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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지속적이고 질적인 성장의 열쇠, 역량주의

 

최근 역량주의가 조직 인사관리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역량주의란 직원이 업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데 필요한 특정 기술, 행동, 특성에 초점을 맞춘 조직관리 접근 방식이다. 결과를 강조하는 성과주의와는 달리 역량주의는 그러한 결과를 제공하는 데 필요한 요소에 대해 집중한다. 그런데 왜 지금 역량주의가 핵심이 되고 있을까? 오늘날 비즈니스 환경에서 역량이 중요한 이유가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역량이 중요한 이유

 

오늘날 비즈니스 환경에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변화가 끊임없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역동적이고, 경쟁이 치열한 환경, 그리고 무엇보다 빠르게 변화하는 점으로 인해 역량이 주목받고 있다. 전쟁 기술이 매우 빠르게 변하는 전쟁터를 상상해보자. 칼로 싸우는 전쟁터에서 칼을 매우 잘 쓰는 직원은 많은 성과를 내고 인정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회사는 칼을 잘 쓰는 직원들을 우대할 것이다. 하지만 하룻밤 사이에 칼이 총으로 대체되면 어떻게 될까? 더 이상 칼을 잘 쓰는 직원들은 성과를 내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총을 잘 쏘기 위해 노력을 할 것이다. 한 때 최고의 성과를 보이던 직원들이 한 순간에 따라잡는데 급급하게 된 것이다.

 

극단적인 예를 들었지만, 이것이 바로 성과주의의 한계를 보여준다. 민첩하고 적응력이 뛰어나며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배우는 직원들이 이러한 환경에서 더욱 인정을 받는다. 과거의 성과를 보상하는데 초첨을 맞추는 성과주의는 직원이 미래 알 수 없는 환경에서도 성공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간과한다. 앞으로 비즈니스 환경은 현재 일을 단순히 잘하는 것보다 시대에 맞춰 능력을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 더욱 중요해진 것이다.

 

성과주의의 단점

 

성과주의는 본질적으로 과거 지표에 크게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성과라는 것은 결과이기 때문에 과거 지표일 수 밖에 없다. 반면 앞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미래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과거 지표에만 의존할 수 없다. 미리 앞서 생각하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적으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직원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결과를 만든 직원보다 어떤 상황에서도 기여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 직원들이 더 중요한 것이다. 즉, 성과를 계속해서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은 직원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성과주의는 그 결과만 알 뿐, 그 과정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다. 극단적인 예를 들면, 두 명의 직원 A와 B가 둘 다 10만원을 받았다고 가정해보자. A직원은 20억원을 벌고, B직원은 고작 20만원을 벌었다면, 성과주의는 A 직원을 더 높게 평가할 것이다. 하지만 만일 B직원은 비즈니스 전략을 통해 수입을 2배로 늘렸고, A직원은 복권에 당첨되어 돈을 벌었다면 어떨까? 직원 B의 역량은 장기적으로 훨씬 회사에 더 가치 있지만, 성과주의에서는 이 점을 간과한다.

 

실제로 직원이 통제할 수 없는 많은 요소가 성과에 영향을 미친다. 확률적인 우연, 외부 시장의 변화, 동료의 지원 등 직원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여러 요인이 작용하기에 성과만으로 직원을 평가하는 것은 상당히 불안정하다.

 

그렇다면 이제 인사관리를 할 때 역량이 중요하다고만 말하면 되는 것일까? 역량주의에 담긴 철학을 이해해야만 역량주의를 어떤 식으로 인사관리에 활용할 지 이해할 수 있다.

 

성과주의를 넘어 역량주의

 

특정 기술이 특정 성과를 가져오는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는 성과주의가 매우 의미 있었다. 그러나 현재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서는 잠재력과 적응성 등을 더 우선시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역량주의가 등장하게 된 이유가 바로 이 사실이라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순히 결과를 넘어 미래의 성공을 가능하게 하는 특성을 중요시 하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 하는 역량의 핵심 요소는 지식, 기술, 태도, 개인적 특성 등이다. 만약 역량주의가 나온 배경을 제대로 이해했고, 역량주의에 담긴 철학을 인지했다면 이 요소에서도 우리는 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다.

