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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소크라테스가 어떤 사람인지 분명히 알 수 있는 책이다.

비록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이 썼기 때문에 미화된 부분이 있을 수 모르나, 그가 추구하던 인생의 철학을 그대로 재현한 책이라 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의 전성기를 가져온 인물로 그의 영향력은 지금도 여전히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한 번쯤은 꼭 읽으라고 추천을 하고 싶다.

소크라테스의 모습에서 가장 존경스러운 점은 죽음 앞에서도 그는 철학자로서의 신념을 저버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항상 자기반성을 통해 더욱 발전할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죽음보다 불의를 피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하는 소크라테스.

그는 참된 철학자라면 죽음을 항상 연습하므로 죽음을 가장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죽음은 다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면서 그의 철학의 화룡정점으로 꼽힌다. 실제로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대한 일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그의 철학에 대해 더욱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평소 자신의 철학을 전파하여 세상을 행복하게 하겠다는 그의 목표는 죽음으로 말미암아 완성된 것이다.

나는 철학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겠지만, 한 사람으로서 그가 신념을 지키는 모습은 존경스럽다 못해 경이롭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고
- 크리톤·파이돈·향연 -

기원전 5세기경에 활동한 고대 그리스의 대표 철학자 중 한 명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의 전성기를 가져온 인물 중 하나로 고대 그리스의 철학을 소크라테스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을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매우 컸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가 직접 남긴 저작이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의 고유한 철학과 사상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이 남긴 기록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알아갈 뿐이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플라톤이 저술한 책으로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의 하나이다. ¹ 소크라테스가 법정에서 변론하는 모습을 재현한 내용으로 최초의 변론, 유죄 선고 후의 변론, 사형 선고 후의 변론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이 대화가 가장 높게 평가받는 것 중 하나는 플라톤이 창작한 부분이 다른 작품에 비해 가장 최소화되었다는 점이다. 소크라테스의 대화편은 각각 짧게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크리톤, 파이돈, 향연 등과 묶어서 한 번에 책이 나온다.

책의 배경은 BC 399년 소크라테스는 국가의 신들을 믿지 않고, 청년들에게 악영향을 끼쳤다는 이유로 '멜레토스'에 의해 고발을 당하고, 이에 대해 당당하게 변론을 펼치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변명'에서는 고발자 멜레토스의 주장에 대해 하나하나 반론을 말한다. 우선 두 부류의 고발자를 나누고, 이들에 주장에 대해 각각 반론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게 된 델포이의 신탁 사건을 말하며, 자신의 소신인 '무지의 자각'에 대해 이야기한다. 반론을 하는 상황에서도 질문을 던지는 대화법을 통해 상대의 논리의 허점을 지적하고, 상대가 스스로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자 하였다.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소신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은 그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적인 문제로 고발당한 상황이기 때문에 만일 소크라테스가 법정에서 목숨을 구걸했다면, 그는 분명 살아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목숨을 구걸하지도, 무죄를 판결해달라고 간청하지 않는다.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항상 그 행동이 옳은가, 옳지 않은가를 고민하여 행동했다.

"나의 친구여, 죽음의 회피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불의를 피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부정은 죽음보다도 빨리 달리기 때문입니다."
p50, 2차 투표 이후 사형 선고가 결정된 상황


'크리톤'은 재판이 이루어지고 한 달 뒤 감옥에서 소크라테스와 그의 절친한 친구 크리톤이 나누는 대화 내용이다. 이 부분에서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에게 여러 가지 이유를 들며, 탈옥을 권한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질문을 던지며, 크리톤이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고, 탈옥을 거절한다. 이 부분에서는 소크라테스가 얼마나 삶의 태도와 철학적 정신이 일치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는 단지 사는 것이 아니라 잘 사는 것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여러 철학적 의의도 엿볼 수 있는데, 우선 책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소크라테스의 이성적인 분별법이다. 소크라테스는 크리톤의 탈옥 권유를 단번에 거절하지 않는다. 다만, 대화를 통해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고 그 결과대로 행하자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크리톤과 대화를 나누며, 논리적으로 무엇이 가장 옳은지 판단을 내린다. 이는 쉽사리 본인의 삶의 방향과 생각을 쉽사리 바꾸는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말 그대로 소크라테스는 그의 철학인 '무지의 자각'을 몸소 실천하고 있었다. 알지 못하는 것을 인정하고 질문을 던지며 항상 이성적 자기 검열을 행한다.

