심리학'이다.

알프레드 아들러(1870~1937, 오스트리아), 초기에는 프로이드 융과 함께 활동을 하였으나, 이후 프로이드와 학설 상의 이견을 보이며 개인 심리학회를 창설하게 된다. 성 본능을 중시하는 프로이드에 반대하였으며, 인간의 행동과 발달을 결정하는 것은 열등감에 대한 보상 욕구라고 주장했다. 예를 들면, 나폴레옹은 키가 작았기 때문에 위대해진 것이고, 색약을 가진 사람이 대화가가 된다는 것이다. 열등감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인간을 사회적 맥락 속에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존재라고 보았다. 무의식을 강조하는 프로이드와는 달리 의식이 지닌 힘과 자유의지를 중시한 것이다.

아들러의 철학은 책에서도 목적론의 형태로 잘 나타나고 있다.

우선 아들러의 세계관은 '개인심리학'에 기초한 것으로 각자가 개인의 시선 속에서 형성된 주관적인 세계에서 살아간다. 같은 현상을 보더라도 서로가 느끼는 바가 다르듯, 주관에 따라 사는 세계는 단순하게 또는 복잡하게 바뀐다. 이는 단순히 착각이 아닌, 실제로 본인이 느끼는 현실이므로 모든 주관적인 세계는 사실이고, 곧 현재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과거에 불행했던 사람도 당장 생각의 변화를 통해 행복한 세계에서 살 수 있다.

그렇다면 아들러의 세계관 관점에서 발생하는 현상들은 모두 단순히 개인적인 생각의 산물일까? 아들러는 조금 더 세밀하게 이야기한다.

'목적론'으로 프로이드의 원인론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원인에 의해 결과가 발생하지 않고, 목적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이다. 책에서 언급한 예를 들자면, 과거 불행한 가정환경으로 인해 집 밖에 나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집 밖에 나가지 않기 위해서 불행한 가정환경이라는 이유를 만드는 것이다. 이에 대한 근거로 가정환경이 불행한 모든 사람이 집 밖으로 안 나오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위 2가지 개념을 기반으로 모든 고민을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았고, 열등감을 주된 문제의 원인으로 보았다. 그래서 아들러는 이를 이겨내기 위해서 '인생의 과제'를 극복해 나갈 것을 주장한다.
인생의 과제는 일의 과제, 교우의 과제, 사랑의 과제 총 3가지로 나뉘는데 일의 과제란 일을 수행하는 과정 속에서 생기는 인간관계를 의미한다. 일은 혼자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매 순간마다 다른 사람들과 교류가 이루질 수밖에 없고 이 과정 속에서 인간관계 문제는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다음으로 교우의 과제란 일을 벗어난 관계로 더 넓은 의미의 친구 관계를 말한다. 특히 이 관계는 관계의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거리와 깊이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사랑의 과제는 2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연애 관계와 가족 관계이다. 연애 관계는 말 그대로 서로가 행복해하면 인정해주는, 전혀 상대방을 구속하지 않는 관계이다. 반면 가족 관계는 헤어지는 선택지가 없기 때문에 더 복잡한 관계라고 말하며, 피하지 않는 것이 가장 우선시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인생의 과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인생의 과제와 가장 관련이 깊은 욕구가 바로 '인정욕구'이다. 아들러는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인정욕구에서 벗어나는 것이 진정으로 개인이 자유로워지고, 인생의 과제를 극복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바로 이 점에서 '미움받을 용기'가 나온다. 타인에게 인정받으려 하지 않고, 미움을 받더라도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에 대해 이기적으로 살라고 이해하기도 하지만, 아들러는 이에 대해 '과제의 분리' 개념을 말한다. 자신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하는 것으로, 어떠한 과제가 주어졌을 때 "이것은 누구의 과제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라고 말한다. 이를 알아보는 방법은 이 과제에 대한 선택이 가져오는 결과를 최종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면 된다. 구분을 한 뒤, 타인의 과제에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과제에 집중하는 것이다. 방임주의로 보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존중으로 언제든 도울 의지가 있다고 보여주면서 과제를 스스로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라고 말한다.

아들러의 심리학이 단지 개인적인 부분만 강조한 것은 아니다. 공동체에 대한 점도 강조하였는데, 이와 관련된 개념이 바로 '자기수용', '타자신뢰', '타자공헌'이다. 이를 통해 개인은 자신의 가치를 충족시키고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개념을 통해 얻는 것이 바로 '공동체 감각'이다.
우선 자기수용이란 자기긍정과는 다른 개념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고, 때로는 포기할 줄 아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타자신뢰란 담보를 통해 믿음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적으로 믿는 것을 말하며 마지막으로 타자공헌은 남을 위해 희생하는 개념이 아닌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개념으로 자신의 가치 실현이 곧 타자공헌으로 이어지는 것을 말한다. 이 세 가지가 어우러지면 소속감을 느끼게 되며, 공동체 감각이 형성된다.