 

중요한 역량

 

사실 지식과 기술 같은 역량의 중요성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줄어들 수 밖에 없다. 한 때 매우 높은 가치를 지닌 지식은 점차 쓸모없게 되기도 하고, 지식 습득 기술의 발전에 따라 진입장벽이 매우 낮아지기도 한다. 기술도 예를 들면 차량을 수동으로 조작하는 것은 한 때 필요한 기술이었지만, 이제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다. 심지어 자율주행차도 등장하고 있다.

 

반면 태도와 개인적 특성은 가르치거나 함양하기가 어려운 역량이면서도 어떠한 상황에서도 중요하게 작용하는 역량이다. 직원의 학습의지, 회복탄력성, 협업역량 등은 환경이 변하더라도 계속해서 중요한 역량으로 꼽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역량은 회사에 입사하기 전에 고착화되기 때문에 이 부분을 인사관리에서 배양하기가 어렵다.

 

역량주의를 이해한 인사관리 방향

 

따라서 역량주의에 담긴 인사철학을 이해했다면, 태도, 개인적 특성과 같은 역량은 채용 과정에서 파악하는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회사에서 배양하기 매우 어려운 역량이기 때문이다. 반면 지식, 기술과 같은 역량은 주기적으로 측정하고 평가하면서 직원들의 역량 수준을 파악하고, 기르도록 해야 한다.

 

물론 몇몇 역량 요소는 드러나지 않기에 이를 측정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사실도 생각해야 한다. 성과, 지식, 기술 등이 회사에서 활용하기 좋은 이유는 바로 정확한 수준을 측정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요소들이 태도와 개인적 특성에 따라 영향을 받는 요소이기에 태도와 개인적 특성을 간접적으로 측정하는데 좋은 지표인 부분도 있다. 

 

결론

 

성과주의가 사라지고 역량주의가 나오게 된 배경, 그리고 역량주의에 담긴 인사철학 등을 이해하고 고민해서 역량주의를 실행한다면 제대로 된 역량주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역량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기업만이 다른 기업보다 앞서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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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린'이란 용의 목에 거꾸로 난 비늘을 의미한다.
즉, 군주가 노여워하는 군주만의 약점 또는 노여움 자체를 의미한다.

 

인사담당자로 근무하면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감정'이다.

 

감정이 들어간 의사결정은 결국 비합리적인 면을 보일 수 밖에 없고, 이로 인해 HR은 '공정성'과 '형평성'에 대한 공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사람을 관리하고 지원하는 업무에 있어 감정이 순전히 배제될 수 있을까?

 

최근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바로 한 상사 분과의 식사 자리에서이다. 나는 한 회사의 CEO라면, 능력이 좋은 임원은 어떻게 해서든 함께 일하고 싶어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상사 분의 말은 달랐다. CEO도 결국 사람이기에 본인의 역린을 건드린 사람과는 절대 함께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 결정은 지극히 당연하고 이상한 것이 아니라 했다.

 

나는 이전에 CEO의 의사결정에는 '감정'은 절대 있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다만 이 이야기를 듣고 나서 이해가 갔고, 역린과 관련된 것은 단순히 감정적인 의사결정이라 치부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어느 누구에게나 역린은 있다.

 

인사담당자로 일을 하며, 누군가의 역린을 알게 될수도 있고 누군가가 역린을 건드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또는 역린을 건드려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분명히 기억해야 할 점은 역린은 그 어떤 논리적인 근거도 뒤집을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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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미루다 드디어 정의란 무엇인가 독후감을 마무리한다.

 

이전 글들에서는 정의에 대한 개념을 다각적으로 탐구하고, 그에 따라 다양한 철학저 관점을 분석했다. 정의에 대한 역사적 이해부터 현대 사회에서의 실제 적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아이디어를 분석함으로써 정의가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했다.

 

마지막 글은 이를 모두 끝내고 나서 느낀 성찰이라고 보면 된다.

