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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방송에서도 소개된 책으로 유대인 학살의 주요 인물 중 한명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을 보고 쓰여진 책이다.

 

한나 아렌트의 책 중 가장 대중적인 책으로

다소 읽기에는 지루하고 또는 어려울 수 있지만 매우 흥미로운 책이다.

 

'악의 평범성'. 책에서 단 한번 나오는 이 단어는 아주 흥미로운 단어이자 새로운 개념이다.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읽으면서 알 수 없는 답답함을 느낄 것이다.

 

비즈니스에도 던져주는 의미가 깊다.

시키는 대로 하는 문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문화. 질문과 의견을 용납하지 않는 문화.

이 모든 것들이 어쩌면 악의 평범성에서 비롯된 단면일지도 모른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고

-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 -

 

1961년 미국의 예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은 간단한 실험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권위에 대해 복종하게 되는가'를 보여주었다. 교사 역할을 가진 피험자가 학생이 문제를 틀릴 때마다 15볼트씩 점차 높이며 450볼트까지 전기 충격을 주는 실험이다. 그리고 학생 역할을 맡은 연기자는 전기 충격을 받는 것처럼 연기를 한다. 밀그램은 시험 전에 단 0.1%만이 450볼트까지 전압을 올릴 것이라 예측했지만, 65%의 참가자들이 450볼트까지 올렸다. 실제로 이들 모두가 상대가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권위에 의해 굴복하여 그렇게 행동한 것이다. 이 실험은 사회적으로 매우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지지하는 실험 중 하나로 꼽힌다. 악의 평범성이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란 책에서 나온 새로운 개념으로 나치에 의해 유대인 학살이 일어난 당시, 광신도나 반사회적 성격장애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상부의 명령에 따라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유대인 학살에 참여하게 된 사실에서 나오게 되었다. 실제로 전쟁 중 잔혹한 고문을 하는 사람이 고문 도중 동료와 함께 딸 아이의 생일 선물을 고민하는 등 악한 행동이 너무나도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부제가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이기는 하지만 책에서는 마지막에 단 한번 나온다.

 

"이는 마치 이 마지막 순간에 그가 인간의 연약함 속에서 이루어진

이 오랜 과정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교훈을 요약하고 있는 듯 했다.

두려운 교훈, 즉 말과 사고를 허용하지 않은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p349 -

 

이 책은 예루살렘에서 열린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보며 한나 아렌트가 이에 대한 보고서와 견해를 쓴 책이다. 한나 아렌트의 저서 중 가장 대중적인 저서로 알려져 있다. 아이히만이 체포될 당시 그가 포악하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악인일 것이라고 모두가 예상했지만, 그 반대로 그는 지극히 평범하고 가정적인 사람이었다. 심지어 정신과 의사들 역시 그를 매우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이야기 하며 놀라워할 정도였다. 한나 아렌트 또한 같은 감정을 느꼈다. 재판 과정을 다 지켜보고 나서 '악의 평범성'에 대해 말하게 된 것이다.

 

세계를 경악하게 만든 사건을 일으킨 주범 중 하나이지만, 정작 그를 본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라고 이야기 하는 아돌프 아이히만, 그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아돌프 아이히만(Otto Adolf Eichmann)', 독일의 나치 친위대 장교로 2차 세계대전 중 독일 및 독일 점령 하의 유럽 지역 각지에 있는 유대인의 체포, 강제 이주를 계획·지휘한 장본인이다.¹ 독일의 항복 이후 가족과 함께 아르헨티나로 도망치고 리카르도 클레멘트라는 가짜 이름으로 부에노스 아이레스 근교에 숨어 있다가 결국 1960년 5월 체포되었다. 1961년 12월 예루살렘의 법정에서 독일 나치가 저지른 유대인 600만명 학살의 죄를 물었고, 그 결과 사형 판결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1962년 6월 1일 교수형에 처해지게 된다. 

 

아이히만은 도대체 왜 그러한 참혹한 비극을 저지른 것일까? 한나 아렌트는 그 원인을 아이히만이 가지고 있던 세 가지 무능성에서 찾는다. 말하기의 무능성, 생각의 무능성, 판단의 무능성이다.

