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책이고, 읽은 지 오래된 책인데 최근에 다시 읽고 정리해 보았다. 과연 정의란 무엇일까? 오랜 기간 지속된 화두에 대해 핵심적인 부분을 잘 정리하고, 본인의 생각을 잘 서술한 책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고
- Justice -
(1) 공리주의와 자유 지상주의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란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옳은 행동은 정의이고, 옳지 못한 행동은 정의롭지 못한 행동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정의가 과연 단순히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문제일까? 이 질문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보면, 사실 쉽게 대답할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의를 위해 살아간다. 다만 각자의 정의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서로 갈등이 생기고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여전히 이와 관련된 논쟁이 있다. 마이클 샌델이 쓴 '정의란 무엇인가'도 동일한 고민을 담고 있다. 여러 딜레마와 함께 '공리주의', '자유 지상주의', '공동체주의' 3가지 개념을 비교하며 정의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과연 정의를 찾을 수 있을까? 이 질문이 이 책을 읽으며 계속 생각났다.
블로그 글을 적으며, 두 가지 글귀가 떠올랐다. 돈키호테의 명언과 만화 원피스의 돈키호테의 말이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유토피아도, 광기도 아닌 정의일세."
(Cambiar el mundo, no es ni utopía ni locura, es justicia.)
-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중 -
"해적이 악, 해군이 정의? 그런 것 따윈 얼마든지 뒤엎어져 왔다.
평화를 모르는 아이들과 전쟁을 모르는 아이들의 가치관은 달라
정점에 서는 자가 선악을 뒤짚는다. 지금 이 장소야 말로 중립이다.
정의는 이긴다고? 그거야 그렇겠지!
승자만이 정의다!"
- 만화 원피스 556화 중(해군과 해적 간 대규모 전투 상황)
첫 번째 정의 : 공리주의
책에서 말하는 정의의 첫 번째 개념은 바로 '공리주의'이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가장 선하다는 이 개념은 언뜻 가장 합리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가장 많은 사람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이 곧 '정의'라는 것이다.
하지만 '테러리스트 고문' 문제를 생각하면 정의롭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면, 테러리스트가 숨겨논 폭탄을 찾기 위해 테러리스트의 딸을 고문해야 한다고 가정해보자. 과연 우리는 다수의 시민의 안전을 위해 아무런 죄가 없는 테러리스트의 딸을 고문하는 것이 정의롭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공리주의 관점에서는 당연한 행동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쉽사리 이르 정의롭다고 말할 수 없다.
또한 공리주의에 빠질 경우, 자칫 개인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이면에는 곧 소수의 피해가 있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과연 행복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을까? 공리주의가 '정의'에 가장 적합한 개념일 지라도 이를 어떻게 활용하는지는 다른 문제이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어떻게 측정할 것이며, 그리고 밀의 주장처럼 행복의 질도 구분할 것인지도 고민을 해야 한다.
두 번째 정의 : 자유 지상주의
그 다음은 '자유 지상주의'로 개인의 자유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는 것이다. 즉, 정의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그 안에서 칸트의 정언명령, 존 롤스의 정의론 등 각각의 차이가 있지만 결과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가장 중요시 여긴다는 점에선 동일하다.
자유 지상주의는 개인의 자유라는 미명 하에 용인할 수 없는 행위들이 이어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예를 들면, 대리모 계약을 통해 아이를 얻는 행위는 서로 원하는 것이지만 그 행위가 정의롭다고 말하긴 쉽지 않다. 왜냐하면 과연 이것이 진짜 개인의 '자유'에 의한 것인지 의문이 들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리모 계약을 맺는 주체들은 과연 자유에 의해서 그런 판단을 하는 것일까? 부득이한 상황 등에 의해 벌어지는 상황인 만큼 온전히 자유라고 보기 어렵다. 무엇보다 자유라는 미명 하에 벌어지는 수 많은 비도덕적 행위와 불평등은 정의롭게 보이지 않는다.
칸트는 이에 '정언명령'이라는 개념을 추가해서 말한다. 정언명령이란 어떠한 목적, 상황, 성향 등에 영향을 받지 않는 명령으로 그 행동 자체로 바람직한 것을 의미한다. 대리모 사례는 돈이라는 요소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정언명령에 부합하다고 보기 어렵다. 그리고 정언명령의 구분법으로 보편적 법칙을 말한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행동을 한다고 가정해보면 정언명령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있는 것이다.
존 롤스는 개인의 침해할 수 없는 권리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무지의 장막' 개념을 통한 가상의 계약으로 정의의 개념을 확장시킨다. 무지의 장막이란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맺어지는 계약이다. 이 상황에서는 자신이 불합리한 상황에 놓일 것을 우려하여 원칙들을 세우고 동의하게 된다. 예를 들면, '인종차별을 해서는 안된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최소한의 복지 시스템이 필요하다' 등의 원칙이 세워지게 된다.
공리주의와 자유 지상주의 두 가지 개념에 대해 알아봤지만, 정의의 개념으로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한편으론 정의의 개념에 두 가지 개념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그런지 여전히 우리 모두가 생각하는 '정의를 찾을 수 있을까'하는 의문점이 생긴다. 그렇다면 과연 마이클 샌델은 어떤 정의를 말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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