 

https://hrdongdong.tistory.com/71

 

[독후감#18] 정의란 무엇인가 (1/3) - 공리주의와 자유 지상주의 / 마이클 샌델 지음

유명한 책이고, 읽은 지 오래된 책인데 최근에 다시 읽고 정리해 보았다. 과연 정의란 무엇일까? 오랜 기간 지속된 화두에 대해 핵심적인 부분을 잘 정리하고, 본인의 생각을 잘 서술한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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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hrdongdong.tistory.com/72

 

[독후감#18] 정의란 무엇인가 (2/3) - 공동체주의와 공동선 / 마이클 샌델 지음

정의란 무엇인지 고민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책 제목 그대로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본인만의 생각을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만들어 가면 좋다. https://hrdongdong.tistory.com/71 [독후감#18]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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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고

- Justice -

 

(3) 이상적 정의와 사고과정

 

고정된 정의를 넘어

 

책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핵심 메시지 중 하나는 정의가 하나의 엄격하고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정의로 고정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정의를 정의하려는 모든 시도 자체는 불가항력적으로 사회정치적 맥락에 묶여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의를 추구하는 것은 그 정답에 도달하는 것 만큼이나 이를 이해하고 질문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이 책에서도 동일하게 정의 그 자체보다 이를 추구하는 과정이 더 큰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사실 이 생각은 불변의 진리를 찾는 또는 여태까지 정의의 개념을 고정시키려는 노력과는 정반대되기 때문에 불편하게 느껴지고, 효용성 자체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을 수 있다. 그러나 정의란 무엇인가를 보면서도 알 수 있었지만, 많은 정의의 원칙들이 도덕적 딜레마의 미묘한 차이를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오히려 정의의 원칙 등을 고정하는 경우, 우리는 수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역동력, 잠재력 등을 제한하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이상적인 정의는 어딘가 고정되어 있는 종점이 아니라 끊임없이 발전하는 과정의 일부로 봐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모두가 쌓아가는 경험과 지식에 따라 끊임없이 재검토되고, 수정되고, 질문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우리 모두는 조금 더 정의로운 사람에 다가갈 수 있다.

 

"우리의 지식은 유한하지만, 이에 비해 우리의 무지는 무한하다."
(“Our knowledge can only be finite, while our ignorance must necessarily be infinite.”)
- Karl Popper -

 

칼 포퍼의 말처럼 우리의 지식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우리가 도달했다고 믿는 정의조차 필연적으로 불완전할 수 밖에 없다. 

 

법에 대해 생각해보자. 법률과 어떠한 규정, 원칙 등은 특정 시점에서 다수가 느끼는 정의를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회가 변화하고, 새로운 문제가 발전함에 따라 어느덧 법은 더 이상 정의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정의는 항상 진화한다.

 

즉, 이상적인 정의는 현재의 사실이나 현실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절대 도달할 수 없지만 동시에 이 사실이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정의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하게끔 만든다. 대부분은 '1+1=2'라는 사실에 대해 그 원리와 이유, 역사 등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는다. 규명된 것은 우리의 사고를 때로는 멈추게 만든다.

 

 

끊임없는 사고과정

 

정의를 찾고, 이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결국 끊임없는 사고과정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사색에 빠져 생각만 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단순히 어떠한 정의의 원칙을 세우거나 또는 법을 집행하거나 아니면 누가 옳고 그른지 판단해 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정의를 찾아나가는 그 일련의 모든 과정을 의미한다. 

 

항상 자신에게 "정의란 무엇인가"를 질문해야 하고, 타인에게도 이러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정의로운 사람, 정의로운 사회를 원한다면 이는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우리에게 지속적인 책임을 주고 있는 것이다.

 

끊임없이 사고하고 또 행동하라, 그래야만 정의로울 수 있다.

 

실제로 사고하지 않는 경우에 생길 수 있는 최악의 사건을 우리는 알고 있다. 질문을 멈추는 순간 불의는 어느덧 눈에 띄지 않게 스며들고, 이는 최악의 사건으로 이어질 수 있다.

 

https://hrdongdong.tistory.com/32

 

[독후감#11]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한나 아렌트

[서평] 방송에서도 소개된 책으로 유대인 학살의 주요 인물 중 한명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을 보고 쓰여진 책이다. 한나 아렌트의 책 중 가장 대중적인 책으로 다소 읽기에는 지루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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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이 책을 읽고 나서 정의를 그저 상황에 따라 바뀌는 시시콜콜한 개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정의를 탐구하는 과정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모든 이들은 상황 속에서 항상 정의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이 책은 그 사고 과정을 시작하는데 가장 좋은 책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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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지 고민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책 제목 그대로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본인만의 생각을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만들어 가면 좋다.

