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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의 변화 전략은 과감하기도 했지만, 단계별로 발전했고, 보완하며 진행되었다.

만약 처음부터 GE가 6시그마를 도입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그 전략은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고, 실패했을 것이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외국의 다양한 경영혁신 프로그램을 도입했지만 실패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무리 좋은 혁신 프로그램이더라도 기업에서 제대로 활용할 역량이 되지 않는다면 말짱 도루묵이 된다.

6시그마가 사실상 국내에서는 제대로 활용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혁신은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모든 곳에서의 변화가 이루어져야만 혁신은 이루어지고, 기업은 발전한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20720

 

기업혁신의 어두운 그림자 '6시그마'

'숫자 타령'과 '말로만 혁신'의 대명사로 밤새는 내막

www.ohmynews.com

 

 

 

 


 

#4. GE의 변화전략(3)

 

잭 웰치가 추진한 변화 전략은 다른 기업과는 다른 몇 가지 차별성이 있다.

 

1) 'Q*A=E' 공식을 고려한 혁신 추구

 

GE 변화 전략이 다른 기업과 차별화된 가장 큰 이유는 '산출물(Q)' 뿐만 아니라 ' '수용도(A)'까지 고려하였다는 점이다. 두 가지 모두 극대화했기 때문에, 그 '효과(E)'가 클 수 밖에 없었다.

 

이 'Q*A=E' 방식은 아직까지도 여러 기업이 그 중요성을 인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변화 혁신 프로그램과 전략은 '매뉴얼' 제작과 그를 통해 나오는 '산출물'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면, 직원들이 이를 어떻게 활용하고, 어떤 식으로 수용할 지 고려하지 않은 채 매뉴얼을 제작하고 이를 통해 결과물을 만들어 내라고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곧 본질에 집중하지 못하고, 그저 변화된 것 없이, 매뉴얼에 끼워 넣은 결과물만 만들어 내게 된다. 이는 비용만 들어갈 뿐 전혀 변화된 것은 없는 부작용을 가져온다(국내 여러 대기업이 GE의 경영 혁신 프로그램을 도입한 후 실패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와 다르게 잭 웰치는 'A(Acceptance)'에 집중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기업과 다르게 성공을 할 수 있었다.

 

2) CAP을 통한 변화 주도자 육성

 

CAP 프로세스는 모든 경영 혁신 프로그램에 적용되어 산출물 적용의 속도/범위 등을 극대화하였고, 그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변화 주도자들이 육성되도록 했다. 특히 관리자 중심으로 육성이 되면서 그 효과는 더욱 커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변화의 속도가 곧 기업의 생존을 결정한다고 믿은 잭 웰치는 변화의 방향과 속도 두 가지 모두를 높이고자 한 것이다. 그 핵심에 관리자가 있다고 보았고, 관리자가 얼마나 변화에 잘 적응하느냐에 따라 속도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관리자들이 변화에 저항하는 경우 그 파급력은 비관리자에 비해 상당히 크기 때문에 관리자의 적극성이 필수적인 성공 요소였다. 

 

따라서 CAP 프로세스를 통해 관리자들은 변화에 노출시키고, 동시에 주도하게 하면서 변화에 앞장서도록 한 것이다.

 

실제로 존 코터의 변화관리 모델에서도 이러한 부분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변화의 성공 여부는 얼마나 조직원들의 저항을 줄이는가에 달려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각 직책자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3) 상호 보완하며 단계별로 전략을 고도화

 

GE의 변화 전략이 성공한 이유 중 또 다른 점 하나는 각 프로그램과 프로세스들이 단계별로 서로 상호 보완하며 발전했다는 점이다. 단 한번에 많은 것을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차근차근 변화함과 동시에 부족한 점을 계속해서 보완하는 방식으로 발전해 나갔다.

 

우선 잭 웰치는 변화에 앞서 그 기반을 다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좋은 경영혁신 활동일지라도 적용하는 회사의 상황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또 다른 업무가 생겨나는 것일 뿐 제대로 효과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①사업/조직 개편, 인재양성 등 '기반 다지기'를 통해 조직이 변화에 적응하기 쉬운 상태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후 조직이 줄어든 반면 업무는 그대로 있었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 GE의 경영혁신 활동 중 하나인 ②Work-Out(Town Meeting)을 시작했다. 이를 통해 불필요한 업무를 없애 구성원들의 부담을 줄였으며, 동시에 직원들이  수평적 조직문화를 배우게 하였다. 이와 더불어 외부에서의 혁신도 함께 추진하기 위해 ③Best Practice를 통해 다른 기업의 혁신 사례를 적극 벤치마킹했다. 내/외부 모두에서 혁신 활동이 이루어진 것이다.

 

계속해서 조직의 상태를 최적화하기 위해(불필요한 프로세스 제거 등) ④Process Improvement를 진행하며, 조직이 항상 혁신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 이후에는 도입한 혁신이 전파되는 속도, 효과성을 증대시키기 위해 ⑤CAP(Change Acceleration Process)를 개발했다. 이는 GE의 가장 혁신적인 프로세스 중 하나로 꼽히며, GE의 변화 전략을 빠르게 전파하는 핵심 도구 역할을 하였다.