나는 아들러의 철학에 대해 전체적으로 깊이 공감한다. 우선 실제로 누구나 같은 일을 경험해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실제 사례를 영화화한 '행복을 찾아서'라는 영화의 주인공인 크리스 가드너도 어려운 환경과 차별 속에서도 이를 이겨내고 마지막에는 본인의 목표를 이룬다. 그 다음으로 개인의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이 될 수 있는 프로이드의 철학과는 달리 아들러의 철학은 개인의 의지를 중요시 여긴다. 이전에 그릿(GRIT)이라는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면서 모두에게 각자의 성공 레일이 있으며, 각자의 레일 위에서 발전하는 것이 곧 바로 성공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인정 욕구에 휘둘리는 것은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레일 위에서 나아가는 것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개인의 가치 실현과 타자공헌이 연결될 수 있다는 점도 인상 깊었다. 진정한 이기주의는 이타주의에서 나온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아들러의 철학 중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개인과 타자를 상당히 분리적으로 보고 있는 점을 언급하며 동시에 타자공헌과 공동체 감각을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나는 과연 이 두 가지 생각이 공존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타자에게 공헌한다는 것은 보편적 생각에 비춰 봤을 때, 본질은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들러는 타자와의 분리를 강조하며, 칭찬, 비판 등 적극적인 개입의 행동을 하지 말라고 한다. 단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신호만 보내면 충분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과연 두부 자르듯 분명한 구분이 가능할까? 만일 본인에게 소중한 사람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그 개인의 책임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자신의 과제가 될 수도 있다. 개인의 삶은 혼자 살아가는 삶이 아닌 많은 인간관계를 형성하며 이루어져 나가는 삶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타자공헌 개념을 나는 굉장히 공감하지만, 두부 자르듯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타자와의 분리가 완벽하게 이루어지기는 어렵다고 본다. 여러 사람과 동시에 연관된 과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들러의 과제의 분리, 타인과의 분리는 대다수의 인간관계와 상황에서 옳다고 보여진다. 흔히 이런 격언도 있다. "10명 중 7명은 나에게 무관심하고, 2명은 날 싫어하며, 1명은 날 좋아한다." 아들러의 과제의 분리는 무관심한 7명에게는 유용하지만, 나머지 3명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특히 본인을 좋아하는 1명의 사람과 완전한 분리는 어렵다. 인정 욕구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렵다는 말은 아니다. 인정 욕구와 별개의 문제로 말 그대로 타인을 돕는다는 가치 실현을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다. 나의 삶은 곧 개인의 삶이지만 친구 역시 삶 속의 한 요소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들러와는 조금 생각이 다르지만, 위에서 언급한 격언에서 나오는 나를 좋아하는 1명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선택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미움받을 용기는 나머지 9명에게 필요하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고, 당연하게도 이에 따라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본인을 좋아해주는 1명에게 실망을 주면서까지 모두를 만족시키려고 한다. 그렇게 자신의 행복은 어느순간 뒷전이 되어버리곤 한다.
인간 관계라는 것은 절대로 완벽하게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 그렇기에 본인이 원하는 인간관계를 선택하고 집중하는 것이 최선이다. 누군가와 관계가 안 좋거나, 친하지 않은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인정해야 할 부분이다. 그저 그런 사람과는 서로 관심을 끊은 채 살아가면 된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삶이 비정상적인 삶이고, 있을 수 없는 삶이다.

또한 프로이드의 원인론에 대해서는 나는 아들러와 동일한 입장이다. 종종 발생한 결과의 원인을 외부적인 환경에 귀인시키며, 합리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아이러니하게도 외부 사람의 성공은 외부적인 환경을 원인으로 보고, 실패는 그 사람이 원인이라고 본다. 자신의 성공은 자신의 성과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실패는 외부적인 환경으로 탓을 돌린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프로이드 원인론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개인의 책임을 과거로 돌릴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자칫 합리화에 빠지는 삶을 당연하게 만들고, 개인 노력의 중요성을 경시하게 된다. 물론 프로이드의 원인론은 여러 현상을 설명해준다. 수학 공식과 같이 100%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범행의 본질적 원인, 개인 성격의 원인 등에 대해 어느 정도 설명 가능한 경향성을 보여준다.
경향성을 띤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경향성을 띤다는 것은 곧 경향성을 벗어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향성을 벗어난 사람들은 프로이드의 원인론 관점에서는 'Outlier'이다(물론 프로이드는 또 다른 원인의 작용에 의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이들은 프로이드의 원인론에 갇혀 살지 않고, 아들러의 목적론과 같이 개인의 힘과 능력, 의지를 통해 벗어난 것이다. 결국 프로이드 원인론의 학문적 의의는 인정하지만, 이는 곧 수학적인 공식이 아닐 뿐더러 우리 개개인에게는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이 조금 더 유익하다는 점에서 나는 차이를 둔다.

미움받을 용기는 이러한 메세지를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프로이드의 원인론에서 벗어나 Outlier가 되는 것. 목표를 삼고 나아가라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모두가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기를 바란다. 인간관계에 휘둘리지 않고, 과거의 사건에 연연하여 현재 자신의 상황을 합리화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자신의 삶을 위해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이 책은 단지 한 사람의 철학을 볼 수 있는 내용이겠지만, 어떤 이에게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계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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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회사에서 2019년 SHRM 컨퍼런스에 다녀온 차장님께서 공유해준 내용 때문이다.

