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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헤르만 헤세의 작품은 이 책 말고 데미안도 읽었는데, 항상 울림을 주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리고 항상 반성을 하게 된다.

"나는 혹시 날 위해 살아가고 있나?"라고 돌아보곤 한다.

청소년들에게 꼭 추천을 하고 싶고, 대학생들에게도 꼭 추천하고 싶다.
비즈니스 책들도 좋지만 이렇게 소설을 읽으면서 얻는 교훈도 많다.

이 책을 읽으면 조금 더 다른 사람의 시선, 비교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고

남부 독일 슈바르츠발트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한스 기벤라트'는 매우 총명한 아이로 마을에 모든 기대를 한 몸에 받아왔다. 낚시를 좋아하는 아이였지만, 신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공부에 매진하였고 그 결과 우수한 성적으로 유명 명문 신학교인 마울브론 신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입학하게 될 무렵부터 한스는 두통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우울증 비슷한 증상도 보인다. 억압적이고 엄격한 분위기 속에서 기숙 생활을 하며, 한스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우수한 아이가 되기 위하여 노력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신과 정반대로 자유분방한 하일러와 단짝 친구가 된다. 친하게 지내기는 하지만, 신학교 생활과 규칙에 정면으로 저항하는 하일러와는 달리 한스는 단지 뒤에서 바라보기만 한다. 결국 하일러는 신학교를 탈출하고, 한스는 더더욱 고립되며 점차 성적도 떨어지고 우울증도 심해지게 된다. 어쩔 수 없이 신학교를 자퇴하고 다시 마을로 돌아가게 된 한스는 에마라는 여성과 사랑에 빠지기도 하지만, 에마가 갑작스럽게 떠나자 절망에 빠지고 다시 두통을 느낀다. 두통에 계속 시달리며, 아버지의 권유대로 공장에 취직하였고 공장에 다니는 동창생의 축하파티에서 술에 취해 강물에 빠져 죽는다. 그 죽음에 마을 사람들은 안타까워 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7.2~1962.8.9)' 독일의 소설가이자 시인으로 독일 뷔르템베르크의 칼프에서 태어났다. 유서 있는 신학자 가문에서 자라나 1890년 라틴어 학교에 입학하고, 1891년 어렵기로 유명한 주 시험을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하며 마울브론의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신학교에 입학한 이후 미래의 시인을 꿈꾸기 시작하면서 신학교의 속박된 기숙 생활에 괴로워하였고, 결국 자살까지 시도하였다. 그리고 정신요양원에 입원되었다. 정신요양원에서 나오고 나서는 고향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작가의 꿈을 걷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수레바퀴 밑에서(1906)', '데미안(1919)', '싯다르타(1922)' 등이 있다.

수레바퀴 아래서는 헤세의 초기 작품인 동시에 가장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로 헤세의 삶을 가장 잘 드러낸 자서전 형태의 소설로 평가된다. 헤세는 이 작품을 통해서 독일의 교육 현실을 노골적으로 비판하였다.

사실 헤세의 삶과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독일의 교육시스템의 발전 흐름을 봐야 한다.¹ 헤세가 비판한 교육제도를 거쳐 여러 역사적 사건을 통해 지금의 독일 교육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²

작품의 배경은 독일의 황제 빌헬름 2세 시대로 1890년부터 1918년까지이다. 당시 독일의 기술, 경제, 학문 등이 급격하게 발전하는 시기로 '영광스러운 빌헬름 제국 시대'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빌헬름 2세 시대 이전부터 독일의 교육은 선구적인 제도로 평가받았지만, 이 시기 실상은 지배계급의 요구를 반영한 신민 교육적 특성이 강했다. 당시 자녀는 부모의 명예 충족 대상으로 여겨졌고, 좋은 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로 삼아지는 사회 분위기 또한 한 몫을 하며 반교육적이고 억압적인 교육이 자행되었다. 실제로 학생들의 자살률이 가장 높던 시기이다.

당시의 교육 시대상은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에서도 노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고 단지 당시 교육의 실상을 잘 보여준다고 해서 지금까지도 읽어야 할 도서로 꼽힌 것이 아니다. 1906년에 쓰여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여러가지를 뽑을 수 있겠지만 크게 3가지가 있다.

첫째, 소설이기는 하지만 작가의 자서전 성격도 가지는 특징을 보여주는 인물 간 대조적 모습이 독자들로 하여금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작가는 한스와 하일러의 대조적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를 드러내는데, 공부라는 수레바퀴 속에서 살아온 한스와 그러한 현실에 정면으로 저항하는 하일러의 모습은 매우 대조적이면서 동시에 둘도 없는 친구라는 설정으로 이를 더욱 효과적으로 표현하였다. 심지어 서로에게 에로적인 애정의 모습도 보여주면서 이 두 인물의 각별한 사이를 더욱 부각시켰다. 헤세는 이 두 인물로 교육 현실을 비판함과 동시에 자신이 걸어온 삶을 보여주고자 했다. 공부의 굴레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결국에는 공장에 취직하고, 목숨을 잃게 되는 한스의 삶은 작가가 되기 전까지 자살까지 시도하는 헤세의 절망적인 모습을 나타낸다. 반면 신학교에서 탈출하여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하일러의 모습은 헤세가 신학교에서 자살 시도까지 하고, 탈출하여 마지막에는 작가가 된 삶을 나타낸다. 이 두 인물의 다른 결말을 통해 자신의 삶을 보여주면서 작가의 생각을 더욱 생동감 있게 전달한 것이다.