 

GE가 새롭게 개선되는 것을 보며, 이제는 기존 방법과는 다르게  개선 관점이 아닌, 새롭게 개발하여 발전하자는 취지에서 ⑥Key Strategic Initiatives를 진행한다. 이전에 경영 혁신 도구들이 GE의 문제점을 해결하며 개선하는 것이였다면 이번 방법은 새롭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었다. 그 다음에는 조금 더 고객 관점에서 변화를 주도하기 위해 ⑦Making Customer Winners Tool-Kit을 사용한다.지막으로는 이 모든 것이 품질되게 운영하기 위해 통계적 기법을 활용한 ⑧6시그마를 운영했다. 기존 경영혁신 전략에 객관적인 통계 기법을 도입하면서 조금 더 변화 전략의 완성도는 올라가게 되었고, 특히 6시그마는 GE에서 매우 큰 효과를 보였는데 기존에 운영하던 Work-out과 Key Strategic Initiatives와 함께 결합하면서 각각 6시그마의 DMAIC, DFSS 기법이 되었기 때문이다.

 

즉, 잭 웰치의 GE 변화 전략 단계를 요약하자면, 처음에는 기반을 다졌으며, 이후 Work-Out을 통해 내부 혁신을 주도하였고, Best Practice로 외부에서 혁신을 배웠다. 그리고 계속해서 Process Improvement로 기반을 다졌으며, 혁신의 원활한 전파를 위해 CAP을 운영한다. 이후 개선이 아닌 새로운 혁신의 관점에서 Key Strategic Initiatives 성장 전략을 추진했고, 고객 관점의 Making Customer Winners를 운영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 전략들의 품질 관리를 위해 6시그마의 통계적 기법을 도입한다. 

 

[그림8] GE의 경영혁신 프로그램 발전 과정

 

[그림9] GE 경영혁신의 단계별 고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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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웰치의 경영혁신 사례가 특별하고, 그 효과가 특히 컸던 이유는 뭘까?

그 이유는 바로 CAP 프로세스에 있다(변화 가속화 프로세스).

 

많은 기업들이 오류를 범하는 것 중 하나는 내부 직원들의 수용성을 무시한다는 점이다. 결과물(변화의 방향)에만 치중한 나머지 직원들과의 공감대 형성을 등한시한다. 그 결과 아무리 좋은 비전과 혁신을 이야기 하더라도 실패한다.

 

잭 웰치는 이를 알고 있었고, 공감대 형성을 위한 전문 프로세스까지 운영하였다. 

 

 

 

 


 

#3. GE의 변화전략(2)

 

4) CAP(Change Acceleration Process)

 

변화 가속화 프로세스인 'CAP'은 구성원들에게 변화에 대응하는 기술을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프로세스이다. 'Work-Out'과 'Best Practice'의 결과물이 조직 구성원들에게 전파될 수 있도록 돕고, 이것이 제대로 정착되고 있는 지 모니터링 하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즉, 조직 변화의 속도/적응을 극대화하기 위한 경영 혁신으로 일종의 'Power-Booster'라고 볼 수 있다.

 

조직원들은 이 프로세스를 경험하면서 궁극적으로 본인들이 직접 변화를 주도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이를 통해 경영혁신이 조직 전반에서 모두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GE는 Top에서 추구하는 Vision이 Bottom 조직에서도 자발적으로 실현되길 바랬다.

 

CAP의 목표는 크게 3가지이다. Work-Out과 Best-Practice 프로그램 이후 잭 웰치는 경영혁신이 필연적으로 큰 변화를 수반하며, 그 성공의 승패는 속도에 달려있다고 보았다. 그러한 생각이 반영된 것이 CAP 프로그램(일명 캡 프로그램, 변화 가속화 프로세스)이기 때문에 ①Work-Out 활동의 가속화, ②GE의 리더들을 변화 주도자로 육성(Internal Change Leader), ③Best Practice의 빠른 전파 등이다.

 

 

총 7단계로 구성된 CAP은 프로그램이라기 보다는 종합적 혁신 프로세스라고 생각해야 한다(일종의 프로그램 상위 개념). 따라서 기존에 추진하고 있는 모든 경영 혁신 프로그램에 적용이 가능하고, 그 활용도가 높아 효과가 컸다. 특히 몇 가지 실행 원칙은 CAP의 효과를 극대화 하였다. ①반드시 실행할 것, ②조직에 필요하고 중요한 주제일 것, ③CAP 팀에게 많은 권한을 위임할 것, ④90일 단위의 목표를 설정할 것 등이다.

 

CAP의 원리는 'Q(Quality)*A(Acceptance)=E(Effectiveness)'라는 공식을 기반으로 한다. 'Q'가 결과물(변화)라면 'A'는 수용도(전파 정도)로 단순히 결과물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수용도와 전파 범위도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아무리 결과물(Q)이 좋을 지라도 전파 효과(A)가 낮다면 그 효과(E)는 낮을 수 밖에 없다. 잭 웰치는 이 점을 눈여겨 보았으며, 전파 정도를 극대화하기 위해 CAP을 운영한 것이다(이 점이 다른 기업의 경영혁신과 가장 큰 차이점이다. 보통 결과물만을 중시하기 때문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단계 설명
Leading Change [변화 주도자 선정] 변화를 리딩하는 주도자(Sponsor)를 선정하여 원동력 유지
Creating A Shared Need [변화 공감대 형성] 변화 필요성을 조직 전체에 전파하고, 공감대를 형성
Shaping A Vision [비전 설정 및 구체화] 변화 목표 달성 시, 결과(효과)를 명확히 하고 이를 공유
Mobilizing Change Last [변화의 행동화] 중요 구성원을 선발, 팀을 구성하여 변화를 직접 실천
Making Change Last [변화 지속 및 환경 조성] 변화의 진행이 가시적으로 일어나고, 조직에 전파되는 과정
Monitoring Progress [추진상황 평가] 변화의 지속성/실효성 등을 평가, 지표를 통한 책임 운영
Changing System & Structures [시스템과 조직의 변화] 기존 시스템과 조직의 변화를 실행, 목표에 맞는 변화로 추진하던 변화가 보완/강화될 수 있도록 함

<표1> 'CAP 7단계 프로세스

 

5) Key Strategic Initiatives

 

크게 'NPI(New Product Introduction)', 'QMI(Quick Market Intelligence)', 'OTR(Order to Remittance)', 'SP(Supplier Partnership)', 'Productivity', Globalization' 등 6가지로 핵심 성장 전략을 의미한다. 생산성과 세계화는 잭 웰치 부임 이후부터 계속해서 추진해 온 전략이지만(물론 이전에도 많은 기업에서 추진했다.), NPI/QMI/OTR/SP 4가지 전략은 새롭게 개념화한 전략이며, 그 중 NPI와 QMI는 외부에서도 크게 인정을 받게 되었다.