 

마케팅 분야에서는 친숙한 '고객 경험'에서 '직원 경험'을 연결시킨 것이 인상적이었고, 직무 몰입을 기준으로 하는 것은 HR이 미시적으로 작동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도 인상이 깊었다. 직원들에게 경험을 주는 설계를 통해 HR 제도를 수립하는 점은 너무나도 신선했다.

 

그래서 자세히 알고자 국내 책을 찾던 중 '경험설계' 내용을 담은 책을 찾았고, SHRM 컨퍼런스에서 말하는 내용과 동일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조직 관점에서 쓴 책은 아니었다. 구체적으로 경험설계가 조직에서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나온 책도 있다면 더 좋을 것 같다.

 

경험설계는 심리학 개념과 직접적으로 연결시켰다고 보면 된다. 물론 모든 HR 분야가 사람의 심리를 반영하지만, 조금 더 직접적으로 연결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이 책은 추천하고 싶다. HR 관점에서 굉장히 인사이트를 주는 책이다.

 

 

 

 

 


"순간의 힘"을 읽고

 

조직행동론 전문가인 칩 히스(Chip Heath)와 리더십 멘토 일을 하고 있는 댄 히스(Dan Heath)가 함께 쓴 책으로 '경험 설계'에 대해 쓴 책이다. 삶을 바꾸는 결정적인 순간이 있고, 당연히 이 순간을 회사에서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순간을 단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만들어내고 포착해야 한다고 말한다.

 

"만일 전 세계 모든 회사들이 새 직원들에게
평생 기억에 남을 출근 첫날의 경험을 선사한다면 어떨까?"
순간의 힘, p293

- 기업 성장의 비밀, 'CX(Customer Experience)'

 

6월 20일 서울시 양재동 엘타워에서 열린 '2019 디지털마케팅&고객경험(CX) 전략' 컨퍼런스의 핵심 내용은 바로 "고객경험 제공을 어떻게 하느냐"이다. 이는 마케팅 분야에서 활용하는 전략으로 기업, 제품, 서비스 등 기업의 활동에서 고객의 경험을 전략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이다. 생산자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바뀐 구조에서 고객 만족은 곧 기업의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많은 기업들이 어떻게 고객에게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할 것인가 고민하고 있다.

 

고객 경험을 어떻게 제공할지 고민하던 와중에 나온 핵심 성공 요인 중 하나가 '직원'이다. 왜냐하면 결국 고객 경험은 직원이 어떻게 고객을 대하느냐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고객 접점에 있는 직원이든 아니든 직원의 활동은 고객에게 영향을 끼치게 되어 있다. 직원이 고객 경험 성공에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즉, 직원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중요해졌다.

 

- 직원의 경험에서 시작하는 'EX(Employee Experience)'

직원 관리에 대한 인식은 'EH>EN>EX' 순으로 변화되어 왔다.

 

 

[그림1] EH, EN, EX

 

 

EH는 "일은 곧 삶이다."라는 인식으로 일을 삶보다 더 중시하였으며, 업무가 곧 전부라는 점이 강조되었다. 이는 직원들의 스트레스를 초래했으며, 처음에는 효과적인 듯 보였으나 곧 생산성 저하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로 인해 "일과 삶은 대등하다"라는 EN이 나왔다. 대부분 현재에도 가지고 있는 관점으로 직무 몰입을 상당히 중시 여긴다. 회사에 있는 시간 동안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경우 HR 제도가 미시적인 시각에서만 이루어지고, 몰입을 어떻게 증진시킬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 마지막으로 최근 부상하기 시작한 EX이다. "일은 삶의 일부"로 직장에서도 새로운 경험을 선사해야 한다는 관점이다. 이 경우 HR 관점에서 생애 주기별로 직원들의 어떤 경험을 제공할 지 전략적으로 접근한다.

 

그리고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서는 바로 'MOI(Moment of Impact)'라는 개념을 알아야 하는데, 이 개념에 대한 내용이 바로 책에서 주로 다루는 내용이다.

 

- 직원들에게 계속해서 기억되는 순간의 힘, 'MOI(Moments of Impact)'

 

오래도록 기억되는 순간을 만드는 요소를 보기에 앞서 2가지 법칙에 대해 알아야 한다. 일종의 시점과 관련된 법칙으로 '절정-대미 법칙', '전환점(경계점)의 원리'가 그것이다.

 

절정-대미의 법칙은, 최고 또는 최악의 순간과 마지막 순간이 더 기억에 남는다는 점이다. 즉, 마지막에 좋은 느낌을 어떻게 주느냐가 좋은 경험으로 만드는 핵심 요인이다. 또한 전환점(경계점)의 원리는 앞서 언급한 대미의 법칙과 더불어 시작의 요소도 함께 추가된 원리라 보면 된다. 전환점에서는 항상 시작과 마지막의 의미가 모두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시점도 굉장히 기억되기 쉬운 순간이다.

 

 

 

 

그러므로 이 2가지 법칙을 기반으로 MOI의 요소를 담는다면, 사람들에게 당연히 기억될 수 밖에 없다.