그다음으로 '다수의 판단이 옳은가?', '전문가의 판단이 옳은가?'에 대한 논쟁도 볼 수 있다(이 부분은 내가 임의로 명명한 내용으로, 어긋난 내용일 수 있다.). 크리톤은 다수의 평판과 생각에 대해 말하며, 소크라테스의 탈옥을 주장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이에 대해 모든 판단을 존중해야 하는 것이 아닌 분별 있는 자들이 내리는 좋은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사실 단지 전문가의 의견이 무조건 옳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그는 무지의 자각을 상당히 중요시한다.). 많은 사람이 지지하든 그렇지 않든 오직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검열을 통해 나온 결정만이 옳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소크라테스의 국가주의관도 볼 수 있다. 아마 이 부분 때문에 실제로 그가 이야기하지 않은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이 변질되어 나온 것으로 생각된다. 당시 시대상과는 다르게 소크라테스는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계약 관계로 보았다. 다른 국가로 떠나지 않고 머물기로 결정했다면, 이는 개인의 자발적인 행동이며 계약이므로 국가의 법과 관습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특히나 많은 논란이 된 부분으로 국가에 대한 무조건 적인 충성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 부분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소크라테스의 본질은 '악행'에 대한 방관자적 행태 또한 옳지 못한 행동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직접적인 피해가 없을 때는 국가에 대한 어떤 반대나, 변화의 시도조차 없다가 이후 직접적으로 본인에 대한 피해가 왔을 때 부당하다고 느끼고 따르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 것이다.

즉, 소크라테스는 옳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바로 행동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² 그러므로 그는 사형 선고가 내려졌더라도 이를 부정하고 도망치는 것은 옳지 못한 것으로 보았다. ³

"그러니 우리는 내가 자네가 말하는 대로 할지 하지 않을지 수고해봐야 하네. 왜냐하면 나는 반성을 통해서 내게 가장 좋은 것으로 믿어지는 이유가 있을 때만
그 이유에 따라서 행동하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이고, 과거에도 항상 그렇게 해왔네. 그리고 지금 내게 이러한 기회가 닥쳤다고 해서 내 말을 번복할 수는 없네."
p64, 소크라테스와 크라톤의 논쟁이 시작되기 직전


'파이돈'은 소크라테스가 간접적으로 나오는 대화편이다. 파이돈과 에케크라테스가 이야기를 나누며,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임종에 대해 파이돈이 이야기해주는 대화이다. 이 대화는 '영혼에 대하여'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 만큼 영혼에 대한 증명, 죽음의 의미에 대해 말하고, 마지막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부분이다(단, 이 부분에 나온 대로 실제로 소크라테스가 그렇게 행동한지는 알 수 없다. 소크라테스 사후 14~15년 이후에 쓰여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절대 두려워 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육체는 영혼의 진리에 도달하는데 방해가 되는 요소로 보기 때문이다. 죽음은 단지 영혼이 순수한 본질의 세계로 돌아가는 절차라고 보고 있다(이 부분은 플라톤의 이데아적 사상과 유사하다). 어쩌면 자살 등을 옹호하는 부분으로 볼 수 있으나, 소크라테스는 이를 신과 인간의 관계를 주인과 노예 관계에 비유하며 해악으로 규정한다.

"그러니 심미아스, 참된 철학자들은 항상 죽음을 연습하고 있으며, 따라서 죽음을 가장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야."
p101, 소크라테스가 죽음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 대화 부분에 가장 큰 의의는 소크라테스의 임종 순간에 대해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죽음에 초연한 소크라테스 답게 평소와 똑같은 모습을 보이는 소크라테스에게 친구들은 모두 놀랜다. 자신이 죽은 이후 자신의 몸을 닦을 여인들을 걱정하며 독약을 먹기 직전에 목욕을 하러 가기도 한다. 그리고 목욕 이후 그는 독약을 마신다. 독약을 마시는 것을 보고 그의 친구들은 울음을 터뜨리는데, 그는 이에 대해 질책하고 간수가 이야기한대로 이리저리 걸어 다니다가 힘이 없어지는 것을 느끼고는 자리에 눕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크리톤, 나는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네. 기억해두었다가 빚을 갚아주겠나?"
p193,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말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말에 대해서는 3가지 추측이 있다.

1.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헌납하라는 것.
2. 실제로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빚을 졌다는 것
3. 단지 농담

이렇게 3가지 추측이 있지만, 어느 것이든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마지막 말이었다.