 

우선 NPI는 신제품 개발 프로세스이다. 이는 Best Practice 사례와 내부 우수 사례를 종합하여 만든 프로세스이다. 이 과정에서 초우량기업 60여 곳이 벤치마킹 되었으며, 고객으로부터 출발하여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하는 접근 방법을 사용했다. 기존 프로세스와는 다르게 기획 단계에 역량을 집중하였으며, 리스크 관리를 위해 각 단계별로 담당 경영진이 검토를 했다(일종의 '톨 게이트'라고 불림).

 

구분 프로세스
기존 설계(Design)→생산(Make)→비용(Cost)→가격(Price)→고객(Customer)
NPI 고객(Customer)→가격(Price)→비용(Cost)→설계(Design)→생산(Make)

<표2> 기존 프로세스와 NPI의 차이 

 

구분 주요 초점 오너십 톨 게이트
비즈니스 고객 프로젝트팀
정의(Define) 비즈니스 O - - VOB
고객(Customer) 고객 - O - VOC
컨셉(Concept) 창조적 - O O 컨셉
설계(Design) 기술적 - - O 프로토 타입
실행(Implement) 실제적 O O O 출시 준비
양산 이관 - O - - 완료

<표3> NPI 추진 단계

 

다음으로 QMI는 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즉각적으로 파악하고 반응하는 회의체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시장 상황에 따른 의사결정 스피드를 높이기 위한 방법이다. 이 또한 Best Practice 사례 중 하나인 '월 마트' 벤치 마킹의 결과이다. 월마트 본사에서는 전 세계 사업장을 연결하여 토론하는 Conference Call을 시행했다. 이를 통해 시장과 경쟁사의 동향을 긴박하게  파악했다.

 

GE 또한 이를 벤치마킹 하였다. 일반적인 프로세스의 경우 고객 VOC에 대하여 기능별로 분화되어 대처 방법을 동시에 검토하고 해당 해결 주체를 타부서에게 이관하는 등 시간 지연이 생기는 경우가 많았으나, 벤치마킹 결과 GE에서는 스피드 있는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QMI Call이라고 불렸으며, 임원들이 직접 시장 상황을 파악하고 짧은 시간 내에 빠르게 보고하였다. '별들의 전쟁'이라 불릴 정도로 각 임원들이 QMI Call에서 핵심적인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연습까지 했다. 이 결과 경쟁사 대비 가격 대응시간이 56일에서 6일로 단축되었으며, 판매 전담시간이 70%에서 85%로 증가하는 놀라운 효과가 생겼다.

 

6) Making Customer Winners

 

성공을 위해선 고객 중점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원리에 따라 고객 중점으로 이루어진 GE만의 Tool-Kit이다.

 

7) Six Sigma Qulity

 

6시그마는 품질 표준값(평균)에서 상/하한값까지 ±6시그마의 여유를 두고, 정상품 99.9999998%의 수준을 확보하는 통계 방법론이다. GE는 이 통계적 기법을 전 경영혁신 프로세스에 적용하면서 경영 혁신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게 하였다.

 

1987년 모토로라에서 개발된 기법으로 처음에는 일본의 혁신 활동을 연구하여 만든 기법이다. 당시 일본은 미국의 품질관리기법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흡수하였고, 이를 'TQM(Total Quality Management, 총체적 품질경영)'으로 발전시킨다. 이를 통해 1980년대 일본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였고, 미국을 밀어내고 세계 경제의 주도권을 가지게 된다.¹ 이로 인해 품질관리에서 위기 의식을 느낀 미국 기업들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일본의 TQM보다 더 뛰어난 품질관리기법을 만들고자 하였고, 그 결과 모토로라는 6시그마 대표 방법론 중 하나인 'DMAIC' 프로세스를 개발한다.

 

1995년 GE는 생산품 품질관리에 주로 활용된 6시그마 방법론을 모든 경영 프로세스에 적용하였고, 방법론을 점차 정교화, 변형시키며 더욱 발전시켰다.

 

구분 1기(1980년대 후반) 2기(1990년대 중반 이후)
주요 기업 모토로라 GE
의미 6시그마를 창안 6시그마의 발전
특징 방법론 개발 방법론 정교화/확대
활용 분야 생산품 품질 중심 제조, 사무 간접, 개발 등 전 경영 프로세스

<표4> 6시그마의 주요 변천사

 

GE가 활용한 6시그마 방법론은 크게 2가지로 볼 수 있다. 기존 모토로라의 'DMAIC' 기법과 새롭게 변형한 'DFSS' 기법이다.