 

결정적인 순간을 창조하는 4가지 요소는 '고양(Elevation)', '통찰(Insight)', '긍지(Pride)', '교감(Connection)'이다.

 

첫째, 고양의 순간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감정이 고조되는 경험을 말한다. 즐거움, 행복, 의욕 등을 느끼게 해주는 순간으로 이는 절정의 순간이다. 절정의 순간을 위해서 사람들은 기꺼이 고통을 감내하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절정의 순간을 만드는 것은 중요하며, 이를 만들기 위한 몇 가지 방법이 있다.


먼저 감각적인 매력을 증폭시키는 방법이 있다. 이는 현실이 발산하는 '음량을 높인다'라는 뜻으로, 더 좋게 보이게 하거나, 더 맛있게 하거나, 더 좋게 들리게 하거나 등 기분 좋게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돈을 많이 써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금전보다는 의미에 중점을 두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그 다음은 위험보상을 높이는 방법이다.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압력이 있는 것으로, 중요한 순간을 앞두고 느끼는 부담감이다. 그리고 중요한 순간이 성공적으로 지나면, 보상이 이어진다(돈, 명예 등).

 

마지막으로 각본을 깨뜨리는 것이다. 무언가 확실할 때는 편안함을 느끼기는 하지만, 인상적이지는 않다. 예측하지 못한 변화는 곧 절정의 순간을 선사해준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젊은 시절을 가장 많이 기억하는 이유는 바로 새로움이 많기 때문이다.

 

보통 고양의 순간은 3가지 방법 중 2가지 이상이 조합이 되었을 때 형성된다. 다만 현실에서 이 순간이 설계되기 어려운 이유는 바로 의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절정의 순간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결심과 의지가 필요하다.

 

둘째, 통찰의 순간은 깨달음과 변화를 촉구하는 순간이다. 작고 소소한 깨달음일수도 있고, 깊은 의미의 깨달음일 수도 있다. 대부분은 사실 우연히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고 실제로 그렇기도 하다. 그래도 이 순간을 창조하는 방법에는 2가지가 있다.


'진실에 걸려 넘어지기'는 단지 사실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닌 진실의 실체화라고 의미한다. 단순히 사실만을 말하는 것은 전혀 사람들에게 통찰을 주지 못한다. 이를 위해서는 명확한 통찰, 짧은 시간, 자발적 발견 등이 필요하다. 명확하게 어떤 사실을 알려주고 싶은 지 아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한 순간에 깨닫게 해주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 과정은 자발적으로 이루어져야만 한다. 예를 들면, 서로 연결되지 않았던 사실들이, 한 순간의 경험을 통해 전체적 패턴을 형성하며 연결되는 실체화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상황에도 과감히 노출하는 '자신을 확장하기' 해야 한다. 실패할 위험이 있는 새로운 상황은 통찰의 순간을 가져온다. 그러므로 보호하고 격리하기 보다는, 위험에 일부러 노출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다만, 이 과정이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배움을 보장한다.

 

셋째, 자부심이 느껴지는 긍지의 순간이다. 이 순간에는 개개인이 지닌 최선의 모습이 드러난다. 사실 긍지의 순간은 성취와 많은 연관성이 있는데, 3가지 원칙이 있다. 타인의 인정, 중요한 이정표 늘리기, 용기 내는 연습이 그것이다. 

 

타인의 인정은 긍지의 순간에서 가장 중요하다. 실제로 직원들이 가장 많이 그만두는 이유는 인정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형식적인 포상 등은 오히려 악효과를 초래한다. 시스템보다는 인간적인 요소를 활용해야 한다.

 

그리고 긍지의 순간을 늘리기 위해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이정표 늘리기). 과정 가운데 곳곳에 '결승점'을 세운다고 생각하면 된다. 최종 목표는 책임감 부여에 좋지만, 목표 중간마다 이정표를 세우면 동기부여가 확실히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사실 조직에서도 애매한 지시보다는 의미 있는 이정표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용기 내는 연습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용기를 내는 순간 긍지를 느끼기 때문이다. 대부분 우리는 무엇이 옳은지는 알지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는 잘 모른다. 그렇기에 사전에 이를 연습해야 한다. 그래야 그 순간에 용기를 내고 옳은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준다(일종의 전염).

 

넷째,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교감의 순간이다. 이를 위해서는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의미를 창조해야 하며, 이에는 '동기화 순간 창조', '함께 고난 겪기', '의미에 연결하기' 등 3가지 전략이 있다.