 

https://hrdongdong.tistory.com/71

 

[독후감#18] 정의란 무엇인가 (1/3) - 공리주의와 자유 지상주의 / 마이클 샌델 지음

유명한 책이고, 읽은 지 오래된 책인데 최근에 다시 읽고 정리해 보았다. 과연 정의란 무엇일까? 오랜 기간 지속된 화두에 대해 핵심적인 부분을 잘 정리하고, 본인의 생각을 잘 서술한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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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고

- Justice -

 

(2) 공동체주의와 공동선

 

세 번째 정의 : 공동체 주의

 

공리주의, 자유 지상주의 그리고 세 번째는 바로 공동체주의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마이클 샌델이 주장하는 정의에 가장 가까운 것이 바로 이 정의이다. 기본적으로 앞서 언급된 자유 지상주의에서 주장하는 자유에 대해 개인은 공동체와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자유 지상주의가 정의가 될 수 없다 말한다(엄연히 집단주의와는 다르니 주의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미덕과 공동체주의를 주장한 아리스토텔레스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대표적인 개념은 바로 목적론이다.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정의라는 것이다.

 

당신은 플루트를 비싼 값에 팔수도 있고, 아니면 세계 제일의 연주자에 선물할 수도 있다. 과연 누구에 팔 것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연주자에게 선물해야 한다고 말한다. 플루트의 목적은 바로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계 제일의 연주자에게 선물하는 것이 가장 옳다. 연주자에게 선물한다면 본연의 목적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푸는 다시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어요. "그리고 저기 꿀벌이 있는 이유는 '내가' 알기로 딱 하나, 꿀을 만들기 위해서야." 그러더니 푸는 일어나서 말했어요. "그리고 꿀을 만드는 이유는 '내가' 알기로 딱 하나, '나더러' 그걸 먹으라는 이야기지." 푸는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가기 시작했어요.

 

푸 입장에서 보자면 그의 행동은 옳다. 하지만 꿀벌의 입장에선 어떨까? 푸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를 수 있다. 푸와 꿀벌 모두가 만족할 만한 '정의'가 있을까? 정확한 답을 알 수는 없지만, '정의'를 찾기 위해서는 푸와 꿀벌 모두의 의견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사실 정의로운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미덕이 필요하고, 미덕을 가진 개개인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미덕을 가진 개개인이 판단력을 기르고, 공동선을 고민하며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 정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 말한다. 

 

미덕을 가진 모두가 참여해서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정의'인 것이다. 

 

 

마이클 샌델이 말하는 정의

 

마이클 샌델도 공동체주의를 '정의'라 말하고 있다(책에서는 명시적으로 말하고 있지 않다. 다만, 글의 흐름으로 보아 그렇게 보여진다. 마이클 샌델은 '공동선'이라 표현했다.). 도덕적인 가치, 담론 등을 토대로 서로 이야기하며,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의 내용 구성 자체가 공동선을 형성해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공리주의, 자유 지상주의, 목적론 등 다양한 정의의 관점을 보여준다. 그리고 독자로 하여금 자신만의 '정의'를 고민하게끔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신만의 '정의'를 고민한 개개인이 함께 모여 '공동선'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좋은 삶의 의미를 함께 고민하고 그 과정에서 생길 수 밖에 없는 이견을 서로 기꺼이 수용한다면, 사회는 정의로운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책의 제목은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이지만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정확하게 이야기 하지 않는다. '공동선'의 개념을 듣게 되더라도 사실 정의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와닿지 않는다. 그것이 당연한 것이고, 샌델 또한 이를 의도했다.

 

마이클 샌델이 말하는 정의는 결과 또는 어떠한 사실 등 고정된 것에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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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책이고, 읽은 지 오래된 책인데 최근에 다시 읽고 정리해 보았다. 과연 정의란 무엇일까? 오랜 기간 지속된 화두에 대해 핵심적인 부분을 잘 정리하고, 본인의 생각을 잘 서술한 책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고
- Justice - 
 
(1) 공리주의와 자유 지상주의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란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옳은 행동은 정의이고, 옳지 못한 행동은 정의롭지 못한 행동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정의가 과연 단순히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문제일까? 이 질문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보면, 사실 쉽게 대답할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의를 위해 살아간다. 다만 각자의 정의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서로 갈등이 생기고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여전히 이와 관련된 논쟁이 있다. 마이클 샌델이 쓴 '정의란 무엇인가'도 동일한 고민을 담고 있다. 여러 딜레마와 함께 '공리주의', '자유 지상주의', '공동체주의' 3가지 개념을 비교하며 정의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과연 정의를 찾을 수 있을까? 이 질문이 이 책을 읽으며 계속 생각났다.
 