 

우선 DMAIC는 정의(Define)>측정(Measuer)>분석(Analyze)>개선(Improve)>통제(Control) 5단계 접근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①정의(Define) 단계에서는 먼저 문제를 명확히 하고, 너무 장기간이 되자 않도록 한다. 그리고 측정 가능한 목표가 될 수 있도록 범위를 좁힌다. 고객 지향적인 관점에서 분석이 이루어져야 하며, 프로세스를 정의하고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②측정(Measure)은 데이터를 수집하며 변수를 체크하고, 기존 프로세스의 6시그마를 측정한다. ③분석(Analyze)에서는 앞선 두 단계를 통해 파악한 데이터와 프로세스를 분석하여 문제의 원인을 도출해야 한다. ④개선(Improve)은 분석 단계에서 도출된 원인들에 대한 개선안을 만들고, 이에 대한 실행계획을 세운다. 마지막으로 ⑤통제(Control)에서는 프로세스를 계속 모니터링 하면서 개선안에 따른 변화가 잘 정착될 수 있도록 관리하고 이것이 서류//규정화 되도록 한다.

 

그 다음으로 DFSS는 'Desing For Six Sigma'의 약자로 'DIDOV'와 'DMADV' 2가지 모델이 있다. 두 모델 모두 고객 요구 조건을 만족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프로세스의 목적은 제품 개발 단계부터 품질향상을 고려하여 궁극적으로 6시그마 수준의  품질을 확보하는 것이다. 특히, 고객의 요구를 사전에 완벽히 반영하여 시장에서의 성공을 보장하고, 기존 방법의 설계 시간보다 약 40% 단축시킨다는 이점을 가져왔다.

 

 

<그림6> DFSS 방법론에 의한 절감 효과

 

우선 DIDOV는 ①Define(D) 단계에서 고객/시장 분석을 통해 CTQ(Critical To Quality)를 도출한다. 고객의 관점에서 품질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요소가 나오면, 그 다음 ②Identify(I)에서 CTQ 관련 현 수준을 측정하고, 목표를 설정한다. ③Design(D) 단계는 설계안을 기반으로 상세 설계를 완성하고, 사전에 설계상의 리스크를 파악하여 위험요소를 제거한다. ④Optimize(O)에선 실험을 통해 제품 설계에 대한 최적화를 계속 진행한다. 마지막 ⑤Verify(V)는 테스트를 통해 기능별 성능, 내구성 등을 검증하고 양산계획을 세운다.

 

반면 DMADV 모델의 경우 ①Define(D) 단계에선 기업전략, 소비자 요구사항과 일치하는 활동을 우선 목표로 세운다. 그 다음 ②Measure(M) 단계는 내/외부 요구사항을 정의하고, 우선순위를 설정하여 요구사항을 CTQ로 변환시켜 각 요소 별 목표값을 설정한다. ③Analyze(A)는 앞서 도출된 요소 등을 각 분야별로 분류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설계안을 만들고, 목표 달성 여부를 분석한다. ④Design(D)에선 기본 구조를 바탕으로 제품/서비스를 구체적으로 설계하고, 최적화하며 경제성을 반영한다. 마지막 ⑤Verify(V)에선 DIDOV와 동일하게 제품과 서비스를 검증하고 완료되면 양산 계획을 세운다.

 

 

<그림7> DMAIC와 DFSS 알고리즘

 


₁   당시 미국은 품질 보다는 생산량을 증가시키는 것에 집중하였다. 그 결과 조직은 비대해지기만 하였고, 품질관리에 치중한 일본에게 주도권을 빼앗기게 되었다. 1980년 6월 24일 반영된 "If Japan Can, Why Can't We?"라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미국 경영자들은 품질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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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wn Meeting을 하고 있는 모습

 

대규모 구조조정 이후 다시금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구조조정 전과 후 직원들의 모습은 다르다. 일반적으로 직원들의 근로 의욕은 떨어지게 되어 있다.

 

이와 관련하여 근로자의 의욕감소를 막는 방법을 연구한 DBR 아티클이 있다.

아티클에서 말하는 방법은 크게 3가지이다.

 1. 우선 유연하게 기업을 운영하는 것,

 2. 그 다음은 혁신과 창조에 힘을 쓰는 것

 3. 마지막으로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

 

구조조정 이후 GE의 성장도 이러한 방법을 반영한 변화 전략을 수립했기 때문이다. 

 

https://dbr.donga.com/article/view/1201/article_no/2095

 

[DBR] 구조조정과 근로 의욕 ‘두 마리 토끼’ 신뢰와 권한 위임에 달렸다

수십 년 동안 수많은 구조조정 관련 연구가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해결되지 못한 문제가 있다. ‘비용 절감 및 품질 향상’이라는 구조조정의 원래 목표를 달성하면서 동시에 ‘직원 교��

dbr.donga.com

 

 

 

 


 

#2. GE의 변화전략(1)

 

잭 웰치는 구조조정을 통해 조직 구조를 단순화하고, 책임과 권한을 직원들에게 위임하여 전사적으로 자율경영체제를 구축했다. 이는 대기업의 강점은 그대로 유지함과 동시에 민첩성과 유연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생각으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단지 재무적인 성과와 조직의 변화만이 두드려 졌을 뿐, '업무'에 대한 변화가 없었다. 그렇기에 구조조정을 통해 이루고자 한 목표가 지속되고, 더욱 성장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전략이 필요했다. 실제로 당시 구조조정 이후 GE의 관리자들은 과다한 업무로 인해, "만약 내가 쓰러져 책상에 고꾸라지더라도 옆 자리의 동료가 나를 발견하는데 1주일은 더 걸릴 것은 분명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엔 '불필요한 일'이 있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첫 경영혁신 프로그램인 'Work-Out'을 시작한다.

 

1) Work-Out(Town Meeting)

 

'Work-Out'은 조직 전체 또는 부문의 주요 이슈에 대하여 여러 책임자들이 모여 함께 핵심 문제에 대한 획기적인 해결방안을 도출하고, 이에 대한 실행 계획(역할/책임)을 명확히  하여 90일 단위의 Action Plan을 스폰서에게 보고 후 의사결정을 받는 프로그램이다. 