 

먼저 함께라는 순간을 창조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다 같은 장소에 모여 같은 팀원이라는 점을 공유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또한 집단이 다 함께 고난을 겪으면 유대감이 쌓이게 된다. 아이러니 하지만 고통을 함께 공유하는 것은 집단 내 구성원을 결속시키는 사회적 기술 중 하나라고도 주장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현재 하는 일을 의미와 연결하면 사명감이 더욱 고취되며, 같은 일을 하는 동료에게 더 교감을 느끼게 된다. 같은 사명감을 느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위 4가지 요소를 다 포함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각 요소들을 적절히 포함시킨다면 의도적으로 결정적인 순간을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 무엇보다도 경험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렇기에 결정적 순간을 창조하기 위해서 다분히 노력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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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상당히 매력적이기 때문에 읽은 책이다. 신, 정의, 사랑, 아름다움 각각에 대해 철학적인 토론을 담음 책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우리 나이로 치면, 초등학교 대상으로 강연을 열고 그 질의응답을 담은 책이다. 사실 나는 읽으면서 상당히 수준이 높다고 느꼈고, "나는 초등학생보다 못하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높은 수준의 책이며, 당시 읽을 때에는 한번 읽고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책을 높이 평가하고 싶은 이유는 바로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와 관련 있다. 질의응답 형식으로 진행하지만, 명확한 해답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답이 아닌 '각자의 답'을 찾아가게 유도하는 방식이다. 왜냐하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바로 '열림'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 책에서 무언가 해답을 찾기 바란다면 실망을 할 수 밖에는 없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책에서 가장 내가 가장 느끼고 공감했던 개념은 바로 '불완전함'이다. 역설적이게 들리지만 "불완전함이야 말로 완전함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불완전함은 완전함보다 더 크고 깊다. 그리고 매우 매혹적이다.

 

 

 

 

 


[독후감 전문]

 

'신 정의 사랑 아름다움'을 읽고

- 불완전함의 아름다움 -

 

철학적으로 '진리'란 참된 이치 또는 참된 도리를 말한다. 역사적으로 철학자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추구하며 이를 찾기 위해 노력을 해왔다. 그리고 실제로 진리라고 사람들에게 추종 받는 경우도 많았지만, 진리라고 하기에는 부족했다. 이와 비슷하게 사람들은 항상 여러 현상에 의문을 가지고 답을 원했다. 더 나아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옳은 답. 즉, 진리를 찾으려고 했다. 나는 이에 대해 항상 "과연 이 세상에 정답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과연 수학 연산과 같이 정답이 분명하게 내려질 수 있을까?", "진리가 있다면 무엇일까?", "그리고 그 진리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이 책에서 나는 의문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이 책은 철학의 대표적인 논제 중 신 정의 사랑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 하는 책이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 내용을 다루지만, 성인일지라도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많다(아이들의 수준이 놀라울 따름이다.). 헤겔과 니체, 하이데거의 영향을 받은 장 뤽 낭시는 '의의'의 세계에 대해 주목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철학이 의미를 찾기 원했다면, 낭시는 이에 대해 거부를 한다. 그래서 신 정의 사랑 아름다움에서도 의미를 찾으려 하지 않고 의의에 대해. 즉, 의미가 열려 있다는 것을(불완전함) 이야기 한다.

 

 

 

 

"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무엇인가 있었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죠? 그래서 어쩌라는 말이에요?'···거기엔 아무 의미도 없지만, 또한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좋은 것이다. 그것은 열려있고 유연합니다. 수많은 일들을 하기 위해 또한 동시에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유연한 것이지요."
'신 정의 사랑 아름다움' 中

 

신, 정의, 사랑, 아름다움 이 단어에 대해서 '무엇이다'라고 답을 내리지 않는다. 그래서 만일 4가지 논제에 대해 답을 원했던 것이라면 실망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에서 언급하는 '열림'이라는 것이 바로 답이고 진리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이 종종 든다. "완벽하다는 것, 완전하다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할까?" '완벽함(완전함)'이 부정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사실 우리가 항상 추구해야 할 방향이기도 하다. 다만, 과연 도달할 수 있을까? 절대 도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도달되어서도 안된다. 완벽함이란 어떤 것일까? 상상이나 가능할 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그 상태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실수는 없다. 완벽하므로 무엇을 할 필요도 없다. 이미 완벽한 상태이다. 선택을 할 지라도 그것 또한 완벽한 선택이다. 발전은 없다. 이미 완벽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재미없는 삶인가

 

그래도 사실 위에 언급했듯이 우리는 이를 항상 추구해야 한다. 절대 도달할 수 없는 완벽함을 우리는 항상 추구해야 한다. 이를 인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 생각을 인지해야만 불완전함의 의의를 알고, 완전함을 향해 나아가는데 강력한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성공했다고 평가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러한 사고를 명시적으로 얘기하지는 않지만, 몸소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불완전한 상태를 즐기며 완전함을 향해 나아가려고 한다. 불완전함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시선도 있지만, 오히려 이 상태를 기뻐해야 한다. 더 나아갈 방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도 이 사고방식을 내재하고 있다. 신, 정의, 사랑, 아름다움에 대해 분명한 대답을 얻지는 못했지만 이러한 단어들이 항상 열려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저자의 말에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게 되었다.

 

"진리란 도달할 수 없지만,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 곧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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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읽은 베스트셀러 책 "생각하는 인문학"이다.

 

개인적으로 읽기 전에는 포용적인(?) 내용이 들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베스트셀러이기도 하고, 단순히 책 표지에서 주는 느낌이 그랬기 때문이다. 많은 분들이 편안하게 읽고, 인문학이란 어떤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지를 쉽게 풀어 놓은 책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내 생각과는 전혀 반대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정말일까?", "오, 내용 괜찮은데" 등의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점점 이상한 위화감이 들었고, 독후감을 쓰며 내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그 위화감의 원인을 알게 되었다.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나는 이 책의 저자를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일종의 '책 장사꾼'으로 보고 있다.