이후의 '향연'은 사랑에 대한 다양한 사상과 찬사가 드러나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전에 언급한 작품들과는 내용이 조금 별개라고 생각하면 된다.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의문이지만, 집에서 있었던 향연에서 각자 돌아가며 에로스에 대해 말하는 것을 정리한 내용이다. 그리고 이러한 각자의 연설은 소크라테스에 의해 부분적으로 교정되고 바뀐다. 마지막에는 '알키비아데스'(아테네 명문 출신, 소크라테스의 제자였으나 탈락되었음)가 소크라테스를 찬양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 대화편에 가장 큰 의의는 소크라테스의 인간적인 면모를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동성애적 부분의 내용도 언급이 되지만(당시 시대에서는 허용이 되었고, 실제 그러한 문화가 있었다.), 대부분이 인간적인 사랑의 관념보다는 이데아적 관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이렇게 끝이 난다.

이 책을 통해 나타난 소크라테스의 삶에서 가장 눈 여겨 보아야 할 부분은 다른 무엇도 아닌 바로 '행동'이다. 그의 삶은 지행일치의 삶, 그 자체였다. 그는 선이 무엇인지 알고자 노력하였고, 이를 알게 된 후에는 몸에 익혀 실천하고자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죽음은 그의 철학의 완성을 볼 수 있는 화룡정점이다. 이 점에서 어쩌면 그가 마신 독배는 정말로 축배인지 모르겠다. 이 죽음의 일화로 그의 철학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그와 같이 살고자 하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평소 이러한 철학을 전파하여 세상을 조금 더 행복하게 하고자 했던 그의 목표가 그의 죽음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삶이 오늘날 더욱 우리에게 와 닿는 이유는 사상은 단지 사상일 뿐이이지만 소크라테스는 이를 행동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행동으로 항상 보여주는 삶의 자세만큼은 우리는 꼭 배워야 한다. 무엇이 옳은 지 탐구하는 자세 그리고 옳다고 판단을 내리면 행동하는 용기와 의지, 항상 자신을 되돌아보고 매사에 질문을 던지는 자세 등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자세이다.

그 다음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부분은 바로 그의 신앙적인 모습이다. 그의 신앙은 우리가 생각하는 신앙과는 조금 다르다. 그는 단순히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신을 믿었다고 하기 보다는 일종의 철학적인 신앙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가 믿는 신은 그가 살고자 했던, 그리고 생각해 왔던 이상적인 사상이다. 실제로 소크라테스는 델포이의 신탁이 그가 살고자 하는 '무지의 자각'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그가 신의 존재를 정말 믿음과 동시에 그의 철학과 동일시했다고 생각한다. 그의 행동과 의지 등은 그러한 부분으로 밖에 설명될 수 없으며, 실제로 그러한 말을 종종 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단순히 그의 생각이 아니라 말 그대로 '신'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것을 꼭 지키려고 노력을 했다.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각기 자기의 길을 갑시다. 나는 죽기 위해서, 여러분은 살기 위해서. 어느 쪽이 더 좋은지는 오직 신만이 알 뿐입니다."
p56, 법정에서의 마지막 소크라테스 말


그러므로 나는 법정에서 그의 마지막 말은 끝까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지키는 소크라테스의 신앙이자 철학이라 생각한다.


¹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대표 제자 중 한 명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플라톤이 남긴 저작 대부분은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플라톤의 대화편'이라고 잘 알려져 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총 30여 편으로 이루어진 대화편의 초기작이다.

²예로 들자면 국가가 만든 악법에 대해 무조건 따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악법이 만들어졌다면, 시민들은 이에 대해 국가에 따지고 행동해야 할 권리와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악법이 만들어진 이후에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채 방관하다가 본인에게 피해가 왔을 때 따르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³ 이 부분에서 소크라테스의 개인 사상이(행동의 결과가 아닌 행동 자체의 옳고 그름을 보는) 이러한 국가관에까지 연결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재판 방식 등 프로세스적 측면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러한 재판 방식이나 프로세스가 가져올 결과는 또 다른 문제이다. 즉, 어떻게 보면 소크라테스에게 선고된 재판 결과는 옳지 못하다. 그러나 그 재판 방식은 옳지 않은 것이 아니므로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과를 보고 옳지 않기 때문에 따르지 않는다는 사고는 상당히 자기중심적이며 편향적인 사고이다. 대체 옳다는 것은 누가 결정하는가? 자칫 무정부주의 사고를 가져올 수 있는 문제이다. 프로세스, 제도 등이 옳다면 따라야 한다. 설사 그 결과가 최악일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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