 

잭 웰치는 GE의 사업 개편과 조직 구조조정이 일어났는데, 만일 업무가 그대로라면 구성원들의 생산성은 크게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불필요한 일을 없애고자 하였고, 무엇보다도 소속과 직급 구분없이 문제의 핵심에 대해 서로 토론하여 결과를 만들려고 했다. 일종의 타운미팅¹과 같은 회의 방식이었다.

 

크게 3가지 가치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보다 많은 사람을 참여시키고 문제에 앞장서서 해결하도록 하기 위한 'Self-Confidence(People)', 업무의 낭비 요소를 제거하여 최적화 하는 'Simplicity(Task)',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빠르게 처리하는 'Speed(Organization)'이다. 

 

이 가치를 중심으로 Work-Out 프로그램을 진행하였고, 이 프로그램은 변화와 혁신의 중심이 되었다.

 

[그림4] Work-Out 프로세스

 

2) Best Practices

 

'Best Practices'란, 외부에서 경영혁신 사례를 찾고 벤치마킹을 통해 GE 전사에 적용하는 프로그램이다. 잭 웰치는 "최고를 배워야만 최고가 될 수 있다."라는 모토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외부 혁신기업을 벤치마킹했다.

 

이 프로그램이 Work-Out 프로그램과 함께 운영이 되었으며, 내부에서는 Work-Out으로 외부에서는 Best Practices로 혁신을 찾아 성장하고자 했다. 이 두 프로그램은  전사적으로 진행이 되었고, 세계 최고의 경영 기법은 모든 사업부와 조직에 빠르게 적용되었다.

 

3) Process Improvement

 

앞서 두 경영혁신 프로그램을 시행하면서 주기적으로 'Process Improvement'란 프로그램을 시행했는데 이는 다시 프로세스를 점검하고, 조직 구조를 한번 더 개편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프로세스와 조직 구조는 시간이 갈수록 다시금 비대해지는 경향이 있고, Work-Out과 Best Practice를 시행하며 생긴 비효율적인 부분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과정을 거치며 직책자들과 직원들의 리더십 강화도 함께 진행하였고, 자연스레 목표 달성에 더욱 힘이 가해졌다. 목표 달성에 계속해서 힘을 가하고, 변화를 추구하여 일명 '초고속 열차전략(Bullet Train Approach)'라고 불리기도 했다. 


¹ 미국의 여러 주에서 시행하고 있는 주민 참여의 한 형태로 안건에 대하여 주민들이 토론을 한 뒤 투표로 결정하는 회의 방법 중 하나이다. 주민들이 토론할 때 서로 가감없이 토론을 했고, GE의 Work-Out도 이와 비슷하여 타운미팅이라 불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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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웰치(John Frances Welch Jr) 회장

 

'세기의 경영인'으로 불린 GE의 전 잭 웰치 회장이 2020년 3월 1일 별세하였다.

'뉴트론 잭(Neutron Jack:중성자탄 핵)'이라는 악명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그는 최고의 경영인이 분명했다.

 

지금도 많은 기업들이 잭 웰치가 회장으로 있을 때, GE의 변화 전략을 사례를 모범으로 삼아 경영에 반영하고 있다.

 

 

 

 


 

#1. 서론: 잭 웰치 회장 취임

 

잭 웰치는 미국 기업 역사상 최고의 CEO로 평가되는 사람 중 하나로 20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경영자이다. 그가 GE에 재임한 20년 동안(1981~2001) 주가는 약 40배가 상승했으며, 매출, 순이익 모두 크게 증가하였다.¹ 당시 자본수익률은 약 20% 수준으로 동기간 미국 평균 12%를 크게 상회했다.

 

1. 잭 웰치(John Frances Welch Jr)의 취임 배경

1981년 취임 당시 잭 웰치의 나이는 45세로 최연소 나이로 GE의 CEO로 취임하였다. 이 배경에는 바로 개혁을 위한 전 CEO의 후임자 물색과 과감한 퇴임이 있었다. 전임 CEO인 존스 회장은 1980년대 이후에 닥쳐올 전 산업분야의 기술혁신을 기점으로 기술경쟁과 가격경쟁이 심화될 것으로 예측했다. 그리고 이 경쟁 속에서 GE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전체적인 사업 개편과 더불어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는 당시 최고의 CEO로 평가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퇴임을 기점으로 보수적인 경영 방식이 끝나고, 새로운 개혁이 이루어지길 바랬다.

 

이에 보수적 성향을 가진 부회장들이 아닌 기술산업을 일으킬 공학박사 출신의 가장 젊고 과감한 성격을 가진 잭 웰치를후임자로 정하고 퇴임한다.

 

2. 잭 웰치 취임 전 GE의 상황

 

잭 웰치가 취임하기 전 GE에는 크게 3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첫째, 사업다변화를 통한 기업 성장과 기업안정성확보 전략이 이루어져 150개가 넘는 사업 분야를 가지고 있었다. 핵심사업 위주가 아닌 단순하고 다변화된 사업집단을 형성하였고, 이에 따라 조직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둘째, 100년 이상의 역사와 전통으로 보수적인 경영 풍토와 12단계의 조직 계층, 2만 5천명 이상의 관리자가 존재하는 관료주의가 있었다. 이는 당시에는 과학적 경영 기법으로 우수 사례로 소개되기는 했지만, 점점 내부적으로는 비대하고 복잡한 관리 계통으로 조직 운영이 경직화될 수 밖에 없었다.

 

셋째, 경영진의 안일한 사고, 현장과 본사 간의 불신 등이 존재했다. 보수적인 문화에 사로잡혀 관리자 대부분이 도전적이기 보다는 안주하려는 안일한 사고를 가지고 있었으며, 외부 시장 환경의 변화에도 소극적인 대응만을 했다. 또한 이와 더불어 관리 지향적인 경영 문화는 본사와 현장 간의 불신을 지속적으로 발생시켰다. 단지 피상적인 일체감만 있을 뿐 조직 간 벽이 존재한 것이다.