그 다음으로, 사춘기에 겪을 수 있는 청소년의 감정을 매우 현실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헤세는 한스의 삶을 통해서 교육 제도를 비판함과 동시에 그 교육제도가 주는 달콤한 측면 또한 보여준다. 한스는 자신이 원했던 삶과는 다른 삶을 추구하지만 학문의 성취가 주는 남들보다 앞서 간다는 그 기분에서 쾌감을 느끼곤 했다. 어떻게 보면 일종의 '마약'과 같은 효과를 보인 것이다. 남들보다 앞서 간다는 그 기분은 당사자에게 쾌감을 주었고, 그와 동시에 남들보다 뒤쳐지면 안된다는 불안감을 주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한스는 그 달콤함에 몰입했다. 만일 헤세가 단지 교육 제도 아래에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일반적인 소설과 다름없는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즉, 헤세는 한스가 괴로워하면서도 동시에 빠져나오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사춘기 학생들의 감정을 굉장히 사실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가 단지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여전히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읽는 이들로 하여금 옛날 이야기가 아닌 현재의 일을 보고 있는 생동감을 준다. 헤세의 작품을 보면 우리나라 교육 현실의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주입식 교육, 높은 청소년 자살률, 과도한 입시 열풍, 자녀의 입시 성공에 대한 부모님의 열망 등 대한민국의 교육 상황과 작 중 한스의 상황은 매우 유사하다. 작품 속 청소년들의 고민과 현재 청소년들의 고민이 유사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이야기에 공감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가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으며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책은 단지 "주입식 교육은 나쁘다"라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일까? 물론 그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헤세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입식 교육, 경쟁적인 교육 방식 등 일차원적인 문제가 아닌, 왜 한스가 불행해질 수 밖에 없었는지 그 본질적인 이유를 봐야 한다. 한스는 단지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는 점차 한스의 삶을 옥죄어 갔을 뿐이었다. 즉, 중요한 것은 주변의 시선과 기대, 권유가 아닌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것을 알고 그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는 이에 대해 많은 반론들이 있다. 예를 들면, "원하는 것을 아직 잘 모르는 청소년은 공부라도 열심히 해야 한다." 또는 "좋은 대학교 가서 원하는 것을 찾아도 늦지 않다." 등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청소년의 시기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욕심을 투영한 결과라 생각한다. 청소년의 시기는 무작정 달려야 하는 시기가 아니다. 쉼이 필요한 시기이며, 달리기 위한 준비의 시간이다. 다양한 경험이 필요한 시간인 것이다. 이러한 시기에 방향을 정하지 못했다고 해서 우선 부모가 정해준 방향으로 달리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부모의 역할은 자녀가 어디로 나아갈 지 둘러보게끔 지지해주는 것이다. 그 결과가 본래 부모가 이야기하던 방향으로 달리는 것일지라도 그 차이는 크다. 자녀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경험에는 시기가 있다. 해당 시기에만 느낄 수 있는 감정과 경험이 있는 것이다. 본인이 원하지도 않는 또는 잘 알지도 못하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해서는 안된다(물론 당연히 꿈꾸는 미래를 위해 포기해야 할 현재는 있다.).

이 실상의 본질적인 문제는 결국 '비교'에 있다. 타인과 비교를 하며 자신의 방향이 잘못되었는지 보고, 자신이 느린 건 아닌지 불안해 한다. 부모들의 열성적인 교육열의 원인은 여기에 있다. 자녀를 자신을 나타내는 하나의 수단으로 본다. 그렇기 때문에 남과 비교하면서 자녀가 뒤쳐지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동일시하며 자신이 뒤쳐지는 것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자라난 자녀는 또 다시 비교의 굴레 속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끝없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 책의 제목 그대로이다. 수레바퀴 아래서 우리의 삶은 불행할 수 밖에 없다.

[참고자료]
1. '유럽의 교육제도: 영국, 프랑스, 독일의 교육제도를 중심으로', 김윤삼(2008)


¹ 현재 대한민국에서 교육 문제 등으로 가장 비교하는 나라 중 하나가 바로 독일이다. 독일 교육 제도는 철저한 공교육 제도로 연방과 주가 협력하여 모든 국민이 능력과 적성에 따라 교육받는 것을 추구한다. 우리나라의 학력 위주 교육과는 달리 능력과 자격 위주의 교육체제로 국민들은 언제나 자신의 의지와 사회적 수요에 맞게 다양한 연계 교육을 받을 수 있다. 또한 기저에 깔려 있는 독일의 교육 철학 또한 경쟁 중심적이 아닌, 협동 중심으로 다 같이 함께하는 깊이 있는 사고를 추구한다. 이러한 교육 시스템으로 현재 독일은 대표적인 교육 선진국으로 뽑히며, 많은 국가들이 독일의 교육 모델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² 교육 시스템에 큰 변화를 준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이다. '아돌프 히틀러'는 1889년에 태어나 헤세와 비슷한 교육 환경에서 자랐다(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전쟁을 지지한 대다수의 지식인들과는 달리, 헤세는 맹렬히 비판하였고, 결국 헤세의 책 발간, 판매 등이 금지되기도 했다.). 히틀러는 제국의 수상이 된 후, 전체주의 관점에 입각한 교육을 실시하였고, 편협한 애국심과 민족의식 함양을 목적으로 주입식 교육을 실시하였다. 전쟁에서 독일이 패망하고, 히틀러의 악행이 드러나면서, 국민들은 '유대인 학살 국가', '세계 전범' 등 역사적으로 씻을 수 없는 책임을 지게 되었다. 이에 대한 큰 충격은 독일 전 국민의 반성적 고찰을 일으켰고, 이전과는 다른 교육 철학을 세우는 계기가 되었다. 그 결과 지금의 독일 교육 제도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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