 

책을 팔기 위해 자료를 짜깁기 하여 그럴싸하게 만들어 놓고, 과장을 하여 본인의 책을 신격화하는 느낌이 들었다. 일종의 사이비 종교가 하는 방식과 비슷해 보인다. 실제로 논리적 오류도 존재한다. 물론 이 책이 사람들에게 인문학 책에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는 측면에서는 큰 의의(?)를 가질 수는 있겠지만, 거짓된 말로 일으킨 것이므로 그저 금방 사라질 관심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이 책의 저자가 책에 언급한대로 그 능력(과학적 지식에도 정통한 것, 인문학 책을 통째로 외우는 것 등)을 보여준다면 인정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저자가 절대 그럴 수 없을 것이라고 본다.

 

저자가 말하는 인문학이라는 만병통치약은 나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나 또한 인문학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인문학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만병통치약은 그 어디에도 없을 뿐더러 설사 저자가 말한대로 하면 만병통치약일지라도 그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만병통치약이라 할 수 없다(어떤 분야든 저자가 말하는 수준대로 하면 사실 만병통치약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인문학도 중요하지만 나는 사람들 각자가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그 철학에 맞게 인생을 살아갈 때, 그리고 다양한 철학이 조화를 이룰 때 사회는 진보할 수 있다. 단지 인문학을 많이 공부한다고 해서, 위인전을 많이 읽었다고 해서, 그리고 그들의 생각을 따라한다고 해서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철학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자신만의 철학을 지키며 살아가는 모습만으로도 이미 큰 위인이라 할 수 있다.

 

내 생각과는 반대하는 분들이 많을 지도 모르겠다. 다만 내가 보기엔 이 책은 좋은 책이 아니다.

 

 

 

 

 


[독후감 전문]

 

"생각하는 인문학"을 읽고

 

'생각'이란 사람이 머리를 써서 사물을 헤아리고 판단하는 작용 등을 의미한다. 넓은 의미로는 의식활동과 그 내용 모두를 지칭하는 단어이다. '생각'이라는 것은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활동 중 하나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좋은 생각에 대해 이야기하고 연구까지 하고 있다. 이 책도 그러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은 5000년의 역사를 만든 동서양 천재들의 사색공부법에 대해 소개하는 책이다. 인문학의 본질은 '생각'으로 생각하는 인문학을 통해서 우리 또한 천재의 생각을 가질 수 있고 이에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내용이다.

 

저자는 우리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 생각을 당하고 있다고 노골적으로 이야기 하며, 그 원인을 우리나라 역사 교육에서 찾고 있다.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 하에서는 생각의 노예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 교육 시스템은 일본에 의해 시행된 우민화 교육이며, 국민들을 생각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저급한 노동력만을 양성한다고 말한다. 광복 이후에도 친일파들 또한 국민들에게 철학 교육을 금지하였고, 군사독재 시대에서는 철학을 말살하다시피 하여 결국에는 교육이 죽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 하에서는 우리는 썩어빠진 생각을 가지고 있을 수 밖에 없고, 올바른 생각을 가지기 위해서는 생각 시스템을 모두 부수고 인문학적 사고 방식으로 재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방법으로 사색공부법 10가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첫째, 위대해지려고 각오한 사람만이 위인이 될 수 있다. 입지하라"

사색의 목적을 가지라는 의미로 목적없이 사색하는 것은 헛된 일이기 때문에 항상 사색을 할 때 하나의 목표를 세우고 하라는 것이다. 율곡의 입지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며, 혁구습(8가지 나쁜 옛 습관을 버리는 것), 구용(9가지 바른 몸가짐)과 구사(9가지 사색)의 자세로 입지를 하라고 이야기 한다.

 

"둘째, 당신의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거경궁리하라"

마음을 경건하게 하여 이치를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황홀한 사색법이 바로 거경궁리이며, 이는 마음을 비우고 고요하게 사색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정제엄숙, 주일무적(하나에 마음을 쏟는 것), 상성성(마음이 항상 깨어 있는 것), 기심수렴불용일물(마음을 온전히 하는 것) 등을 실천하라고 이야기 한다.

 

"셋째, 전쟁같은 독서와 사색, 격물치지 하라"

격물치지란 사물에 대하여 깊이 연구하여 지식을 넓히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인문고전에 나오는 글자의 이치를 파고 들고, 역사고전을 통해 흥망성쇠의 이치를 파고 들며 실제로 우주와 사람과 만물의 이치를 파고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넷째, 소크라테스처럼, 육체의 한계를 초월해 사색하라"

사색을 최우선으로 두고, 육체의 한계조차 초월할 뿐 아니라 시선이나 평가 등에도 신경쓰지 말고 오직 사색만을 할 것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끝까지 사색하여 해답을 얻으라는 것이다."

 

"다섯째, 천재들의 영혼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언어, 원어로 읽어라"

제 아무리 뛰어난 번역자라 할 지라도 원전에 담긴 인문고전 저자의 영혼까지 번역할 수 없기 때문에 원어로 읽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원어로 읽으면서 인문고전 저자의 관점에서 사색하는 것을 권유한다.