 

3. 잭 웰치의 기반 다지기

 

잭 웰치는 본격적인 GE의 변화 전략 실행에 앞서 이를 위한 사업/조직 개편, 인재 양성 등 기반을 다지기 시작한다.

 

우선 '1등 아니면 2등 전략'을 세웠다. 전체 사업에서 1위 또는 2위 사업만을 남겨둔 채 모두 매각하거나 폐쇄를 진행하였다. 물론 성장성이 있는 사업의 경우 1차적으로 투자를 통해 육성하였으나 만일 육성 이후 1위 또는 2위 사업이 되지 못하면 과감히 매각을 진행했다. 그리고 추가로 서비스/하이테크/핵심산업 3가지 방향을 기준으로 사업을 개편하여 이에 벗어나면 과감히 개편하였다. 잭 웰치의 이 과감한 첫 행보는 1983년 1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던 도중 떠오른 아이디어를 냅킨에 메모하면서 시작되었다.

 

GE의 구조조정(Downsizing)은 취임 시작부터 진행되었고, 404,000명이었던 직원은 89년도에는 292,000명이 될 정도로 크게 이루어졌다. 그래서 잭 웰치에게 'Neutron JAck'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그림1, 2] "고쳐라, 매각하라, 폐쇄하라"

 

그 다음으로 조직의 수직 계층 체계를 대폭 축소하면서 GE를 날씬하고 민첩한 기업으로 만들었다(Lean ang agile). 이는 사업개편과 함꼐 이루어졌는데, 수직 계층을 축소하면서(사원과 CEO의 라인이 4단계로 축소) 관리자 및 임원을 대폭 감축하였고, 사업부장이 직접 CEO인 자신에게 보고하도록 체계를 구축했다. 

 

마지막으로 직원 상대평가(GE의 '활력곡선'), 경영사관 학교 '크리톤빌'² 등 인재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를 했다. 활력곡선이란 '4E'³를 기준으로 직원을 평가하여 A/B/C 구간을 나누고, 이를 기반으로 각 구간 직원들을 차별하여 대우하는 것을 의미한다. 상위 20% 직원(A)에게는 급여/승진 등 보상을 통해 적극적으로 동기부여를 하였고, 하위 10% 직원(C)은 퇴사 조치를 취하는 전략이다(다만 이는 최근에는 그 효율성보다 부작용이 더 크다고 판단되어 사라졌다.).⁴

 

[그림3] GE의 활력곡선(Vitality Curve)

 

 


¹매출 290억 달러→1,290억 달러, 순이익 15억 달러→127억 달러

 

²크리톤빌, 리더십개발센터이다. 1950년대 초 GE의 코디너(Cordiner, R.) 회장이 회사 소유의 경영교육기관으로 건립했다. 외부 경영대학원에 위탁하기 보다는 내부에서 시행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 판단되어 만들어졌다. 잭 웰치는 취임후 5년 동안 전체 직원의 약 4분의 1을 감원했지만, 크리톤빌에는 7,500만 달러를 투입하며 적극적으로 인재를 양성했다. 18,000여명에 달하는 GE의 핵심 리더를 크리톤빌에서 수시로 만나 직접 강의를 했으며, 이는 GE의 변화 전파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아메리카 주식회사의 하버드'라 불리기도 한다.

 

³에너지(Energy), 격려(Energuze), 결단력(Edge), 실행력(Execute)

 

⁴국내에서 운영된 상대평가도 GE의 활력곡선을 벤치마킹한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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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소크라테스가 어떤 사람인지 분명히 알 수 있는 책이다.

비록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이 썼기 때문에 미화된 부분이 있을 수 모르나, 그가 추구하던 인생의 철학을 그대로 재현한 책이라 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의 전성기를 가져온 인물로 그의 영향력은 지금도 여전히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한 번쯤은 꼭 읽으라고 추천을 하고 싶다.

소크라테스의 모습에서 가장 존경스러운 점은 죽음 앞에서도 그는 철학자로서의 신념을 저버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항상 자기반성을 통해 더욱 발전할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죽음보다 불의를 피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하는 소크라테스.

그는 참된 철학자라면 죽음을 항상 연습하므로 죽음을 가장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죽음은 다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면서 그의 철학의 화룡정점으로 꼽힌다. 실제로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대한 일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그의 철학에 대해 더욱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평소 자신의 철학을 전파하여 세상을 행복하게 하겠다는 그의 목표는 죽음으로 말미암아 완성된 것이다.

나는 철학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겠지만, 한 사람으로서 그가 신념을 지키는 모습은 존경스럽다 못해 경이롭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고
- 크리톤·파이돈·향연 -

기원전 5세기경에 활동한 고대 그리스의 대표 철학자 중 한 명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의 전성기를 가져온 인물 중 하나로 고대 그리스의 철학을 소크라테스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을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매우 컸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가 직접 남긴 저작이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의 고유한 철학과 사상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이 남긴 기록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알아갈 뿐이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플라톤이 저술한 책으로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의 하나이다. ¹ 소크라테스가 법정에서 변론하는 모습을 재현한 내용으로 최초의 변론, 유죄 선고 후의 변론, 사형 선고 후의 변론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이 대화가 가장 높게 평가받는 것 중 하나는 플라톤이 창작한 부분이 다른 작품에 비해 가장 최소화되었다는 점이다. 소크라테스의 대화편은 각각 짧게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크리톤, 파이돈, 향연 등과 묶어서 한 번에 책이 나온다.