블로그 글을 적으며, 두 가지 글귀가 떠올랐다. 돈키호테의 명언과 만화 원피스의 돈키호테의 말이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유토피아도, 광기도 아닌 정의일세."
(Cambiar el mundo, no es ni utopía ni locura, es justicia.)
-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중 -

 

"해적이 악, 해군이 정의? 그런 것 따윈 얼마든지 뒤엎어져 왔다.
평화를 모르는 아이들과 전쟁을 모르는 아이들의 가치관은 달라
정점에 서는 자가 선악을 뒤짚는다. 지금 이 장소야 말로 중립이다.
정의는 이긴다고? 그거야 그렇겠지!
승자만이 정의다!"
- 만화 원피스 556화 중(해군과 해적 간 대규모 전투 상황)

 
 
첫 번째 정의 : 공리주의

책에서 말하는 정의의 첫 번째 개념은 바로 '공리주의'이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가장 선하다는 이 개념은 언뜻 가장 합리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가장 많은 사람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이 곧 '정의'라는 것이다.
 
하지만 '테러리스트 고문' 문제를 생각하면 정의롭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면, 테러리스트가 숨겨논 폭탄을 찾기 위해 테러리스트의 딸을 고문해야 한다고 가정해보자. 과연 우리는 다수의 시민의 안전을 위해 아무런 죄가 없는 테러리스트의 딸을 고문하는 것이 정의롭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공리주의 관점에서는 당연한 행동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쉽사리 이르 정의롭다고 말할 수 없다.
 
또한 공리주의에 빠질 경우, 자칫 개인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이면에는 곧 소수의 피해가 있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과연 행복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을까? 공리주의가 '정의'에 가장 적합한 개념일 지라도 이를 어떻게 활용하는지는 다른 문제이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어떻게 측정할 것이며, 그리고 밀의 주장처럼 행복의 질도 구분할 것인지도 고민을 해야 한다.
 
 
두 번째 정의 : 자유 지상주의
 
그 다음은 '자유 지상주의'로 개인의 자유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는 것이다. 즉, 정의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그 안에서 칸트의 정언명령, 존 롤스의 정의론 등 각각의 차이가 있지만 결과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가장 중요시 여긴다는 점에선 동일하다.

 

자유 지상주의는 개인의 자유라는 미명 하에 용인할 수 없는 행위들이 이어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예를 들면, 대리모 계약을 통해 아이를 얻는 행위는 서로 원하는 것이지만 그 행위가 정의롭다고 말하긴 쉽지 않다. 왜냐하면 과연 이것이 진짜 개인의 '자유'에 의한 것인지 의문이 들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리모 계약을 맺는 주체들은 과연 자유에 의해서 그런 판단을 하는 것일까? 부득이한 상황 등에 의해 벌어지는 상황인 만큼 온전히 자유라고 보기 어렵다. 무엇보다 자유라는 미명 하에 벌어지는 수 많은 비도덕적 행위와 불평등은 정의롭게 보이지 않는다.

 

칸트는 이에 '정언명령'이라는 개념을 추가해서 말한다. 정언명령이란 어떠한 목적, 상황, 성향 등에 영향을 받지 않는 명령으로 그 행동 자체로 바람직한 것을 의미한다. 대리모 사례는 돈이라는 요소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정언명령에 부합하다고 보기 어렵다. 그리고 정언명령의 구분법으로 보편적 법칙을 말한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행동을 한다고 가정해보면 정언명령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있는 것이다. 

 

존 롤스는 개인의 침해할 수 없는 권리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무지의 장막' 개념을 통한 가상의 계약으로 정의의 개념을 확장시킨다. 무지의 장막이란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맺어지는 계약이다. 이 상황에서는 자신이 불합리한 상황에 놓일 것을 우려하여 원칙들을 세우고 동의하게 된다. 예를 들면, '인종차별을 해서는 안된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최소한의 복지 시스템이 필요하다' 등의 원칙이 세워지게 된다.

 

 

공리주의와 자유 지상주의 두 가지 개념에 대해 알아봤지만, 정의의 개념으로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한편으론 정의의 개념에 두 가지 개념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그런지 여전히 우리 모두가 생각하는 '정의를 찾을 수 있을까'하는 의문점이 생긴다. 그렇다면 과연 마이클 샌델은 어떤 정의를 말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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