 

"여섯째, 인문고전의 반열에 오른 해설서로 사색하라."

인문고전의 반열에 오른 해설서는 천재들이 인문고전을 읽고 남긴 사색노트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사색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사색과 비교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일곱 번째, 순정을 바치듯 한 권의 인문고전에 평생 몰두하라"

한 권의 인문고전을 평생 연구함으로써 그 인문고전의 철학이 아닌 철학하는 법을 배우라고 이야기 한다.

 

"여덞 번째, 인문고전의 목차로 사색지도를 그려라"

책을 읽기 전에 책의 목차를 적고 사색을 한 뒤, 사색한 내용을 글로 정리한다. 이후 책을 통독하고 다시 2, 3회 정독 또는 필사까지 한 뒤에 책의 내용을 정리한다. 그리고 자신이 사색한 것과 책의 내용을 비교한 뒤 이를 글로 정리하고 천재처럼 생각하려면 어떻게 해야할 지 고민해보는 것이다.

 

"아홉 번째, 연표를 통해 균형 잡힌 시각을 길러라"

역사를 공부할 때 생각이 깊어지고 지식이 향상되며, 학문이 진보하므로 연표를 중심으로 역사고전을 읽고 전쟁, 반란, 혁명 등과 같은 사건에서는 잠시 멈추고 결과를 예측하고 틀렸다면 그 이유를 사색하고 맞으면 계속 읽는 것이다. 역사 가운데 있다고 상상하며 긍정적인 면, 부정적인 면을 파악하고 후세에 끼친 영향엥 대해 사색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라면 어떻게 했을지 고민한다.

 

"마지막 그랜드투어 하라."

인문고전 저자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인문학적 지식과 지혜를 쌓는 그랜드투어를 하라는 것이다. 인문여행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인문학적 사고를 가지고 이후에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섬기는 서번트 투어를 통해 영혼의 성장을 경험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주된 사색공부법 10가지에 대해 소개하지만, 이 외에도 더 자세한 내용은 책에 담겨져 있다. 인문학 사색을 통해 자신의 삶이 어떻게 변화해왔고 어떠한 능력을 가지게 되었으며, 어떠한 방식으로 사색을 해왔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리고 인문학적 책 뿐 아니라 과학적 책도 소개하므로 궁금하다면 책을 읽어보는 것도 편하다.

 

 

 

 

하지만 단도직입적으로 이 책에 대해서 이야기 하자면, 정말 최악의 책이라고 생각한다. 자료를 짜깁기해서 만든 듯한 책으로 자신만의 철학은 전혀 없이 이 그저 여러 책의 내용을 꺼내서 모아놓은 듯한 느낌이 들게 하는 책이다.

 

이 책의 프레임에 대해 먼저 이야기 하자면, 우선 공포를 조장한다.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을 비난하며 우리나라 교육을 받은 우리는 이미 쓰레기 같은 생각을 하고 있고, 이렇게 가다가는 결국에는 후진국으로 전락해 중국, 베트남 등지로 노동을 하러 가야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청공장, 후진국, 재앙 등의 단어로 더욱 강렬하게 말한다.

 

그 다음으로 희망을 주입한다. 이해할 수 없는 논리와 추측성 문장으로 인문학을 통해서 쓰레기 같은 생각에서 벗어나 사색을 함으로써 인간의 두뇌를 활용하고, 나아가 타인에 비해 두뇌 속 생각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경지에 이룰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인문학적 사고를 신격화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불가능한 방법을 이야기한다. 원어로 인문학 서적을 읽어야 하고, 좋은 인문학은 암기까지 하고 되도록 필사를 해야 한다. 클래식, 명화, 위대한 건축물 등을 즐기고 항상 사색하면서 이를 기반으로 사색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문학 서적 뿐 아니라 경제학, 과학 서적 등 모든 서적에 대해서도 이러한 방법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그래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 방법을 통해 삶이 변한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고 이야기 하며 끝을 맺는 구조이다. 자신은 사색하는 법을 통해 생각하는 사고가 넓어짐으로써 한두 달이 지날지라도 90% 이상 기억하는 능력 일명 '포토그래피 메모리'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프레임을 정리하자면, 공포감을 조성한 뒤 희망을 주입하고 이에 불가능한 방법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러한 것을 가능케 한 사람이 자신이라고 이야기 한다. 일단 기본적으로 장담컨대, 절대로 저자 본인에게 저러한 능력은 없을 뿐더러 실제로 책에서 이야기한 방식대로 인문학 공부를 한 적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저자가 이러한 비판이 만연해 있다는 것을 안다면, 왜 아직까지도 그 능력을 증명하지 못할까? 의문일 뿐이다. 실제로 그렇게 하는게 본인 책의 내용을 입증하는데 더 도움이 될텐데 말이다.

 

저자의 논리와 사고방식은 매우 단순하다. 성공하면 인문학적 사고를 한 것이고, 성공하지 못한다면 잘못된 인문학적 사고를 한 것이라고 이야기하면 간단하기 때문이다. 성공한 위인들 중 인문학 공부를 한 사람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인문학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들 중 실패한 위인들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를 단지 옳은 사색법과 잘못된 사색법이라는 결과론적인 입장에서만 바라보는 것이다. 