책의 배경은 BC 399년 소크라테스는 국가의 신들을 믿지 않고, 청년들에게 악영향을 끼쳤다는 이유로 '멜레토스'에 의해 고발을 당하고, 이에 대해 당당하게 변론을 펼치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변명'에서는 고발자 멜레토스의 주장에 대해 하나하나 반론을 말한다. 우선 두 부류의 고발자를 나누고, 이들에 주장에 대해 각각 반론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게 된 델포이의 신탁 사건을 말하며, 자신의 소신인 '무지의 자각'에 대해 이야기한다. 반론을 하는 상황에서도 질문을 던지는 대화법을 통해 상대의 논리의 허점을 지적하고, 상대가 스스로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자 하였다.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소신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은 그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적인 문제로 고발당한 상황이기 때문에 만일 소크라테스가 법정에서 목숨을 구걸했다면, 그는 분명 살아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목숨을 구걸하지도, 무죄를 판결해달라고 간청하지 않는다.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항상 그 행동이 옳은가, 옳지 않은가를 고민하여 행동했다.

"나의 친구여, 죽음의 회피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불의를 피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부정은 죽음보다도 빨리 달리기 때문입니다."
p50, 2차 투표 이후 사형 선고가 결정된 상황


'크리톤'은 재판이 이루어지고 한 달 뒤 감옥에서 소크라테스와 그의 절친한 친구 크리톤이 나누는 대화 내용이다. 이 부분에서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에게 여러 가지 이유를 들며, 탈옥을 권한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질문을 던지며, 크리톤이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고, 탈옥을 거절한다. 이 부분에서는 소크라테스가 얼마나 삶의 태도와 철학적 정신이 일치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는 단지 사는 것이 아니라 잘 사는 것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여러 철학적 의의도 엿볼 수 있는데, 우선 책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소크라테스의 이성적인 분별법이다. 소크라테스는 크리톤의 탈옥 권유를 단번에 거절하지 않는다. 다만, 대화를 통해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고 그 결과대로 행하자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크리톤과 대화를 나누며, 논리적으로 무엇이 가장 옳은지 판단을 내린다. 이는 쉽사리 본인의 삶의 방향과 생각을 쉽사리 바꾸는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말 그대로 소크라테스는 그의 철학인 '무지의 자각'을 몸소 실천하고 있었다. 알지 못하는 것을 인정하고 질문을 던지며 항상 이성적 자기 검열을 행한다.

그다음으로 '다수의 판단이 옳은가?', '전문가의 판단이 옳은가?'에 대한 논쟁도 볼 수 있다(이 부분은 내가 임의로 명명한 내용으로, 어긋난 내용일 수 있다.). 크리톤은 다수의 평판과 생각에 대해 말하며, 소크라테스의 탈옥을 주장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이에 대해 모든 판단을 존중해야 하는 것이 아닌 분별 있는 자들이 내리는 좋은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사실 단지 전문가의 의견이 무조건 옳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그는 무지의 자각을 상당히 중요시한다.). 많은 사람이 지지하든 그렇지 않든 오직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검열을 통해 나온 결정만이 옳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소크라테스의 국가주의관도 볼 수 있다. 아마 이 부분 때문에 실제로 그가 이야기하지 않은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이 변질되어 나온 것으로 생각된다. 당시 시대상과는 다르게 소크라테스는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계약 관계로 보았다. 다른 국가로 떠나지 않고 머물기로 결정했다면, 이는 개인의 자발적인 행동이며 계약이므로 국가의 법과 관습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특히나 많은 논란이 된 부분으로 국가에 대한 무조건 적인 충성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 부분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소크라테스의 본질은 '악행'에 대한 방관자적 행태 또한 옳지 못한 행동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직접적인 피해가 없을 때는 국가에 대한 어떤 반대나, 변화의 시도조차 없다가 이후 직접적으로 본인에 대한 피해가 왔을 때 부당하다고 느끼고 따르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 것이다.

즉, 소크라테스는 옳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바로 행동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² 그러므로 그는 사형 선고가 내려졌더라도 이를 부정하고 도망치는 것은 옳지 못한 것으로 보았다. ³

"그러니 우리는 내가 자네가 말하는 대로 할지 하지 않을지 수고해봐야 하네. 왜냐하면 나는 반성을 통해서 내게 가장 좋은 것으로 믿어지는 이유가 있을 때만
그 이유에 따라서 행동하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이고, 과거에도 항상 그렇게 해왔네. 그리고 지금 내게 이러한 기회가 닥쳤다고 해서 내 말을 번복할 수는 없네."
p64, 소크라테스와 크라톤의 논쟁이 시작되기 직전


'파이돈'은 소크라테스가 간접적으로 나오는 대화편이다. 파이돈과 에케크라테스가 이야기를 나누며,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임종에 대해 파이돈이 이야기해주는 대화이다. 이 대화는 '영혼에 대하여'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 만큼 영혼에 대한 증명, 죽음의 의미에 대해 말하고, 마지막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부분이다(단, 이 부분에 나온 대로 실제로 소크라테스가 그렇게 행동한지는 알 수 없다. 소크라테스 사후 14~15년 이후에 쓰여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절대 두려워 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육체는 영혼의 진리에 도달하는데 방해가 되는 요소로 보기 때문이다. 죽음은 단지 영혼이 순수한 본질의 세계로 돌아가는 절차라고 보고 있다(이 부분은 플라톤의 이데아적 사상과 유사하다). 어쩌면 자살 등을 옹호하는 부분으로 볼 수 있으나, 소크라테스는 이를 신과 인간의 관계를 주인과 노예 관계에 비유하며 해악으로 규정한다.