 

특히 한나 아렌트는 말 자체가 행위라고 말하는데('인간의 조건'이라는 책에서 언급한 내용), 말하기의 무능성이 발생한 주요 원인은 나치가 사용한 '언어 규칙'에 있다고 이야기 한다. 유대인 학살 계획을 추진하면서도 학살 또는 유대인 이송 등 적나라한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았다. 학살은 최종 해결책, 완전 소개, 특별 취급 등으로 표현하였고 유대인의 이송은 재정착, 동부지역 노동 등으로 바꾸어 이야기한 것이다. 이러한 언어 규칙은 언뜻 보면 이 사실을 모르는 다른 사람들에게 숨기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이상하고도 매우 특이한 점을 볼 수 있다. 당시 이러한 언어규칙을 사용해야만 하는 자('비밀을 가진 자'라고 불렸던 자들로 히틀러로부터 직접 유대인 학살에 대한 명령을 들었던 사람들을 의미)가 있었고, 아닌 사람이 있었는데 후자 또한 언어 규칙을 계속 사용하였다. 이들은 이렇게 언어규칙을 사용함으로써 실제로 일어나는 일과는 다르게 그들이 평소에 가지고 있는 정상적인 사고 방식과의 위화감 등 충돌을 막을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무자비한 학살 계획 속에서도 이들은 제정신을 유지하며, 이 계획의 체계성과 질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실제로 아이히만은 유대인 학살을 주도적으로 추진한 사람 중 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유대인 가스 학살에 대해 글로보크니크²에게 설명을 듣자 상당한 거부 반응을 보였다. 또한 이러한 무능성은 예루살렘에서 열린 재판에서도 나타나는데 아이히만의 진술에 대해 판사들은 공허함이 느껴지는 진술이라며 전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말하였다.

 

이렇듯 나치가 사용한 언어규칙은 아이히만을 현실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무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럽게 생각의 무능성, 판단의 무능성으로 이어졌다. 유대인 학살 계획의 주요 인물이면서도 동시에 이러한 현실을 인지하지 못하였고, 자신이 얼마나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는 곧 판단력의 상실을 가져왔고 학살을 무자비하게 이루어졌다.

 

이 책은 한나 아렌트가 쓴 책 중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쓰여진 책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학술계에서 가장 논란이 된 책 중 하나이다. 그리고 동시에 많은 유태인과 이스라엘에서 엄청난 비난을 사기도 하였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의 내용은 아이히만을 옹호하는 듯이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책 발간 이후 한나 아렌트는 공개적으로 사과를 하며, 그러한 의도는 없었다고 이야기 하기까지 한다.

 

 

 

 

사실 이 책에서 우리가 봐야할 것은 아이히만은 어떤 사람이었고, 한나 아렌트가 옹호했고, 아니고가 아니다. 우리는 아이히만 사건 이후 얼마나 많은 악의 평범성에 대한 사례를 볼 수 있었던가.

 

수 많은 악행과 비극에는 많은 사람들이 무사유 속에서 저지르는 행동에 그 원인이 있다. 정치적인 비리 사건, 인재에 의한 사고 등 우리가 뉴스를 보며 비난하고 헐뜯는 행동들은 개인의 행동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많고도 사소한 악의 평범성이 쌓이고 쌓여 되돌아 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 단지 "어제도 똑같이 했으니까", "누가 시켰으니까", "사소한 거니까", "별일 있겠어?"라고 이야기하며 생각하지 않고 넘어가는 작은 행동들이 언제든 크게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 한국 사회는 더더욱 이러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어린 시절부터 질문을 하지 않는 문화, 이해를 못하더라도 무조건적으로 암기하는 교육 방식 등으로 인해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시키는 대로, 하라는 대로 행동하는 방식이 몸에 배이게 되었다. 심지어 질문,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마치 반대 의사라고 생각되어지는 문화가 있기도 하다. 교육이라는 명목 하에 형성된 이 폐해는 우리 사회에 넓게 퍼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폐해는 군대 생활에도 이어진다. 본래 군대에서의 계급은 각 계급의 해당하는 권한과 책임을 의미했지만, 변질되어 높은 계급이 곧 절대적이라는 잘못된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각 계급에게 주어진 권한과 책임은 망각한 채, 그저 높은 계급이 되면 정당하다는 생각을 하고, 처음 본인이 느꼈던 수 많은 부조리와 불만은 망각한 채 당연시하며 그러한 악습 위에서 생활을 한다. 그리고는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옳고 맞다는 생각을 한다. 결국 이 폐해는 '윤일병 사건' 등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로 나타나기도 한다.