 

또한 성공한 사람 모두가 인문학을 했다고 인문학이 성공의 주된 요인이라는 논리는 어떻게 나오는 것일까? 실제로 성공했다고 알려진 모든 위인이 인문학을 했다는 사실도 없을 뿐 더러 그 사실이 주된 요인이 될 수는 없다. 인과관계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사무실 또는 집 안에 인문학의 흔적이 있으므로 인문학을 통해서 성공했다는 것이다. 이를 성공의 주된 요인으로 삼는다는 것은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만 보는 오류를 범한 것이다.

 

저자가 책의 좋은 글귀란 글귀는 짜깁기 해서 책을 쓰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알겠다. 그런데 이를 기반으로 허황된 의식에 빠져 인문학을 신앙화 하는 것은 정말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문학은 진리나 신앙이 아닌 하나의 학문으로 탐구하는 학문이다.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절대로 절대적이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팔기 위해서 이러한 거짓된 말로 선동하는 것은 정말 비판 받아 마땅하다.

 

그렇다면 인문학 교육은 어떻게 바라 보아야 할까?

 

일단 교육 시스템부터 이야기 하자면, 우리나라 교육이 잘못되었다는 점에서는 나도 어느정도 공감을 한다. 하지만 단순히 주입식 교육이 쓰레기 교육이라는 사고는 상당히 위험하다. 우리나라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선택사항이 좁다는 측면이다. 어느 교육이 옳고 잘못되었다는 방식을 누가 선정할 수 있을까? 나는 모두에게 선택을 통해 맡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입식 교육은 단지 교육의 방식일 뿐이다. 자신에게 교육 방식을 선택하는 환경이 올바른 교육이다. 선택할 수 있는 교육 환경을 제공해야만 자연스럽게 선택되지 못한 교육 방식은 도태될 것이고, 사라지게 될 것이다.

 

내가 이러한 것을 주장하는 이유는, 누군가는 인문학을 싫어하고 누군가는 주입식 교육을 좋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문학을 하다 보면 인문학을 좋아하게 될 거라는 그런 오만함은 버려야 한다. 사람은 너무나도 다양하고 행복의 기준은 다르기 때문에 각각 자신들이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 그래서 각자 다른 직업을 가지기도 하고, 그 속에서 각자의 행복을 추구한다. 이에 교육 또한 각자의 다양성에 맞추어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내가 추구하는 교육의 이상향은 바로 선택의 자유가 보장되는 그러한 시스템이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의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

 

그렇다면 인문학 책을 읽지 않는 삶은 행복하지 않은 삶일까?

 

나는 각자가 인문학을 모른다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우선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인문학'이란 인간의 사상 및 문화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 영역으로 포괄적인 의미이기 때문에 규정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간단하게 생각한다면, 사람들 각자 자신만의 생각, 철학 그리고 예술 등 이러한 모든 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인문학이란 이렇듯 매우 넓은 영역이다. 어떻게 딱 규정할 수 있는 학문 영역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자신만의 인문학을 실천해 나가며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별개로 인문학 책은 사람들 각자가 자신만의 철학을 가꾸고 실천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뿐 행복에 직접적인 요소는 아니다. 즉, 무조건 인문학 책을 읽고 사고하는 것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인문학 책은 한 개인 혹은 집단의 철학을 표현한 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철학이란 무엇이고, 행복한 삶은 무엇일까?

 

철학이란 일종의 가치관과 비슷한 개념으로 어떠한 상황이나 선택 속에서 자신이 옳다고 믿는 논리적이고 규칙적인 행동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행복한 삶이란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이를 행할 수 있는 삶이 바로 행복한 삶이라고 본다. 어떠한 철학을 가져야만 행복할 수 있을까? 그것은 아무도 알 수 없다. 공자의 철학이 옳은가? 아니면 소크라테스의 철학이 옳은가? 그 누가 와도 명쾌한 해답을 내릴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답이 없기도 하다. 단순히 철학이든, 깊은 철학이든 넓은 철학이든 무엇이 더 좋고 옳은지는 판단할 수 없다. 당장 누군가가 흔히 말하는 소크라테스, 공자의 삶은 산다고 해서 과연 행복할까? 사람들은 각자 자신만의 철학이 있다. 그 철학에 맞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 행복한 삶이지 그 이상 그 무엇도 아니다. 누군가의 철학을 존경하며 그러한 사고를 하려는 노력은 할 수 있지만, 누군가의 철학이 항상 절대적일 수는 없을 뿐더러 그래서도 안된다.

 

자신만의 철학을 세워 나가면서 이를 실천하고, 서로의 철학을 존중하며 배워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인문학 책은 이를 도와주는 좋은 도구일 뿐 그 이상 그 무엇도 아니다. 인문학 책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고 얻으려는 것은 좋지만, 마치 절대적인 것인 마냥 신앙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 아쉬울 따름이다. 이런 허황된 책이 아닌 정말로 좋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날이 하루 빨리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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