"그러니 심미아스, 참된 철학자들은 항상 죽음을 연습하고 있으며, 따라서 죽음을 가장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야."
p101, 소크라테스가 죽음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 대화 부분에 가장 큰 의의는 소크라테스의 임종 순간에 대해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죽음에 초연한 소크라테스 답게 평소와 똑같은 모습을 보이는 소크라테스에게 친구들은 모두 놀랜다. 자신이 죽은 이후 자신의 몸을 닦을 여인들을 걱정하며 독약을 먹기 직전에 목욕을 하러 가기도 한다. 그리고 목욕 이후 그는 독약을 마신다. 독약을 마시는 것을 보고 그의 친구들은 울음을 터뜨리는데, 그는 이에 대해 질책하고 간수가 이야기한대로 이리저리 걸어 다니다가 힘이 없어지는 것을 느끼고는 자리에 눕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크리톤, 나는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네. 기억해두었다가 빚을 갚아주겠나?"
p193,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말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말에 대해서는 3가지 추측이 있다.

1.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헌납하라는 것.
2. 실제로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빚을 졌다는 것
3. 단지 농담

이렇게 3가지 추측이 있지만, 어느 것이든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마지막 말이었다.

이후의 '향연'은 사랑에 대한 다양한 사상과 찬사가 드러나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전에 언급한 작품들과는 내용이 조금 별개라고 생각하면 된다.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의문이지만, 집에서 있었던 향연에서 각자 돌아가며 에로스에 대해 말하는 것을 정리한 내용이다. 그리고 이러한 각자의 연설은 소크라테스에 의해 부분적으로 교정되고 바뀐다. 마지막에는 '알키비아데스'(아테네 명문 출신, 소크라테스의 제자였으나 탈락되었음)가 소크라테스를 찬양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 대화편에 가장 큰 의의는 소크라테스의 인간적인 면모를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동성애적 부분의 내용도 언급이 되지만(당시 시대에서는 허용이 되었고, 실제 그러한 문화가 있었다.), 대부분이 인간적인 사랑의 관념보다는 이데아적 관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이렇게 끝이 난다.

이 책을 통해 나타난 소크라테스의 삶에서 가장 눈 여겨 보아야 할 부분은 다른 무엇도 아닌 바로 '행동'이다. 그의 삶은 지행일치의 삶, 그 자체였다. 그는 선이 무엇인지 알고자 노력하였고, 이를 알게 된 후에는 몸에 익혀 실천하고자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죽음은 그의 철학의 완성을 볼 수 있는 화룡정점이다. 이 점에서 어쩌면 그가 마신 독배는 정말로 축배인지 모르겠다. 이 죽음의 일화로 그의 철학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그와 같이 살고자 하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평소 이러한 철학을 전파하여 세상을 조금 더 행복하게 하고자 했던 그의 목표가 그의 죽음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삶이 오늘날 더욱 우리에게 와 닿는 이유는 사상은 단지 사상일 뿐이이지만 소크라테스는 이를 행동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행동으로 항상 보여주는 삶의 자세만큼은 우리는 꼭 배워야 한다. 무엇이 옳은 지 탐구하는 자세 그리고 옳다고 판단을 내리면 행동하는 용기와 의지, 항상 자신을 되돌아보고 매사에 질문을 던지는 자세 등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자세이다.

그 다음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부분은 바로 그의 신앙적인 모습이다. 그의 신앙은 우리가 생각하는 신앙과는 조금 다르다. 그는 단순히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신을 믿었다고 하기 보다는 일종의 철학적인 신앙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가 믿는 신은 그가 살고자 했던, 그리고 생각해 왔던 이상적인 사상이다. 실제로 소크라테스는 델포이의 신탁이 그가 살고자 하는 '무지의 자각'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그가 신의 존재를 정말 믿음과 동시에 그의 철학과 동일시했다고 생각한다. 그의 행동과 의지 등은 그러한 부분으로 밖에 설명될 수 없으며, 실제로 그러한 말을 종종 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단순히 그의 생각이 아니라 말 그대로 '신'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것을 꼭 지키려고 노력을 했다.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각기 자기의 길을 갑시다. 나는 죽기 위해서, 여러분은 살기 위해서. 어느 쪽이 더 좋은지는 오직 신만이 알 뿐입니다."
p56, 법정에서의 마지막 소크라테스 말


그러므로 나는 법정에서 그의 마지막 말은 끝까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지키는 소크라테스의 신앙이자 철학이라 생각한다.


¹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대표 제자 중 한 명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플라톤이 남긴 저작 대부분은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플라톤의 대화편'이라고 잘 알려져 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총 30여 편으로 이루어진 대화편의 초기작이다.

²예로 들자면 국가가 만든 악법에 대해 무조건 따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악법이 만들어졌다면, 시민들은 이에 대해 국가에 따지고 행동해야 할 권리와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악법이 만들어진 이후에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채 방관하다가 본인에게 피해가 왔을 때 따르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³ 이 부분에서 소크라테스의 개인 사상이(행동의 결과가 아닌 행동 자체의 옳고 그름을 보는) 이러한 국가관에까지 연결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재판 방식 등 프로세스적 측면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러한 재판 방식이나 프로세스가 가져올 결과는 또 다른 문제이다. 즉, 어떻게 보면 소크라테스에게 선고된 재판 결과는 옳지 못하다. 그러나 그 재판 방식은 옳지 않은 것이 아니므로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과를 보고 옳지 않기 때문에 따르지 않는다는 사고는 상당히 자기중심적이며 편향적인 사고이다. 대체 옳다는 것은 누가 결정하는가? 자칫 무정부주의 사고를 가져올 수 있는 문제이다. 프로세스, 제도 등이 옳다면 따라야 한다. 설사 그 결과가 최악일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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