 

사회 속에서도 작은 먼지와 같이 나타나기도 한다. 회사에서 생기는 불합리한 일들, 불법적인 일들에 대해 우리는 눈을 감곤 한다. 때로는 그러한 지시에 따르고, 단지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이라며 잘못을 회피하곤 한다. 아돌프 아이히만도 그렇게 이야기 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물론 대부분 이러한 것들에 대해 우리는 처벌받지 않을 것이다. 너무나도 사소한 문제들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크게 신경쓰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사소한 문제 때문에 굳이 트러블을 만들기 보다는 넘어가는 것이 좋다고 말이다. 실제로 때로는 불합리해 보이는 것도, 불법적인 것들도 좋은 결과를 빠르게 가져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생각해야 한다. 사소하지만 작은 이러한 문제들이 모여 결국엔 큰 문제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마치 연쇄 작용과 같이 작은 문제들이 이어져 큰 문제를 초래한다. 우리나라를 큰 충격에 빠지게 만든 '세월호 사건'도 바로 그러한 에라고 할 수 있다. 적재량을 초과하여 운행해온 세월호, 선박 불법 개조, 조타 실수, 기자들의 무분별한 기사, 공공안전 기관의 회피성 업무 태도 등 이 수 많은 문제는 우리 사회 모두가 사소하다며 외면해 온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The Sum of All Bad", 단지 이것은 얻기 위해 버려진 것들의 총합이다.

- 네이버 웹툰, '나이트런' Another ep.58' Another ep.58화 중 -

 

항상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 우리의 행동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그리고 과연 우리가 옳은 행동을 하고 있는지 사고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이미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사례를 통해 알고 있다. 지극히 평범하고도 가정적인 가장인 아돌프 아이히만, 그리고 그 외의 평범한 많은 나치  사람들이 저지른 결과는 참혹하였다.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을 통해 우리에게 경고를 하고 있는 듯 하다.

 

언제라도 우리 또한 '하나의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¹ 2차 세계대전 중 독일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은 홀로코스트라 불린다. 히틀러가 유독 유대인을 타겟으로 하여 학살한 데는 이유가 있다. 바로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서였다. 국가 부흥을 위한 전쟁이라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이루어진 최악의 범죄였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암울한 상황이 지속되었는데, 이 상황에서 히틀러는 선동을 하기 시작한다. 독일 게르만 민족이라는 우수한 민족이 사명을 다하지 않아 암울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으며 그 사명 중 하나가 바로 유대인이라는 사탄을 몰아내는 것이라고 한다. 그 결과 국민들은 유대인을 몰아내야만 국가가 부흥할 수 있다고 믿게 된다. 그리고 이후 유대인 학살이 아무런 죄책감 없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 처럼 히틀러는 유대인을 학살을 통해 유대인의 재산을 얻고자 하였다. 당시 상류층이었던 유대인의 재산을 몰수하여 전쟁을 일으키고자 정당한 방법으로 몰수할 수 없었던 히틀러는 유대인을 사탄이라 선동하며, 학살을 일으킨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선동이 이렇게 쉽게 된 이유는 실제로 유대인 혐오가 만연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만을 오직 유일신만으로 인정하며 예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아 당시 유럽 전연에 알려져 있던 개신교의 반감을 사고 있었다. 또한 유대교의 특징 상 율법주의, 유대인 선민사상 등 민족주의 성향이 강해 더욱 반감이 있었는데, 심지어 독일에서는 유대인은 고리사채업으로 부를 축적한 상류층으로 살고 있어 더욱 혐오의 대상이 된 것이다.

 

² 라인하르트 작전을 펼쳐 유대인과 집시 200만명을 학살하였다. 라인하르트 작전은 1942년 봄부터 1943년 가을까지 총독부령에서 시행된 독일의 유태인 초토화 작전으로 국가보안성 장관인 하인드리히 라인하르트의 이름으로 불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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